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셋째 주

2023.11.13(월)-11.19(일)

by 차미박

11월 13일 월요일


미뤘던 치과 방문. 아말감 교체 요망. 오른쪽 위아래 사랑니 발치 추천.


치과에서 자신의 신체일부를 이렇게나 크게 한 화면 안에 적나라하게 보는 건 불편함을 준다. 숨고 싶은 기분이 든다.


청소는 “깨끗해진 미래를 그리며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11월 14일 화요일


문득 내가 내 인생의 얼마쯤 와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내 친구 중에 누구보다 높은 텐션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 호기심 가득한 똥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전 세계를 여행했고 프랑스 예술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기도 했다. 저렇게 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모든 일에 열성적으로 사는 기분이 어떤지 궁금했다. 오늘 우연히 그 친구의 개인 블로그를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최근 게시글의 제목은 <살려고 일지 00번>. 그 안에는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절박하게 담겨져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바람이 시원해 서 라던지, 길 가다가 본 강아지가 귀여워서 라던지, 친구에게 받은 소소한 안부 인사 문자라던지. 그녀의 절망의 원인은 그녀의 열정 때문일까? 그녀의 열정이 활활 타 버린 나머지 그 불에 스스로의 생명도 꺼져가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한 사람의 기분과 태도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대형 물고기와 같다. 작은 꼬리짓으로도 분위기를 초토화시키곤 한다.


-


11월 15일 수요일


(…) 완전히 내 말이 그에게 가서 닿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을 주워서 자기 나름대로 조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노력이 고맙게 느껴졌다.


-


11월 16일 목요일


오늘 날씨는 흐리다. 그래도 고양이는 아침마다 해가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몸을 데우고 있다.


-


11월 17일 금요일


갈등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갈등이 풀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더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라고 해도 움직이는 상태에 있는 갈등은 더 해결되기 쉽다. 오히려 심각한 상태의 갈등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멈춰버린, 곪아버린 갈등일 것이다. 이런 것들은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겠으나 안으로는 썩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


11월 18일 토요일


성질은 개떡 같지만 마음씨는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방 청소를 하는데 콩 벌래 3마리가 각기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겨울에 콩 벌래라니. 어디서 나온 걸까 한참 생각을 하다가 책상 위에 있는 몬스테라 화분에 시선이 멈췄다. 봄 여름동안 바깥에 있다가 겨울이 다가와 저번주에 내 방으로 옮긴 화분이다. 아마 바깥에 있던 화분에 살던 콩벌레들이 아무런 대비 없이 내 방으로 딸려 들어왔나 보다. 두 마리는 죽어있었고 한 마리는 살아있었는데 그 아이는 잘 잡아서 밖으로 내보내줬다. 그렇게 콩벌레 소동은 끝이 났다.


청소를 하다가 로마시대 노예제도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책에서 봤는데 그리스에서 르네상스 문화 예술의 부흥을 이끌 수 있었던 이유가 노예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식인들은 잡다한 집안일, 돈을 벌기 위한 업무 등 번거로운 업무를 하지 않고 온전히 문화, 예술, 수학에 대한 생각과 활동들을 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 높은 수준의 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음.. 그렇다면 앞으로는 로봇이 이 노예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로봇들이 못하는(못한다고 여겨지는) 일이 창의적인 일인데 그 일들만 인간들이 하고 그 외에 잡다한 일들은 로봇들이 해서 또 한 번 르네상스의 시대가 전 세계적으로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바닥을 닦은 걸레를 빨면서 했다.


최갑수 님의 <사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를 자기 전에 읽었다. “인생은 절대 책 한 권으로 바뀔 만큼 만만한 게 아니다. 인생을 변하게 하는 건 책이 아니라 책 읽는 습관이다”라는 문장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


11월 19일 일요일


눈을 뜨니 아침 9시다. 어제 2시쯤 잠들었으니 7시간 수면은 맞췄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갔다. 소변을 보고 나오면서 손을 씻고 토스트기를 들고 방 안으로 갔다. 금요일에 사둔 쌀식빵을 구웠다. 갓 나온 빵을 샀던 터라 큼지막하게 5조각 정도로 썰려 있다. 식빵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온전한 식빵 모양, 하나는 어제 찢어먹다가 남은 반조각의 식빵이다.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었다. 잠시 후 빵이 올라왔다. 두꺼워서 그런지 잘 안 익은 느낌이다. 위와 아래의 방향을 바꿔서 한번 더 넣는다. 그리고 잠시. 다시 빵이 구워져 나온다. 반개짜리는 마음에 들 정도로 구워졌지만 온전한 식빵은 내 기준에 덜 구워진 것 같다. 반개 식빵은 토스트기에서 꺼낸다. 그리고 다시 토스트기 전원을 누른다. 그리고 반개짜리 잘 구워진 토스트를 씹어먹는다. 반개 토스트를 다 먹어 갈 무렵 온전한 모양의 식빵이 다시 올라왔다. 약간 탄듯하지만 잘 구워졌다. 토스트기는 열이 식도록 잠시 두고 책상으로 식빵을 가지고 왔다. 크기도 참 크다. 다 먹으면 밥 한 공기 정도는 될 것 같다. 쭉- 빵을 찢는다. 안의 뽀얀 속살이 드러나고 결대로 찢어지며 연기가 모락모락 난다. 입맛을 자극한다. 앉은 자세로 다 먹었다. 빵가루가 많이 흐르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 <복습>과도 같은 것이다. 한 번에 이해되지 않은 일들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생각해 보고 풀어보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11월 둘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