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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이슬 Apr 20. 2023

1인가구는 아프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가정이 무너지고...




ⓒtwitter_jokkachi



언젠가 브런치에서 쓴 적이 있는 짤 같은데,

저 문장이야말로 전국의 모든 1인가구를 꿰뚫는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야근을 하느라 집에 못 들어가도 가정이 무너질 판국에, 만약 아파서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다행히 독립 후 한 번도 그런 일이 없긴 했지만... 사실 생각을 아예 안 해볼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이야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매일 이슬이와 지내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사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1.

얼마 전 근무 시간에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사실 K-직장인 친구끼리는 9 to 6에는 외계인 침공 같은 급박한 사태를 제외하곤

서로 전화를 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친구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갑자기 입원하게 되었노라 했다.

세상 심각하게 어쩌다 그랬냐고 물어보니, 치킨을 시켰는데 막상 배달을 받아보자

생맥주를 같이 시키는 걸 깜빡했다는 거다.

그래서 편의점에 후딱 다녀오려고 슬리퍼만 신고 급하게 나가다가 계단에서 거하게 미끄러지셨다고...ㅎ...

역시 내 친구라고 실컷 웃어줬다. 다행히 엄청 크게 다친 건 아니라더라.


부모님껜 연락드렸냐 물어보니 당연히 연락은 안 드렸고...(아마 나 같아도 그랬을 거다)

병문안 같은 건 됐으니 자기 집에나 좀 들려달라고 부탁해 왔다.

입도 못 댄 치킨 좀 치워주고... 불이랑 TV랑 다 켜져 있을 테니 한번 가달라고...ㅋㅋㅋㅋㅋ

다행히 파주에서 멀지 않고, 여러 번 가봤던 터라 그러마 했다.

친구와 나는 반려동물이 없기에 펼쳐놓은 치킨 정도가 가장 큰 고민거리로 끝났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실컷 웃고 나서 잠깐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내가 갑자기 입원하게 됐더라면...

아마도 고사리들이(아스파라거스 나누스라든가...) 눈앞에서 아른아른거렸을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분무해 줘야 되는데... 밤에는 아직 추워서 퇴근하면 창문 다 닫아줘야 되는데...

유묘(苗)들 다 얼어 죽을 텐데...




2.

작년엔 만나던 친구가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열이 심각하게 나서, 급하게 응급실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다행히 의식이 없는 정도까진 아니었기에, 보호자 서명을 해야 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지만

아마 그런 상황이었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다.

결혼하지 않은 1인가구끼리는,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그래도 다행히 관계를 묻더니, '보호자 출입증'은 발급해 주더라.

증상이 더 심해지면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게 좋을 거라는 말과 함께.

보호자 출입증을 목에 매고 있는데도, 보호자가 될 수 없는 아이러니라니.


그 친구는 당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꼬박 하루를 응급실에 있었고 당연히 부모님껜 연락하지 않았다.

서로 법적인 보호자는 되어줄 수 없지만, 그래도 옆은 지키게 해줬으니 감사해야 하나...




3.

내겐 고독사 방지 메이트가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서로에게 카톡을 남긴다.(주말 제외)

사실 연애를 하거나 직장이 있을 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알려지겠지만...

연애나 회사를 쉴 때도 분명 있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아침마다 생사 확인을 하기로 한 거다.

이젠 거의 습관이 되어서, 3년째 일어나면 자동으로 카톡을 남기고 있다.

4년인가...


나의 고독사 방지 메이트...


가끔 1인가구 관련 이슈도 공유하고...

고독사 방지 대책도 논의하고...


아무튼 음.

아직 잘 살고 있습니다!

전국의 모든 1인가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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