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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Jan 16. 2023

10년차 교사가 보는 실패할 교육정책

고교학점제 전면 실시를 앞두고

2025학년도 고교학점제 전면 실시를 앞두고 교육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몇년 전부터 교육부에서 학생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서 듣게 하자는 솔깃한 슬로건을 내걸더니 이제는 2025학년도 고등학교 1학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전면 시행하겠다는 야심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아예 공표를 해 버렸다.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2년만 더 지나면 그들의 말대로 하자면 고등학교 1학년 신입생부터는 듣고 싶은 과목들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꿈같은 세상이 오는 것이다. 10년차 고등학교 교사로서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블라인드(주-직장인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는 플랫폼)의 게시물을 보다가 한숨이 절로 나와 오랜만에 다시 자판 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교학점제는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이 정책은 아주 크게 실패하여 한국 교육사에 영원히 흑역사로 박제될 것이다. 이는 교육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역량이나 능력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철학 없이 첫 단추를 끼웠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한숨 섞어 말하고자 한다. 


첫째, 가르칠 사람이 부족하다. 고등학생들이 다양한 교과를 선택해서 수강하려면 그만한 교과를 가르칠 교사들이 있어야 한다. 내 과목인 국어를 예로 들면, 1학년에서는 국어, 2학년에서는 문학, 독서, 현대문학 감상, 3학년에서는 화법과 작문, 심화 국어, 언어와 매체, 고전문학 감상의 교과가 있고 이를 가르칠 교사가 필요하다. 한 교사가 두세 과목을 가르칠 수도 있지만 고등학교에서 1주일에 6시수 이상의 수업준비를 교사에게 지시하면 교사의 스트레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다. 기간제 교사나 강사를 구하면 되지만, 심리학이나 교육학, 제2외국어, 보건이나 환경 같은 교양과목 등은 교원자격을 소지한 사람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서울에 있는 우리 학교도 고교학점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하면서 이런 과목들의 선생님을 못 구해 홍역을 치른 적이 있는데, 지방에 있는 3-4학급 규모의 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제가 관료들 뜻대로 기능할까? 아마 무늬만 학점제이고 지금과 별다를 바 없는 그런 학사운영이 똑같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교양과목들은 개설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현행 제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데 고교학점제를 할 필요가 없다. 


