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go Dec 13. 2021

쓰러진 자와 함께 했던 아찔한 순간

복정역 응급환자 경험기

저녁식사를 한 후 아내와 함께 설거지를 하다가 싱크대 선반 위 언가를 닦아낼 일이 생기자 일전에 새로 산 행주가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행주로 쓰려고 그것은 구입 후 집에 오기 전에 우리 것이 아닌 것이 되었다. 가만히 그때를 떠올려 본다.


일주일 전쯤의 일이다. 무료한 일요일 오후를 이용해 아내와 쇼핑을 나섰다. 복정동에 있는 할인매장에서 겨울옷을 사면서 작은 수건을 2장 사서 지하철을 타려고 복정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계단을 내려가 왕십리행 전을 타려고 플랫폼을 걷고 있었다. 흰머리를 한 60대 중반의 남성이 플랫폼 기둥 한편에 반듯하게 누워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하마터면 술 취한 분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칠뻔했다. 아내와 함께 한번 더 뒤를 돌아보며 그를 주시했을 때 그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닥친 것임을 직감했다.


즉시 역무원을 불러 상황을 알리고 119를 함께 기다렸다. 그는 양손을 깍지를 낀 채 온몸이 고목처럼 굳어져 있었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이며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듯이 보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짧은 의학지식으로는 원인이 무엇인지 가름할 수 없었고, 다만 심혈관 계통의 문제가 아닌 듯싶었다. 119와의 통화에서 일단 옆으로 눕혀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전해왔고 우리는 그에 따랐다.


그는 마치 단단한 올무에 뒷발이 걸려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처량한 사슴과 같은 눈망울을 하고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무런 죄가 없는데 덫에 걸린 짐승과 같이, 평온한 일상을 즐기던 그에게 이런 급박한 상황이 닥친 것이다. 아내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대고 모로 누워있는 그를 위해 새로 산 작은 수건 2개를 여러 번 접어 그의 머리 밑에 받쳐주었다. 차가운 바닥의 냉기도 차단할 뿐만 아니라 꺾인 그의 목을 바르게 펴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듯했다.


토요일 오후 차가 많은 시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응급구조대의 도착은 늦어지고 있었고,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 중 몇몇 이서 번갈아가며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쳐 지나갔다.


"119에 전화를 하셨나요?"  "네,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환자와 가족이세요?"  "아니요. 지나가다 발견하고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입니다"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지 않나요? 제가 한번 해볼게요~"  "아니오. 119에서 가만히 옆으로 뉘어 놓으라고 했어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듯한 어떤 할머니는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은 돌발행동을 하고 나섰다.

"지금 제 말이 들리나요? 들리시면 예수 믿으세요. 그러면 하느님이 살려줘요."

급기야 아직 살아있는 환자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어요"


수많은 행인들이 그들의 잣대로 쓰러진 자를 잠시 바라보다가는 곧 사라졌다. 한참을 지나서야 응급구조대 2명이 왔고,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지만 이런 상황을 많이 경험한 베테랑인 것이 분명했다. 곧바로 환자의 손가락을 질러 혈당을 체크하더니 준비해온 링거병을 팔목의 혈관에 꽂아 30밀리를 정확하게 주입했다. 기적과 같이 그가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10밀리 정도 더 링거가 투입되자 환자가 파과 다리를 움직이며 고개를 들고일어나려 하였다. 그에게는 저혈당 쇼크가 왔던 게 분명해 보였다.


예수님의 기적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응급구조대는 환자의 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찾아 가족과 통화를 하며 상황을 설명하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이송한다고 알렸다.


긴박했던 상황이 종료되고 역무원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그가 배개로 사용한 수건을 가져가지 않을 거냐 물었다. 우리는 그가 응급실로  때까지 사용하도록 하라고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돌아섰다.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최소한의 조치를 취해줄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 싶었다. 잘 모르면서 허튼짓을 하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내손에서 행주로 쓰일뻔한 작은 수건 두장은 그렇게 쓰러진 자를 위해 요긴하게 사용됐다. 지금은 건강한 어깨와 튼튼한 다리로 쓰러진 자를 스쳐 지나가지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고 이럴 때는 주변 시민의 적극적인 역할이 쓰러진 자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길에 쓰러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맘으로 발을 동동 굴렀던 시간이었고, 행여나 또다시 이런 순간을 맞이 한다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상의 행복으로 온전히 회귀했기를 바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