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은 우리에게 안락을 준다.
집 안에서의 평온한 순간,
오래된 친구와의 대화,
매일 반복되는 작은 습관들이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을 안겨준다.
우리는 그 익숙함 속에서 위안을 얻고,
그 안에서 자기를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나 익숙함은 때때로 우리의 생각을 갇히게 한다.
깊어야 할 사고와 감정을 얕고 흐리게 만들고,
더 넓고 깊은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한다.
익숙함은 우리를 품고 보호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벽이 나와 세상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가끔 익숙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익숙한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벗어나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가림막을 벗겨내야 한다. 익숙함과의 단절은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더 명확하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한다.
몇 년 전, 나는 '포기가 습관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극복하고자 스스로를 고통의 속으로 내던졌다. 내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은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걷는 것. 한 달간의 여정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고, 그동안 쉽게 포기하던 습성을 바꾸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12kg 배낭을 메고, 하루 25km~40km씩 걸었다. 걷고 또 걷는 반복적인 행위는 무료하고 무의미함의 연속이었다. 발바닥은 퉁퉁 부었고, 베드버그에 물려서 몇 날 며칠 잠을 설쳤다. 낯선 환경과 언어, 익숙하지 않은 사건들 속에서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되어 갔다. 걸음마다 피로가 쌓였고, 피로가 누적될수록 정신력이 갈려 나갔다. 바닥을 드러낸 에너지는 내 안에서 제 멋대로 날뛰는 감정을 더 이상 통제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자 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필터링되지 않은 감정들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힘들어." 조금 걷다가 또 " 힘들어." 조금 걷다가 또 "아~덥고, 짜증 나." 조금 더 걷다가 "아~ 토 나올 정도로 힘들어." 걷고 또 걷는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나타난 또 다른 반복적인 패턴은 바로 불평불만이었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마치 벽에 대고 말을 하듯 미련한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직장 상사나 동료, 혹은 가족에게 쏟아냈을 불평이었다. 그 불평은 아주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하여 아무런 잘못이나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불평불만을 흡수할 대상이 없었다. 벽을 맞고 다시 튕겨져 나와 오롯이 나 자신에게 머물렀다. 평소와 다른 이상한 감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불평을 쏟아냈지만, 그 대상이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왜 이렇게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한 불평불만인가.
질문 뒤에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소름 끼치도록 기이한 감각이 이어졌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벗어난 상태에서
나는 온전히 혼자였다.
나는 여전히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으나,
그 대상이 될 만한 것은 그곳에는 없었다.
그 고독 속에서 내 안에 고여 있던
불평과 불만을 마주했다.
그 순간 지금의 고통은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고 싶어 했다. 순례길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보고자 했다. 그 고통 속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고통 속에 뛰어들어 보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고통 속에 있다. 고통은 내가 원한 선택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순간 고통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순례길=고통. 너무나 자연스럽고 분명한 사실을 내가 무슨 재주로 거부할 수 있을까.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자연의 섭리인 것을.
불평불만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불만을 토로할 때 잠깐의 위안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문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불평은 마치 제자리에서 맴도는 바람과 같아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돈다. 불만의 대상이 누구이든, 어떤 환경이든 불평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문제는 불평이 아닌 실천을 통해 해결된다.
지금 경험하는 모든 고통의 원인은 바로 '나'였다. 내가 직면한 고통과 불만은 오직 나의 선택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게 되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전에는 외부 요인에 불만을 돌리며 익숙함에 안주했지만, 이제는 내 삶이 내 책임임을 깨달았다.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걷는 동안 내 사고와 감정은 새로운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했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익숙함에 쉽게 안주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길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재발견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삶은 변화를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고,
더 강한 자신으로 이끌어간다.
새로운 길을 선택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