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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Jan 09. 2021

찬바람은 귓바퀴에 한참을 고여있었다

관찰 일기


찬바람은 귓바퀴에 한참을 고여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사건의 축적으로 인지한다고 하는데 나의 하루는 얼마나 많은 사건이 있었는가?

무기력한 요즘, 글도 그림도 사유도 없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 재미없는 하루.


느지막이 일어나 할 일 없이 빈둥대다가 책 좀 보고, 나가서 종묘에 다녀오고, 세운상가 갔다가, 광장시장에서 떡볶이와 빈대떡을 먹고 왔다. 뭐 나름 이것저것 했던 하루지만 서너 줄로 요약되는 하루는 너무도 빠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세밀한 묘사가 아닐까.


예를 들어, 광장시장에서 먹었던 떡볶이는 가래떡이 전부였다. 얇은 어묵 한 장 없이 가래떡으로만 만든 떡볶이라면 그 가래떡은 보통 가래떡이 아니어야 다(음식의 맛은 주된 맛과 도와주는 맛이 함께 만드는데, 주된 맛으로만 승부하는 것과 같다). 동이 난 떡볶이 덕에 한참을 기다리다가 나온 떡볶이는 가래떡이 말랑하니 씹는 맛이 좋았다. 떡 안까지 소스가 배어들지는 않았지만, 매콤한 소스와 심심한 떡이 잘 어울렸다. 양배추와 당근 그리고 시즈닝이 곁들여진 소스는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떡이 맛있어 소떡소떡도 먹을까 고민하다가 광장시장 대다수의 점포에서 팔고 있던 빈대떡을 먹으러 갔다. 처음 빈대떡을 먹었을 때 김치가 들어가고 많이 느끼해서 한 조각 먹고 남긴 기억이 있었지만, 광장시장에 왔으니 빈대떡을 사고파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언제 또 와보겠어). 오랜만에 먹어본 빈대떡은 역시 느끼했다. 두꺼운 빈대떡을 젓가락으로 쪼갤 때마다 기름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추운 날이라 그랬는지 기름 먹은 빈대떡이 나쁘진 않았다. 다 먹고 번들거리는 입술을 마스크로 가린 채 집으로 향했다. 오늘이 올 겨울 최고 한파(영하 18도)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귀가 쪼개질 듯이 아팠다. 왜 얼굴보다 귀가 아픈 걸까? 귀가 더 얇은 살인가? 돌출돼서? 갈 길은 멀었고, 찬바람은 귓바퀴에 한참을 고여있었다.


하루를 세밀하게 묘사하면 서너 줄이  페이지가 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어쩌면 쓰고 싶어서 하루를 묘사하듯 살아갈지도 모른다. 뭐가 됐던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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