둘째, 공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고교학점제의 모토가 대학생처럼 자신이 배울 교과를 선택하여 시간표를 자율적으로 짜는 것인데, 시간표를 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강이다. 고등학생들도 대학생처럼 통학거리와 시간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고교학점제를 실시하려면 고등학생들에게도 자신의 성향과 특성에 맞는 시간표(예를 들면 오전에 학과공부를 하고 오후에 예체능 과목을 듣는 시간표라든가, 1교시가 전부 없는 시간표라든가, 점심시간 직후의 공강 시간이라든가)를 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현실은 학생들이 공강시간에 앉아서 쉴 공간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학교들이 수두룩하다. 대학교처럼 공강 시간에 학교 밖에 자유롭게 나가게 할 수도 있지만, 고등학생은 미성년자이다. 한국처럼 학부모들이 학교를 우습게 생각하는 나라에서 아마 공강시간에 자녀가 밖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라도 나면, 양아치들에게 붙들려 갈취라도 당하면 학교가 그 뒷감당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자율적인 인재를 키우자는 모토로 정책을 세우지만,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자율을 주기에는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그래서 고교학점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학교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공강을 아예 없애는 것이다. 그것이 개별 학교가 최소한의 자원으로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셋째, 고교에서 (최소성취수준 미달 학생의 유급제도를 포함한) 절대평가를 시행할 수 없다. 고교학점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학생들의 최소성취수준을 제시하고 이 수준이 비추어 볼 때 학생의 성취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상대평가 방식 아래에서는 잘 하는 학생이 많아도 결국 1등급부터 9등급이라는 정해진 비율에 맞추어 학생들을 줄세워야 하기 때문에 학생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는데,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이러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정책 입안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등학교는 어느 면에서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기관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학생들을 잘 독려하여 좋은 입시실적을 내야 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엄혹한 상대평가 체제 하에서도 교과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세부능력및특기사항에 대부분 칭찬 위주의 표현을 기록한다. 학생에 대해 정직한 기록을 하면 할 수록, 우리 학교의 입시 실적이 나빠지고, 입시 실적이 나빠지면 그 다음 해에는 학생들의 선호도가 떨어져 신입생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고등학교는 근본적으로 학생을 공정하게 평가할 만한 힘을 잃은 기관이다. 조금 강하게 말하자면,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의 역할은 (특히 3학년 담임의 경우) 거지 같은 학생들도 잘 달래서 대학을 보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점제-절대평가를 시행하면 아마 대부분의 학교에서 내신 시험의 변별이 사라지고 매일 잠만 자는 학생들도 최소성취수준을 달성하여 졸업하게 될 것이다. 정말이냐고? 이미 지금도 학교에 와서 매일 잠만 자는 학생들이 출석일수 2/3을 채워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사회에 나가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된다고 학교 현장의 이러한 모습이 달라질까? 고교학점제가 정식 시행도 하지 않았는데, 교육부 관료들은 최소성취수준을 달성하지 못할 학생들을 구제할 방책부터 세우라고 학교를 들볶고 있다. 만약 소신 있는 교사 하나가 잠만 자는 학생이 최소성취수준에 미달되었다고 정직하게 판단하고 20점 정도의 점수를 주면 그 교사는 어떻게 될까? 아마 하루 종일, 한달 내내, 일년 내내 학부모들과 관리자들과 교육지원청으로부터 시달릴 것이다. 평가에 대한 교사의 전적인 자율권이 없는 상태에서 학점제를 시행해봤자 남는 것은 거짓으로 꾸며낸 서류더미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억지로 고교학점제를 정착시키려 한다면 대학에서는 학생 선발권으로 맞설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자사고와 일반고 학생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블라인드 전형(진짜로 학교 이름이 100% 가려진다!)을 실시하지만, 눈치 빠른 입학사정관들은 학생의 숫자, 지명, 학교에서 개설한 교과목 이름, 세부능력및특기사항 몇 줄만 가지고도 지원자가 일반고를 나왔는지 자사고를 나왔는지 외고나 과학고를 나왔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아마 고교학점제를 억지로 정착시킨다면야 가능은 하겠지만 대학 입학처는 김철수 학생이나 이영희 학생이나 모두 고등학교에서 A학점만 맞았으니까 면접이나 구술 같은 방법을 통해 학생의 실력을 검증하려고 들 것인데, 그러면 정말로 노동자나 하층민 계급의 자녀들(문화자본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입시가 재앙이 될 것이다. 그들의 부모는 면접이나 구술 같은 말하기에 필요한 문화자본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고3 담임 4년차차가 보기에는 고교학점제 실시 이후 결국 말을 그럴듯하게 할 수 있는, 고급한 레퍼런스를 댈 수 있는, 말 한 마디만으로도 자신의 문화자본과 배경을 암시할 수 있는 그런 학생들만 인기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 2년 만에 다시 고3담임을 맡았던 2022학년도는 교직생활에서 치욕스럽고 고되며 가장 힘든 한 해였다. 이 녀석들을 100% 원칙대로 지도하고 평가하면 얘들은 아무도 대학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미사여구로 학생부를 채워야 했고, 2학기 성적은 대입 수시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2학기부터 (수능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택한 수업을 듣지 않았다. 


예전엔 밥그릇과 숟가락을 들고 다니며 아이에게 밥 한 숟갈이라도 먹이려는 어머니들이 애 버릇 잘못 들인다며 어리석다고 비웃었는데, 학생들의 출결 기록에 무단결석을 남기지 않으려고 출결서류를 애걸하듯 받아내던 내가 그 어머니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고교학점제를 시범 시행한 우리 학교, 교사로서 보기에 정말 최고의 선생님들과 시설을 갖추고 있던 우리 학교의 심리학 수업에서도, 교육학 수업에서도, 언어와 매체 수업에서도 어떤 학생들은 자거나 수능 영어 문제를 풀었다. 1년 내내 자거나 수능 영어 문제를 풀었다. 아니, 3년 내내 자거나 수능 영어 문제를 풀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교육관료들은 이것을 절대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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