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 가는 길

by 김찬집

양로원 가는 길

도심지를 벗어나 늦가을 들녘을 가로지른다. 분주함 속에 풍요가 거처 간 논밭에는 허허로움과 적막이 가득하다. 그루갈이를 하려는지 곱게 가다룬 논두렁이 소멸과 생성의 끝없는 순환 고리를 엮어내고 있다. 갈잎 같은 작은 새때가 서쪽으로 기우러진 바람을 타고 물결치듯 지나간다. 길섶에 열병처럼 늘어선 풀꽃들이 새삼 알짝지근하다. 세상 밝아서인지 친숙한 것들이 갑자기 낮 설게 느껴진다.

산중 작은 요양원이다. 2층의 단아한 주택에 넓은 정원을 가졌다. 각종 꽃나무들이 앞뜰을 이루고 뒤뜰에는 여러 유실수들이 실하게 열매를 맺었다.

시득부득 말아가는 꽃잎마다 지난밤 청아하게 빛나던 달빛 냄새가 스며들었다. 바닥에 수북한 낙엽들이 흙으로 되돌아가 기위해 이리저리 몸을 굴리며 오체투지 중이다.

별장처럼 단독주택으로 사용하던 것을 개조한 모양이다. 원장인 중년부부와 할머니가 한 지분아래 동무되어 살아간다. 식구 많은 어느 가정집 같다.

예배 중이었나 보다. 향기 잃은 꽃밭에 날개 접은 나비마냥 오순도순 정물로 모여 앉았다. 소파나 휠체어에 작은 몸을 웅크리고 가는귀먹은 얼굴을 갸웃거린다. 마음과는 달리 찬송가는 늘어지고 우물우물하다. 그래도 잘박잘박 발장단과 휘적거리는 손동작으로 기꺼이 흥겨워하는 눈치다. 형형한 기색도, 펄펄한 기운도 사라졌지만 죽음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절실하다.

우련한 눈빛들이다. 더 이상은 변곡점 없는 삶의 여정을 마치 자신만이 속도와 리듬에 따라 움직이듯 담담한 표정이지만 조금은 아쉬운 듯한 무엇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복잡하고 혼탁한 생각에서 벗어나 다음 생애의 맑은 영혼을 찾아 나선 순례자들 같다. 청안하게 푸르던 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긴 채 침묵 속에 들어간 겨울 숲처럼 야위고 굽은 등은 왠지 서늘하고 쓸쓸하다.

보고만 있어도 자꾸 슬퍼진다. 꽃님이니 달님이니 예쁜 방 이름을 붙여 놓았다. 머리ㅂ맡 탁자에 가족사진첩이 체납된 고지서와 같은 그리움으로 쌓여있다. 방은 정돈되고 청결하지만 온기가 보이지 않는다. 살 냄새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꽃병의 들꽃향기도 머무는 자의 향취일 뿐이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결코 미혹과 위무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갖고 갈 짐도 없다. 옷장과 침대 그리고 발밑에 보따리 하나뿐이다.

후덕한 인상의 원장부부가 한마디 귀 속말을 전한다. 할머니들 방에서는 밤마다 옷장을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만장처럼 흐느적대는 시간으로 보자기 싸매는 손들이 밤새 사르륵거린다. 입고 갈 고운 옷 하나 머리맡에 두고 크고 작은 보퉁이를 발밑에 쟁여 놓는다. 꽃님 방 구순 먹은 할머니는 엄마가 내일 데리러 온다고 하고, 달님 방 막내 할머니는 고향 뙈기밭에 감자 캐러간다며 속절없는 밤을 붙잡는다. 산새소리에 늦은 잠이 깬 할머니들은 서둘러 거울 속의 온전한 제 모습을 보고서야 주섬주섬 보따리를 풀고 제자리로 돌려놓는다고 한다. 익숙한 일상처럼 호접몽 같은 어젯밤의 파적거리가 되어 저녁이면 저녁 꽃잎들 활옷처럼 다시 피는 하루가 이어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시간분임을 안다. 되돌릴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시간이 내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것을 조락한다.

내 몸이 안다. 구태여 시간을 욕심내지 않은 저승길에서 생존에 집착해야 할 이유와 이미는 공허하다. 그래서 무덤덤하다. 더 이상 세상에 왈가왈부도 하지 않고, 싫은 것을 결코 싫지 않게 넘기지 못했던 그 완강함도 함부로 들어내지 않는다. 한때의 절망과 결핍들도, 상처투성이 과거들도, 평생 햇빛 한번 제대로 없이 보낸 삶의 남루와 희한도 잘라버린 신경세포처럼 통증을 잃은 지 오래다.

별의 방 할머니를 방문한 늙숙한 자식 내외가 있다. 청유형의 완곡어법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말들이 날빛방안을 멀쑥하게 떠다닌다. 수다도 눈물도 아닌 그저 허허로운 웃음이나 풀 풀이 날리며 무료한 오후를 핥아내고 있다.

바쁜 일이 있는지 금방일어서는 자식의 기름 끼 없는 목덜미를 보면서 출근처럼 저녁의 기약이 아니라 매번 마지막일 것 같은 아릿한 배웅을 한다. 서로가 맞잡은 미지근한 손의 함의는 무엇을 전하고 있었을까,

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하고 싶다는 어머니와 마지못해 나선 길이었다. 연로하지만 아직은 정정해서 뜻밖의 주문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인연의 끝은 늘 이렇게 허망한 것 인줄 알기는 하지만 먼 훗날이라고 밀쳐두었던 현실이 편도선 부은 목에 침 삼키듯 묵묵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아니라고,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못 박지 못했던 그 순간을 내내 자책하고 불편스럽기만 했다.

음식솜씨만큼 입맛도 까다로우셨는데 이젠 그런 투정마저 번거로워 할 만큼 기억력이 잃었다. 단아하던 몸매도 나뭇잎 떠나보낸 우듬지처럼 홀로 앙상하다. 그나마 의지하고 타시락거리면 살던 남편마저 떠나보내고 여린 늑골사이 녹슨 거푸집에서는 매일 서늘한 바람이 분다. 노구에서 여자는 사라졌지만 늘 꽃으로 남고 싶다던 어머니는 이제 단풍든 낙엽을 보아도 곱다고 할 줄 모른다. 단신 자신이 낙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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