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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솔 Mar 31. 2018

발 없는 새가 쉬던 날

<아비정전>과 4월 1일

우리 둘(임청하와 장국영)은 1993년 <동사서독>에 출연하게 되었다. 맨 처음 촬영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가 내게 요즘 잘 지내냐고 물어왔다. 난 말대꾸도 제대로 못하고 커다란 눈물만 흘렸다. 그러자 몇 초 간의 침묵이 이어졌고 그는 내 어깨에 기대며 말하기를 "당신에게 잘 해줄 수 있소"라고 했다. 이후 우린 좋은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극장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극장에 도착해보니 그가 극장 건물의 벽에 기대 환히 웃어주었는데 그 미소가 꼭 천사 같았다. 내가 핸섬하다고 하니 그가 방금 머리를 깎고 왔노라며 수줍게 말하였다.
(후략)

-임청하 자서전 '창문 안 창문 밖'중 장국영 관련 내용


 다정했던 그가 떠난 지 15년이 흘렀다. 사실 5개월 전까지 장국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몰랐다. 작년 11월 어느 심심한 밤에 그 유명하다는 <영웅본색> 시리즈를 보다가 젊은 장국영의 심상치 않은 눈빛을 보고 사랑이 시작되었다. <해피투게더>, <가유희사>, <동사서독> 등을 연달아 보면서 주변에 '나 홍콩영화에 빠졌소' 티라는 티는 다 내고 다녔다. 조용히 좋아하기엔 장국영은 너무 컸다. 마음이 깊어지니 그의 이야기들을 많이 뒤져 보게 됐다. 점점 그를 보는 기쁨보다 잃은 슬픔이 더 커져갔다. 국영의 삶 자체가 파도처럼 밀려와 그가 출연한 영화의 모든 인물에서 인간 장국영의 인생들이 보였다. 사랑스러운 눈빛을 하고 팬티 바람에 맘보 춤을 추어도 서글픔이 피어오르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시절을 함께 보낸 장국영의 팬들이 지난 15년 동안 품었을 깊은 그리움을 이리 속성으로 떠드는 모습이 민망하기도 하다. 첫 문장을 쓸 때도 신경이 쓰였다. '다정했던 그가'. 마치 장국영을 잘 아는 것처럼 구는 게 아닌가. 그에 대해서 말할 때엔 최대한 소중하고 조심스럽고 싶다. 함부로 기뻐하고 쉽게 동정하고 싶지 않다. 임청하의 말처럼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두를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영화 <아비정전> 스틸컷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3월 31일 오늘, 다음 날을 기리기 위해 아껴뒀던 <아비정전>을 보았다. 장국영이 죽고 나서 듣는 '아비'의 대사는 영화 같지가 않다. 영화 속 아비는 마음이 불안정한 사람이다. 한 사람과 깊은 마음을 나누지 못하며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상대의 사랑을 잘 받지도 못하면서 늘 애정을 갈구하는 듯 보인다. 한 마디로 '발 없는 새' 같았다. 홍콩에서의 아비는 불편했다.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쉽게 저버리고 어쩔 땐 폭력적이며 제 멋대로였다. 장국영이 연기하는 아비의 눈은 너무도 위태로웠다. 가만히 보니, 망설임 없는 큰 사랑을 가지고선 조금의 상처도 주고받기 두려워 물러서는 유리 같은 마음을 하고 있다. 아비의 상처가 너무 궁금하다. 쉬는 것조차 울렁이는 바람에서만 가능한 새의 마음이.




<아비정전> 속 장국영과 장만옥
난 고개를 안 돌렸다. 난 단지 그녀를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기회를 안 주니 나도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아비의 지난 삶은 외로움으로 지어졌다. 평생 어머니에게 사랑다운 사랑을 받지 못한 소년은 친어머니를 찾으러 필리핀으로 떠나지만 만남을 거절당한다. 자신의 얼굴을 보여줄 기회를 주지 않을 거라며 돌아서는 청년의 뒷모습은 눈물이 나닌 메마른 사막에 가까웠다. 이전에는 아비가 맺는 관계에 대해 이해해보려고 했다면 이후로는 진실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란 확신과 함께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비와 장국영은 참 닮았다. 실제로 사이가 틀어진 부모로부터 애정이 부족했던 유년기를 보낸 장국영은 늘 외로움에 시달렸다고 한다. 왕가위 감독 영화에서 장국영이 맡는 인물들은 대체로 그와 비슷하다. 정확히는 장국영이 가진 슬픔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아프다.




1960년 4월 16일 우린 1분간 같이 있었어.
난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을.
이 1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  

장국영에 대해 뭐라도 더 알고 싶어 2003년 4월 1일 죽음 당시 기사들을 찾아봤다. 이런저런 자살 원인을 내놓은 글들은 참 미웠다. 그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내려놓자는 마음보다 굳이 짐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헤쳐 무게를 더하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원망스러웠다. 어떤 글에는 죽음으로써 장국영 본인의 완전한 예술을 완성했다는 표현도 있었다. 경악스러워 숨이 턱 막혔다. 힘들었다는데, 이유가 무엇이 중요한지. 쉬고 싶다는데, 그렇게 '미스터리'한 추측들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대사 말마따나 이미 과거가 돼버린 국영의 소중한 순간들을 그저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이자 사랑일 것이다. 아비가 수리진(장만옥)에게 하던 로맨틱한 위 대사는 우리가 국영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죽기 직전 뭐가 보이는지 궁금했어.
난 눈뜨고 죽을 거야. 죽을 땐 뭐가 보고 싶을까?
발 없는 새가 태어날 때부터 바람 속을 날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 새는 이미 처음부터 죽어있었어.
난 사랑이 뭔지 몰랐지만 이젠 알 것 같아.
이미 때는 늦었지만...  

글을 쓰다 보니 4월 1일이 되기 1시간 전이 되었다. 아비를 만난 지는 6시간이 지났다. 본인을 발 없는 새에 빗댄 아비는 처음부터 새가 죽어있었다고 했다. 사랑이 넘치면서도 부족한 사람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사랑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까. 애초에 산 사람의 마음으로 예술을, 사랑을, 자기 자신을 채울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아. 아비의 말을 생각하다가 장국영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발 없는 새가 바람에 누웠든, 땅으로 내려왔든 중요한 게 아니다. 새는 쉬고 싶다. 나는 쉼터가 되고 싶다. 나도 그 속에서 새의 마음을 닮아 굳이 바람 위에 잠들고 싶다. 이 글에서 유난히 '장국영'을 많이 말한 이유는 장국영에 대한 글이기도 하지만 그가 생전에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말을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몇 단락과 방금 문장이 울컥, 시야를 흐린다. 장국영을 알기 전 내게 아무 날도 아니었던 4월 1일. 내년에는 홍콩 땅에서 그를 만나고 싶다. 안녕, 국영. 난 당신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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