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던런북스 Donlon books (런던, 영국)

책을 좋아하는 다정한 친구의 서재에 들어와 있는 기분

by 차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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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어느 일요일 오후 2시. 런던 해크니에 볼일을 보러 나왔다가 시간이 남아 주위 서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진한 네이비색으로 칠해진 던런북스의 건물은 한눈에 봐도 작고 아담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10평 남짓한 공간 속을 가득 채운 책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흐린 날씨였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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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런북스의 첫인상은 크게 특별한 구석 없이 소박하고 아담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조금 더 둘러보니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계산대 쪽은 쨍한 코발트블루가, 공간을 구분하는 문 틈엔 빨간색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색깔이었지만 공간을 구분해 주는 포인트 컬러로,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조금 더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공간을 쭉 들러보고 난 뒤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트책이나 독림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인 만큼 특이하고 개성 넘치는 책들이 많았다. 물론 드문드문 펭귄북스에서 나온 문학 책들도 있었지만 주로 사진집, 디자인 책, 음악 관련 책들이 큐레이션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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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아트서적들을 취급하고 있는 던런 북스


한참 책을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쪽을 힐끔 바라보니 한 남성이 책을 싸고 있던 비닐 봉투(위로 접착이 되어있는 형태)를 열어 책을 꺼내 보고 있었다. 나는 경악했다. 나에게 봉투를 뜯는 행위란 내가 저 책을 소유한 이후에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상식밖에 사람이 많은 런던이지만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의 포장을 마음대로 벗기는 몰상식한 행동이라니. 하지만 그 남자는 태연했고 그리고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소심한 시위로 남몰래 그 남자를 한번 쏘아봤다.


놀라운 일은 조금 있다가 일어났다. 다른 한 손님이 비닐에 쌓인 책을 들고 점원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에 어떻게 되어있는지, 어떤 내용인지를 직원에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 직원은 뭐라 말을 하더니 그 책을 받아 들고 망설임 없이 비닐을 뜯어 책을 꺼냈다. 그리고는 손님에게 내밀고, 원하는 책이 있으면 비닐을 뜯어 내용을 봐도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손님에게 비닐을 뜯어봐도 된다고 말하는 서점 직원은 난생 처음 봤다. 물론 진공포장이 되어있는 책(재 포장이 불가능 한 책)은 뜯으면 안 된다. 다만 위에 찍찍이로 열 수 있는 비닐로 포장된 책은 열어서 보고 다시 넣어서 제자리에 두기만 하면 열어 봐도 되는 거였다. 괜히 아까 남성분을 아까 쏘아본 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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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보니 몇 년 전 서울의 한 독립서점에서 내가 했던 한 경험이 떠올랐다. 꽤 유명한 독립서점이었고 내부도 넓고 쾌적했다. 다만 서점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책을 넘기는 소리마저 시끄럽게 들릴 정도였다. 서점을 둘러보고 있는데 책을 보던 한 젊은 여성분이 실수로 읽고 있던 책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얼른 주웠는데 그 순간 계산대에서 직원이 성큼성큼 그 사람에게로 다가가더니 책을 홱 낚아채더니 앞뒤로 이리저리 확인을 했다. 그러더니 손님에게 "책에 상처가 나면 사셔야 해요"라는 으름장을 두며 책을 원래 자리에 두고 돌아갔다. 그 손님은 죄송합니다를 반복했고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곧 서점을 나갔다. 그녀가 나간 이후로 나도 괜히 책을 보는 게 조심스러워지고 왠지 감시받는 기분이 들어 불편한 마음으로 서점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나의 경험처럼 몇몇 서점들은 책을 지나치게 신성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던런북스처럼 아트북이나 희귀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물론 그들의 사정도 이해한다. 그런 책일수록 더 원가가 비쌀 테고 사람들 많이 볼수록 닳거나 구겨질 위험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돈을 내는 구매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용물을 보지도 못한 채 책을 구매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더더욱 비싼 책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 관점에서 던런북스의 직원들의 태도는 인상 깊었다. 그리고 단순히 내용물을 볼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를 너머 서점 직원들의 태도는 그 공간에 머무르는 다른 손님들에게도 비 언어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비언어적인 소통은 단순히 벽 한쪽에 안내문으로 “편하게 둘러보세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라고 쓰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큰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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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이외에도 던런북스의 직원들의 태도는 인상 깊었다. 유리 장식장에 있는 책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에게 창고뒤에서 관련된 아주 큰 책을 꺼내와서 손님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계산하는 손님과 책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길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등이 그랬다. 손님 응대라기보다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하는 대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로 인해 책을 파는 서점이 아닌 책을 좋아하는 다정한 친구의 서재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서점에서 구매율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래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는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은 옷이나 다른 물건처럼 한눈에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책에 대해서 알기 위해선 적어도 서문이나 작가소개를 읽을만한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읽기 행위에는 시간이 든다. 오래 머무르는 게 중요한 이유다.


나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약 30분 정도 서점에 머물렀고 그 사이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했다. 책을 구매하는 과정도 유쾌했고 직원과의 대화도 즐거웠다. 내가 머무른 30분의 시간 동안 나를 포함해서 5명이 책을 구매해 갔다. 작은 서점치고는 꽤 좋은 판매율이었다.(물론 이 짧은 시간으로 모든 걸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한 자리에서 2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꽤 서점이 잘해나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던런북스는 2008년부터 한 자리에서 운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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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해크니에 갈 일이 있다면 꼭 던런북스에 들러 따뜻하고 감각적인 분위기와 좋은 책들 그리고 직원들의 따뜻한 태도를 경험해 보길 바란다.


던런북스(Donlon Books)
예술·사진·서브컬처·독립출판물을 정교하게 큐레이션하는 이스트런던의 실험적 아트 서점

위치: 75 Broadway Market, London E8 4PH, 영국 런던
영업시간: 일-수: 11 - 6 / 목-금: 11 - 7 / 토: 10.30 - 6


Ps. 한가지로, 혹시 던런북스에 가게된다면 무작정 책의 비닐을 뜯지 말길 바란다. 그동안 내부 정책이 바뀔 수도 있고, 또는 내가 모르는 어떤 조건이 있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여 되더라도 그냥 뜯는건 무례할 수도 있으니 직원에게 한번 물어보고 개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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