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헤르만 헤세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기

by 차미박

우리는 무無의 상태로 태어나며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보내며 온갖 사회적인 기준, 규칙, 금지된 것들에 대해 배운다. 나의 어린시절을 기준으로, 처음 이러한 것들에 배우기 시작할때 나는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엔 너무 어렸고 조금의 의심없이 이러한 것들을 빠르게 흡수 해 나갔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이 기준,규칙,금지에서 보호 받지 못하는 사람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게 되었고 때론 그 대상이 내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기준, 규칙, 금지된 것들’에 대한 불신의 불꽃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싱클레어에겐 이때가 10살이었지만 나에겐 꽤 늦은 고등학생 무렵이었던 것 같다.


횡단보도에는 파란불에 길을 건너야하고, 남을 미워해서는 안되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먼저 도와줘야 한다는 것 등의 규칙들. 물론 모든 규칙과 금지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책에서도 다수 언급되듯 세상은 선 아니면 악이고, 악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발상은 위험하다.


횡단보도의 파란불에 길을 건너는 것이 선이라면 빨간불에 건너는 것은 악이어야 한다. 하지만 건너편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 구해주기 위해 빨간불에 길을 건넜다면 그것은 악일까? 또한 남을 미워하는 것이 악이라면 아무 이유없이 남을 미워하는 사람과 내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똑같은 기준으로 악이라고 말해 질 수 있을까? 또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다가 크게 다친 적 있는 사람이 또 다른 어려운 사람을 보며 망설이고 있을때 그 사람이 악이라고 비난 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은 반으로 나누어 지지 않는다. 몇십억 사람들이 사는 만큼 몇십억개의 경우가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규칙을 정한다는 것이야 말로 위험 한 생각이다. 선 아니면 악이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정의는 사람들이 편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정의는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는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를 무시해 버린다.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한 것이 아니야, 바뀔 수 있는 거야. … 그러니까 우리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 … 사실 그것은 그냥 편안함의 문제거든!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그러니 누구나 자기 자신 편에 서야해. -86p

‌데미안은 싱클레이어에게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라고 말한다. 정해져 있는것을 따르는건 쉽지만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건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정해진 것을 따르기만한다.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규칙이든 금지든 그것이 무조건 옳은것은 아니다. 다양한 변화의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기준의 변화는 시대이다. 시대에 따라 기준도 변한다. 몇십년전에 옳다고 생각되었던것이 지금의 기준에선 악한 일이 되기도 한다. 지금도 우리에겐 수많은 금지된 것, 규칙, 법 들이 존재하지만 지금 우리가 옳다고 믿고있는 것들도 결국 시대가 변화하며 우리가 전 세대를 바라보듯 다음세대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 다만 이런 변화들 속에서 데미안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이 세워놓은 기준에 휩쓸리는게 아니라 자기내면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무엇을 허용할지 무엇을 금지할지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치가 유대인을 몰살시키려 했을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치가 정해준 기준에 따라 유대인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 했었지만 그 위험한 상황속에서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먹여주고 도와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정해진 규칙이 아닌 자신 내면의 기준에 따라 행동 하던 사람들 이다.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우리 모두 이러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데미안을 이루는 주제인 “각 개개인은 소중하며 특별하고, 각자의 내면의 귀를 귀울여야 한다”라는 말은 모두가 진심으로 이해하고있는 아니든, 현대사회에선 너무 많이 쓰이다 못해 진부해져 버린 표현처럼 들린다.


하지만 모든 문학은 당시 시대 상황과 결합 되었을때야 말로 큰 힘을 가진다. 데미안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씌어지고 전쟁이 끝난 직후 1919년에 출판되었다고한다. 이시기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다면 이 소설의 가치를 이해하는 더 많은 도움이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인터넷에서 이 시기에 대한 토막글만을 보며 이 시대 상황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는 식민지 쟁탈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가 되었을 때이다. 전쟁이 시작되자 각 나라들은 '국가의 영광'을 내세우며 국민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다.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개개인의 가치는 사치일 뿐이었다. 그저 전쟁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었으며 자신들이 누렸던 일상의 행복과 안정감은 일순간에 파괴되었다.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죽어나갔다.


모두가 국가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비판할 능력을 잃었던 당시 사람들에겐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이 책의 메세지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데미안에 열광했으며 데미안은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다친 모든 사람들을 위로 해주기도 했다.


데미안의 가치는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자신들이 싱클레어가 되었던 시기를 떠오르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자신이 싱클레어가 되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그때의 고민 혼란은 당연한 것이며 나만 겪었던게 아니라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맨 위에 말했듯 싱클레어에게 이 시기는 10살이었지만 나에게 이런 알을 깨는 시기는 17살 이었다. 개인마다 이러한 시기는 다르며 혹여 아직 이런시기를 겪지 못한 어른들에게도 한번쯤 고민 할만한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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