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는 것을 사건의 축적으로 인지한다고 하는데 나의 하루는 얼마나 많은 사건이 있었는가?
무기력한 요즘, 글도 그림도 사유도 없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 재미없는 하루.
느지막이 일어나 할 일 없이 빈둥대다가 책 좀 보고, 나가서 종묘에 다녀오고, 세운상가 갔다가, 광장시장에서 떡볶이와 빈대떡을 먹고 왔다. 뭐 나름 이것저것 했던 하루지만 서너줄로 요약되는 하루는 너무도 빠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세밀한 묘사가 아닐까.
예를 들어, 광장시장에서 먹었던 떡볶이는 가래떡이 전부였다. 얇은 어묵 한 장 없이 가래떡으로만 만든 떡볶이라면그 가래떡은 보통 가래떡이 아니어야 했다(음식의 맛은 주된 맛과 도와주는 맛이 함께 만드는데, 주된 맛으로만 승부하는 것과 같다). 동이 난 떡볶이 덕에 한참을 기다리다가 나온 떡볶이는 가래떡이 말랑하니 씹는 맛이 좋았다. 떡 안까지 소스가 배어들지는 않았지만, 매콤한 소스와 심심한 떡이 잘 어울렸다. 양배추와 당근 그리고 시즈닝이 곁들여진 소스는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떡이 맛있어 소떡소떡도 먹을까 고민하다가 광장시장대다수의 점포에서 팔고 있던 빈대떡을 먹으러 갔다. 처음 빈대떡을 먹었을 때신김치가 들어가고 많이 느끼해서 한 조각 먹고 남긴 기억이 있었지만, 광장시장에 왔으니 빈대떡을 사고파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언제 또 와보겠어). 오랜만에 먹어본 빈대떡은 역시 느끼했다. 두꺼운 빈대떡을 젓가락으로 쪼갤 때마다 기름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추운 날이라 그랬는지 기름 먹은 빈대떡이 나쁘진 않았다. 다 먹고 번들거리는 입술을 마스크로 가린 채 집으로 향했다. 오늘이 올 겨울 최고 한파(영하 18도)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귀가 쪼개질 듯이 아팠다. 왜 얼굴보다 귀가 아픈 걸까? 귀가 더 얇은 살인가? 돌출돼서? 갈 길은 멀었고, 찬바람은 귓바퀴에 한참을 고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