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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초록 Aug 30. 2023

#독일. 혼자 여행해야 보이는 것들

내 감각을 100% 여행지에 쏟아 넣고 싶다면


나의 여름은 독일에서 시작한다.



영국을 제외하면 유럽은 처음이라, 가방끈을 바짝 조였다. 애착 초록색 슬리퍼가 키를 한 뼘 키워줘서 그나마 든든했다. 미국에서 지낼 당시 영어를 다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 했는데, 귀여운 걱정이었다. 독일어는 단 한 글자도 이해가 안 됐으니까!  


다행히도 한국인 두 명을 만나 함께 열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독일어로 Hauptbahnhof)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끈 사람을 따라가 티켓까지 구매 완료.


조금 피곤했지만, 유럽은 초면인 내게 햇살을 머금은 날씨로 인사를 건넸다. 숙소는 역에서 트램을 타고 2정거장만 가면 되는 위치에 있었다.



덜컹거리는 한국 지하철에 익숙하던 내게 독일의 트램은 감동 그 자체였다. 전기로 움직이는 기차라 여유롭고 스무스했던 승차감. 깜빡 잠들 뻔했다.. 잠들기엔 숙소가 너무 가까웠지만.


신기하게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프라하, 빈 역시) 트램을 탈 때 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일일이 확인하는 대신 표를 샀을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운용하는 것 같았다. 물론 무단탑승을 하다 걸리면 벌금을 8배 이상 내야 하는 걸로 안다. 우리나라에도 국민의 양심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정책이 있었나 돌아보게 했던.


그렇게 Reneta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곧 다룰 예정)






혼자 여행도 처음인데 꽤나 먼 대륙에서 해보려니 처음엔 약간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42일간의 여행 중 언제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혼자 있었던 시간’이라고 답할 수 있다.


25살, 처음으로 아무 계획 없는 여름을 보냈다. 한국의 속도에서 벗어나자 내 몸이,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나는 생각보다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커피는 일정량을 꼭 채워줘야 하는 사람이었고. ‘거기까지 가서 이것도 안 봤어?’에서의 ‘이것’보다는,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진한 이야기로 꽉꽉 채워진 작은 공간에 갔을 때 기쁨이 만개했다.


모르는 사람과 문화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즐거웠다. 익숙하지 않은 주제를 꺼내는 데도 거부감이 없었다.    







혼자 있으면 감각이 온전히 여행지에 집중된다.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기차에서 어떤 언어로 방송을 하는지. 조금 심심할 땐 일기를 쓰거나 음악을 친구 삼아 뚜벅뚜벅 걸었다.  

 

예를 들면 베를린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데, 크게 소리지르며 한 줄로 앉아 게임을 하던 소년들. 독일어라 의미는 몰랐지만 흥분한 목소리와 웃음소리로 대략 유추가 가능했다. 전세계 어디든 10대 남자애들은 참 힘차구나, 생각했다.


자전거를 타는 커플을 자주 목격했다. 함께 바람을 가르며 도로를 지나가는 모습이 로맨틱했다. 혹은 어딘가로 가기 위해 자전거 보관대에서 자물쇠를 여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다. (스토커 아님) 자전거가 꽤나 일상적인 교통수단임을 기억하게 한 단편들.


프랑스 니스에서도 혼자 다닌 날이 있는데, 니스의 마세나(Masséna) 광장은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덜 미끄러운 돌바닥 사이로 분수가 시원하게 뿜어 올라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돌이 막 지난 아기부터 10살 초반의 아이까지. 세상의 모든 색깔을 수영복으로 볼 수 있었지만, 더 밝은 건 무해한 아기들의 미소였다.

애도 없으면서 부모와 같은 마음이 되어 30분 넘게 아기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구경했다. 다른 배에서 나왔는데, 어떻게 와다다 뛰는 모습은 모두가 똑같이 귀여울 수가 있지? 해가 저물어가는 노을빛의 광장에 물 튀기는 소리와 아기들이 꺄르륵 웃는 소리는 니스의 기억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나?

혼자만의 여행은 시간이 온전히 내 소유물이었다는 점에서 사랑스러웠다. 사회도, 가족도, 카카오톡도 가져갈 수 없는 온연한 나의 것.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다는 선택지. 설령 3시에 투어가 예약되어 있다고 해도 마지막에 가기 싫어지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충분히 자유롭게 했다.


그 자유로움이 주는 자존감은 다른 이에게서 얻을 수 없고, 다른 이에게서 얻는 것보다 값지다.






42일간의 유럽 여행을 기록합니다.

5개국 11개 도시의 여름을 다이어리에 담아왔어요.


독일, 프랑스,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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