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 허상과 실제(깨어있는 삶)
나는 오랫동안 ‘허상’과 ‘실제(깨어 있음)’ 사이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에 갇혀 혼란스러웠다.
어떤 날은 허상을 온전히 이해한 듯했다.
내가 느끼는 분노, 슬픔, 자책조차도
결국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래, 모든 것이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본 단면을 통해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나는 그 이미지를 ‘좋은 사람’이라 여겼고, 그 이미지를 사랑했다. 싫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사람의 일부 행동이나 말투를 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거나 ‘괴팍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그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내가 싫어하는 건 결국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가 편집한 이미지였다. 이처럼 내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사람은 나의 해석으로 만들어진 허상이었다.
철학이나 불교, 심리학에서는 허상을 실체 없는 집착, 헛된 생각, 착각이라 말한다. 우리가 보고 믿는 대부분의 것이 진실과 다르며, 해석과 기대, 편견이 덧씌워진 허상일 수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른 날은 깨어 있는 삶을 분명히 느꼈다. 숲 속에서 산책할 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라락 사라락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코끝을 스치는 흙과 나무의 향기 속에서 나는 온전히 숲 그 자체가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숲이 되었고, 숲은 나였다.
"그래, 이런 게 현재를 사는 거지."
그 순간에는 허상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나는 ‘실제(깨어있는 삶’ 속에 있었다. 그 생생한 감각의 순간, 나는 어떤 해석도 없이 존재했고, 모든 것이 진실처럼 느껴졌다. 그 앎은 확신이었다. 흔들림 없는 명료함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날, 다시 혼란에 빠졌다. 허상과 실제(깨어있는 삶)가 얽혀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실제(깨어있는 삶)에서 느끼는 감정도 허상인가? 허상 속에서 실제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가 하는 생각은? 이 감정은 진짜일까? 아니면 또 하나의 허상일까?
모든 것이 허상이라면,
깨어 있는 삶이... 가능한가?
허상 속에서도 진짜가 있을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은 허상인가? 아니면, 실제인가?
질문은 끝이 없었고,
나는 점점 더 깊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허상과 실제 사이에서의 갈등은
마치 답이 없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경계의 어지러운 혼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