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

by 김찬집

선진 문화는 지도층에서부터 파급 시켜야

2014년 언론의 화두는 “대한 항공 의 <땅콩 회항>이었다. 외국 방송 CANNA, BBC등은 ‘땅콩 분노(nut rage)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 기사를 흥미진진하게 보도 했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세계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이나 사건개요는 다르지만 이 둘 사이엔 “사회 지도층”과 “갑질”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 한다. 전자엔 재벌이, 후자엔 정계, 재계, 학계, 문화계지도층인사들이 줄줄이 엮어 있다. 재력을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재벌의 모습은 권력을 등에 업고 국정을 조정한 최진실 스캔들 관련자들과 달아 있다.

이러니 ‘지도층’ 이라 불리는 집단에 국민들의 불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몇 년 전 한 외국인으로부터 “ 한국인들은 지도층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왜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이유를 몇 가지들을 수 있다.

우리사회 지도층은 본이 노력 보다는 ‘잘 태어나서’ 그 자리에 앉는 경우가 대다수다.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400대부자’명단을 보면 ‘아메리카 드림’이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미국 등 서구권에선 아직도 자수성가 한 이가 대다수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세습적 부자’의외의 인물은 이 명단에 오른 적이 없다.

더욱이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 노력해서 상류층에 편입한 이들조차 ‘줄을 선다.’ ‘권력자에게 잘 보인다.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노력했다는 암담한 현실을 인지 할 수 있다.

이들이 종종 모범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한다는 사실도 반감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학 입학이나 취업 등에서 갖은 특혜를 누리는 반면 병역과 납세의 의무는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간다. 돈과 권력이 없는 자들을 향한 막말과 횡포는 너무 자주 봐서 충격을 느끼지도 못한다.

물론 선진국에도 일부지도층의 일탈은 존재한다. 작년 미국에선 부자 아버지를 둔 10대소 년이 음주운전으로 4명을 죽인 뒤에도 전혀 반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을 계기로 ‘어플루엔자’라는 말이 유행 되었다. ‘풍요롭다(affluent)와 유행성독감(influenza)을 합친 신조어로 ’부자병‘ 정도로 번역 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큰 물줄기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 상류층 자제들의 다니는 이튼 스쿨에선 1,2차 세계대전 동안 학생 5000명이 참전해 전사 했다. 빌 게이츠와 위런 버핏 같은 세계 최고의 갑부는 기부에서도 세계최고의 수준이다. 지난해 마크 적커버그 face book CEO도 자신의 재산 99%를 사회에 환원 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와 선진국의 차이는 바로 이런 지도층의 존재 여부가 “바로미터”다.

우리 지도층이 언제까지고 건전하지 못한 방식으로 문화 형성된다면 그리고 그들의 고질적인 “갑질”과 “부자 병”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선진화는 요원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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