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의 한 해, 허와 실

by 원시의 사유

작년1월5일 전남대병원에서 악성림프종(혈액암) 최종진단을 접수했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났다. 진월동 박준희 이비인후과에서 혈액암 소견을 전달받은 것으로 치자면 13개월에 다다른다.
재작년12월말 조직검사수술을 하고서는 서울로 갈건지, 화순전남대병원으로 갈건지 잠시간 고민이 스쳤지만 집과 가까운 화순을 택한 것이 돌이켜 참 다행스런 판단이다.
6회에 걸친 항암치료과정에서 내 몸을 구석구석 파고들었던 독소루비신, 엔독산주, 빈크리스틴, 리툭시맙이 지나간 흔적은 암세포를 무너뜨린 것만큼이나 다양한 부작용을 신체 곳곳에 새기었다.
6월이후 수차 페트시티, 시티, 초음파 등등의 의료 검사들을 반복하였고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의료 검사의 특징이랄까, 그 용도는 대체로 대증적 의료행위를 가동할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에 있지, 각각의 몸의 체질이나 특수성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데 활용되지 않는다.
전문의료인의 개별적 진심과 병원이 작동하는 의료시스템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의료검사의 작동방식은 결국 환자를 치료의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고 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한정하게 되고, 환자와 전문의료인이 협력관계일 수 없도록 하는 막연한 거리감을 구조화한다.
결국 환자의 외로운 자기치료행위와 환자가 가끔씩 도움을 빌리는 의료기술행위가 각각 따로 작동하는 매우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보건현실이 불가피해진다.
어쩌면 이런 의료현실은 학교가 시험을 통해 학생의 학습행위를 진단하려하지 않고('평가'하지않고) 학생의 성취도를 측정만 하는 교육현실과 닮아 있는지 모른다. 굳이 그 닮음에 빗대자면 병원의 거리감이 더욱 심각할까,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협력의 질이 더욱 심각한 문제일까?

나는 직위해제와 징계무효소송의 과정에서 법조인의 전문성의 괴리의 심각성을 느끼고 또 느꼈다.
또 간경변,간염치료의 과정과 혈액암 악성림프종 치료과정에서 의료인의 전문성이 질병치료의 과정에서 겉도는 것들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수 십여년 학교현실에서 보아온 교사의 전문성이 겉돌고 왜곡되는 것을 보아온 것과 위의 법조인, 의료인의 전문성이 겉돌고 왜곡되는 것은 어쩌면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근대사회, 근대국가의 존재방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는 매우 문제적이다.
1년전에도 느끼고 간헐적으로 표현했던 것들을 다시 반복하는 표현일 것이다.

항암제가 빚은 근육소실, 신체 불균형 현상, 백혈구의 불안정성과 혈소판의 빈곤이 빚는 문제들(감염에 취약한 신체관리), 신체의 기력저하로 인해 방어에 급급한 저조한 생활력과 반나절 루틴들을 벗어나는 과제들에 시달리는 2023년 하반기의 시간들이었다.
온전히 몸에 정성들이지 못하는 몇가지 과제들, 전교조문제, 교권문제, 재판진행과 서류준비문제 등으로 허약한 기력에 더하여 산만하고 산만한 시간들이었다.
나의 산만한 시간들만큼 허약하고 산만한 근대국가의 허상과 전문성 신화의 허구들을 짊어지는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1월1일 와온해변에서 안준철 선생님과의 만남을 이유로 돌아본 암투병 선배이신 안시인님의 속깊은 마음을 생생한 시로 접할 수 있음은 큰 위로였다. 안준철님의 시 한 편을 남기며 글을 맺는다. 나도 이리 좋은 일을 놓치지않고 고백할 수 있기를 그리며 기원한다.

< 좋은 일 > ---안준철 시 ---

암 진단을 받고 나니
암일까 아닐까
가슴 조이던 시간들
이제는 안녕이다
좋은 일이다

나이 들면서
자리 잡기 시작한
조무래기 병들
명함도 못 내밀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가을을 사랑하는 일이
누구를 해치는 일은 아니겠으나
이렇게 마냥 행복해도 되는 건지
늘 미안했는데
좋은 일이다

걱정 근심 없이 살아온
내 몸에서도
암이라는 것이 자랐나보다
세상 걱정도 하며 살라는 건지
좋은 일이다

암 진단을 받고 보니
많은 것들이 달라 보인다
세상은 더 아름답고
사랑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좋은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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