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보았을 때, 아니 아빠가 물려준 15년도 더된 쏘나타에 타고 있는 나를그가 보았을 때, 그는 새로 산 포르쉐를 주차하고 나오는 길이었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어디 가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엄마를 데리러 간다고 했다. 급히 시동을 걸고 자리를 뜨면서그의 포르쉐를 보느라 그가 나를 여태 보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뱅뱅 둘러싼 주차장을 나오며 대체 나는 왜 고개를 숙였고, 그는 왜 웃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만 돌고 돌았다. 눈이 휘날리는 날이었다. 안정되긴 싫었지만 안정될 수도 없는 현실이 날카로워 생채기가 나고, 닳고 닳은 바퀴는 눈길에 헛바퀴만 돌았다. 그 와중에 엄마는 이미 버스를 타고 가고 있다고 한다. 헛걸음이다.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 신호등이 걸리고, 걸리고, 딱 거기서 걸리고. 짧은 길이 늘어지게 붙잡는다. 한 것도 없이 만신창이가 돼버린 자가 다시 돌아왔다. 흙탕물은 뚝뚝 떨어지고. 내가 주차했던 자리에 다른 차가 들어섰다. 비슷하게 화난 차들이 나를 보고 서 있다. 나가면 돌아갈 자리 없는데 왜 헛짓거리를 하느냐고. 두 자리의 주차 라인을 밟고 있는 그의 포르쉐는 아무렇지 않게 서 있고. 하얀색 라인은 날카롭게 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