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된 런던의 신비주의 서점, 왓킨스 북스

by 차미박

우연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나간 코번트 가든 Covent Garden 주위에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골즈보로 북스 Goldsboro Books가 있는 걸 발견한 것도. 크리스마스 이브라 일찍 문을 닫은 골즈보로 북스 옆에서 왓킨스 북스 Watkins Books를 발견하게 된 것도. 아쉬움을 달래고자 왓킨스 북스에 들어가게 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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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왓킨스 서점에 대한 아무런 기대나 정보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왓킨스 북스의 서점은 처음엔 다른 서점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왓킨스 서점의 1층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신비로운 문양들이 새겨진 책들을 보고 나서야, 조금은 으스스한 조각품과 공동품을 보고 나서야 내가 독특한 서점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왓킨스에 있는 책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서점의 책들과는 달랐다. 일반 서점에서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나 소설, 비소설 책들은 없었다. 대신 조금 특이하고 신비로워 보이는 책들이 책장에 가득했다.


왓킨스 북스 Watkins Books는 1893년에 설립된 이후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책방으로 신비주의, 영성, 오컬트, 명상과 심신 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서점이다. 창립자는 존 M. 왓킨스(John M. Watkins)로, 처음에는 책 카탈로그 출판으로 시작했다가 1897년 실제 서점으로 오픈했으며 1901년 현재 자리인 Cecil Court 19-21번지로 옮겨 이후 계속 운영되고 있다.


왓킨스 북스의 책 카테고리들은 아래와 같다.


· Indian psychology (인도 심리학)

· YOGA (요가)

· Witchcraft&Wicca (요술&주술)

· Antiquarian (골동품)

· Fourth way (제4의 길)

· Sufish&Islam (수피교/이슬람교)

· Tarot (타로) 등등


위의 카테고리만 봐도 이곳이 어떤 서점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서점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용했다. 몇몇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그리 많진 않았고 이상한 모양의 가면이나 골동품들 때문인지 약간은 으스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머뭇대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니 한쪽 팔에 큰 문신을 한 무서운 인상의 직원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사진을 찍는 나에게 뭐라고 하는 줄 알고 잔뜩 움츠리며 "Sorry?"라고 되물으니, 그는 아래층에 더 많은 책들이 있으니 내려가서 더 둘러보라고 말했다. 괜히 쫄았(?)다. 알고 보니 친절한 직원이었다. 직원분과 몇 마디를 나누고 지하로 내려갔다.


IMG_0449.jpeg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 붙어있는 액자들
IMG_0473.jpg 왓킨스에서 판매하는 가면과 장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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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일러둔 대로 지하 1층에는 더 다양하고 많은 책들이 있었다. 책들의 디자인도 마법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구석에서 터번을 쓴 남자 직원분과 한 여성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발견했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드문드문 '영혼, 행복, 정신' 등의 단어들이 귓가에 들렸다. 아마도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추천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런던의 책방들은 어떤 주제로든 직원들이 손님들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IMG_0464.jpeg 오컬트 주제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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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킨스 북스는 책뿐만 아니라 타로 카드, 크리스털, 부적, 향, 장신구, 조각품 같은 영성 관련 용품도 판매한다. 특히나 좋았던 점은 티셔츠, 노트, 펜과 같은 무작위적인 굿즈가 아닌 실제 서점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는 용품들을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정체성과 관련 없는 굿즈를 판매해서 서점의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굿즈와 책이 서로 시너지를 주며 각자를 더욱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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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로 흥미로웠던 것은 서점 내에서 타로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1층 구석에 초록색 커튼이 쳐진 작은 방이 있었고,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타로카드를 든 손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왓킨스 북스에서는 타로·점성술·심리 리딩 서비스를 예약해 받을 수 있으며, 이벤트나 작가 사인회도 열린다고 한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저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의 진심을 더해주고 조금 공간의 밀도가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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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정보 없이 들어간 서점이었지만 그랬기에 아무런 편견이나 기대 없이 공간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본인만의 개성을 잃지 않은 이런 서점들을 볼 때마다 참 영국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쩌면 조금 괴짜스럽고 고집 있는(?) 영국인들의 성격 덕분에 이런 서점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런던의 대형 서점인 '워터스톤스'나 '포일스'도 좋지만 결국 영국을 영국 답게 만들어주는 서점은 왓킨스 북스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이 뚜렷하다 못해 날카로운 곳들. 다수를 위한 곳이 아닌 소수를 위한 곳. 하지만 이런 곳이 결국은 다수의 대중이 오고 싶은 곳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개성이 넘치고 독특한 런던의 서점을 찾고 있다면 왓킨스 북스 Watkins Book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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