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茶飯事)
어떤 스님의 법문이다. 육체는 영혼을 싼 껍데기뿐이다. 그래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나고 죽는 것이 큰일이기는 하지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것이니 돌고 돌아오는 일생의 다반사(茶飯事)란다.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이 하루의 순환이라면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중유(中有)를 순환하는 것이 일생이 이치라는데 꽃다운 어린 아이로 어처구니없이 순환의 줄기에 휩쓸린 일도 다반사란 말인가,
스님의 법문이 해독되지 않은 언어처럼 낮 설다. 업장을 녹인다는 금강경을 읽고 아미타불(<불교> 서방 정토에 있는 부처. 대승 불교 정토교의 중심을 이루는 부처로, 수행 중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고 성불하여 극락에서 교화하고 있으며, 이 부처를 염하면 죽은 뒤에 극락에 간다고 한다. [비슷한 말] 미타2(彌陀)ㆍ미타불ㆍ아미타ㆍ아미타여래ㆍ안양교주ㆍ일불2(一佛)ㆍ타불(陀佛을 청하는 장엄염불을 높인다.)을 청하는 장엄염불(부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아미타불을 부르는 일)을 높인다.
꽃다운 나이의 그는 거짓말처럼 갔다. 회사에서 일하던 그가 복통을 호소했는데 사인은 머릿속 혈관이 터졌다는 것이다. 병원으로 이송하는 중에 일어 난 것이다. 세상은 산자의 편이라는데 무엇을 헤집어 떠난 자를 돌려 세울 것인가, 떠나기 전날 그의 카카오 스토리에 누구를 향해서인지 모를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라는 넋두리를 남겼다고 한다. 그 말의 명치끝을 후린다.
그가 영악하지 못했다고 나도 그를 쉽게 본 것은 아니었을까? 조금은 꿈 뜬 것 같은 무던함, 진중한 참을성이 분초를 다투는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시간을 놓친 것은 아닐까? 두 손을 합장하고 절을 한다. 노래를 부르듯이 장엄염불을 왼다.
정한도, 분노도, 슬픔도, 희한도 아미타 부처님 속에 잠잠하다.
타오르는 향로의 연기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린다. 무너지던 연기가 바람결에 다시 올라간다. 땅속의 갑갑한 어둠대신 밝고 따뜻하고 조금은 소란스러운 도심 속 사창2층미타전, 남향4층7호가 그의 집이다. 죽은 자와 산자가 분리되지 않은 공간 그의 어린 조카들이 삼촌아파트라고 부르는 미타전은 그녀의 기도처이자 영면의 집이다.
얼마 전 그녀 부부는 아들 집 위층에 내생에 거처 할 자신의 집을 예약해 놓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가듯 이생에서 저 생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너나든다.
한잠 푹 자고 좋은 세상에 다시 일어나라, 무구하고 순진 했던 꽃다운 아름다운 내 아들의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