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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집 Oct 22. 2018

옛날 흑백사진 한장

옛날 사진

여든 아홉 번째 생신을 맞은 어머니가 손자들 앞에서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을 꺼내 놓았다. 1930년대 초에 온 가족이 사진관에 가서 찍은 기념사진, 아주 오래전 어머니의 앨범에 들어 있던 사진이다. 새파랗게 젊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사이에서 서너 살배기 어린아이 모습으로 어머니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의 얼굴이 전혀 낮 설지 않다.

골똘히 무슨 생각에 잠긴 아이의 눈빛과 표정 속에는 우리 형제들의 모습과 우리가 낳은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 있다.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아버지 품안에 안겨있는 아이 옆에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들, 짓궂게 장난 게나 치고 다녔을 다부진 눈매의 외삼촌의 상고머리에 두루마기를 차려 입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다.

짙은 회색조로 무겁게 가라 앉아있는 배경 속에서 인물들의 얼굴과 저고리 동정이 유난히 하얗게 빛난다. 사진 속 등장인물은 모두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외삼촌들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 외가에 인사를 드리려 가면 두 아들을 먼저 보내고 어른들만 남아 있는 집안의 감도는 무거운 침묵이었다. 

어머니는 이 가족사진을 기억하는 유일한 증인이다. 이 사진은 어머니가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기록이다. 길고 고단한 여정의 출발점에서 아이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카메라 너머에 있는 낮선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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