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준다는 것

by 임찬수

마음을 준다는 것.

내 몸의 절반을 이루는 것은 걱정이라 생각할 정도로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늘 수십 수백 가지의 걱정을 안고 살지만

그래도 걱정 하나하나 나름대로의 각자 무게를 가지고 있다.


가장 높은 중요도를 차지하는 것은 내가 표현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원래도 그렇게 표현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첫 번째 이유로는 생긴 것과 다르게 부끄럼도 많고 쑥스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말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갑작스레 주목을 받거나, 나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은 부끄럽고 그 자리를 도망가고 싶어 지며 심한 경우엔 얼굴이 빨개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생긴 것과 다른 행동에 가끔씩 놀림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 그냥 포기하고 품고 살고 있다.


두 번째로는 성격 자체가 예민하고,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감정을 느끼는 성격이다 보니

많은 말을 품고 있을 때, 오히려 말이 없어지는 편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정제되지 않은 말들 속에서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까 봐 아끼고 아끼는 편이다.

그게 편해서가 아니다. 내 마음이 단순하지 않아서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길고도 짧게 머물렀을 때, 내가 지냈던 게스트하우스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

처음 이 숙소에 왔을 때는 1박을 했었고, 강아지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기도 하고

어차피 내일이면 안 볼 친구들이니 가까이 가지도 않았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제주도가 그립기도 했고, 시간이 나던 터라 다시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그 숙소에 일주일정도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숙소는 나에게 마음에 들었었다. 침구류가 편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분위기들도 안정적인 느낌들이 강해서 과감하게 결정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언제부터였을까, 강아지들과 친해졌고 가끔은 낮에 햇빛이 좋아서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강아지들과 낮잠을 자기도 했었다.

살면서 동물과 그렇게 가까운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싫어한 적은 없었지만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아마 다들 어릴 적에 친구 집에 놀러 가면은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들이 한 둘은 있었을 것이다.

보통 그러면은 강아지가 귀엽다고 같이 노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정도로 동물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 두 친구들과 함께 놀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이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있었다.


두 강아지의 이름은 '하루' '하쿠'였다.

나는 두 친구 모두 잘 놀아주고 좋아해 주고 마음을 줬는데

하쿠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내가 하루에게 다가가면은 조용히 와서 하루를 괴롭히곤 하였다.

처음에는 그냥 하쿠가 심심해서 장난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우연이 반복되면은 필연이라고 내가 하루를 챙겨줄 때마다 하쿠는 늘 하루를 괴롭혔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 하루는 내가 다가갈 때마다 도망가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방문했을 때는 이 숙소에 15일을 머무르면서

나에게는 단순한 아침 루틴이 하나 있었다.

항상 9시쯤 일어나 아침햇살을 마시며 하쿠와 하루에게 잘 잤냐고 인사를 나눈 뒤,

담배를 하나 피면서 오늘 어디 갈지 고민하는 게 내 루틴이었다.


나의 아침루틴을 실천할 때마다 하루는 하쿠가 때릴까 봐 멀리 도망갔었다.

아침루틴을 마치고 나서 씻고 나와 사진을 찍으러 늘 밖에 나갔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사진을 좀 찍다가 오후 2~3시쯤 숙소에 들어오면은

하루는 돌아오는 나를 보고 또다시 하쿠에게 맞기 싫어서 나를 피해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15일 동안 우울함과 함께 불편한 여행을 하던 중, 돈이 다 떨어져서 집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떠나는 날은 전 날부터 당일 아침까지 비가 많이 왔었고

가기 전에 친구들과 인사를 하려고 캐리어를 챙겨서 마당에 있는 강아지들에게 갔다.

내가 집에 간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는지 날 피해 다니던 하루가

그날은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쿠는 그런 하루를 때리지 않았다.


제주도에 있을 때는 솔직히 행복하진 않았다.

도피를 위해 떠난 제주도였기에 오히려 더 피폐해져 가는 것을 알고 있었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막상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하루 하쿠를 보니 떠나는 게 아쉽기도 하고 하루가 늘 나 때문에 맞은 게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평상에 누워 낮잠을 잘 때, 코로나 초창기라 손님이 많이 없어서 누가 올 일은 흔치 않았지만 나름대로 누가 올까 봐 늘 옆에서 지켜주고

귀찮을 텐데 내가 가끔 껴안고 낮잠을 자도 가만히 있어주었다.


사장님과도 예전부터 몇 번 숙박을 했었지만, 15일 동안 길게 지냈던 것은 처음이었고

코로나라 손님이 없어서 둘이서만 있던 날들도 며칠 있었다.

그렇게 같이 지내며 힘든 시간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힐링을 할 수 있었는데 떠나야 한다니

아쉬움 그리고 미련과 고마움 미안함 등등 여러 감정이 한 번에 느껴졌다.


무언가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한 번에 느끼게 되면은 마음이 편해지지가 않는다.

지금에야 시간이 지나 아쉬움이나 미련 고마움 미안함 등등으로 정리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마음들을 다 정리할 수 없었고, 여러 가지 마음을 한 번에 느낄 뿐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느끼다 보니 누군가에게 그 말을 다 하기란 많이 어려운 일이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좀 더 자세하고 추상적으로 느끼는 편이었고 그게 유난히 심한 사람임을 알고 있기에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면은 정리를 해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근데 단시간에 그걸 다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표현을 잘 안 하게 되고 그냥 떠오르는 감정 하나를 말하며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제주도에서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나이를 먹으며 점점 내향적인 사람이 되었고

하나 배워왔던 것은 마음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준다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상대방은 마음을 받기로 합의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받고 그만큼의 마음을 돌려준다고도 합의하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100만큼 준다 해서 그것이 100만큼 돌아올 순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누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찬수 씨는 사랑이 참 많은 사람인 거 같아요. 항상 사람들을 보면은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고 도와주고 싶어 하고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마치 그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것처럼"


어쩌면은 맞는 말이었다. 나는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누군가를 보면은 늘 챙겨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그런 성격이 나에게 고통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고통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우산이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우리의 관계는 무한함이란 존재하지 않고, 유한함만 존재할 뿐 언제나 관계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 받아들이기 너무 어려운 것이었지만 두렵고도 무서운 사실이었다.


그렇게 2년간 그 말들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헐어버린 내 마음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우산을 쓴 것이다.

마음이 헐어버릴수록 미움에 쏟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마음은 점점 나를 더 망쳐버릴 뿐이었다.


어느 날, 군대에서 있을 때 성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성당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의 모순을 많이 보게 돼 환멸을 느껴 성당에 나가지 않았었다.

그래도 부탁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약 한 달 정도 고민을 한 뒤 하기로 했었다.


아이들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마음을 많이 주게 되면은 너무 힘들어질 것이고, 나는 이것을 오래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랑이 너무 많은 나머지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게 되었고

나에게 무엇을 준다 해도 안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소중했다.


처음에는 아이들 앞에서 그래도 선생님이니까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인위적인 모습을 많이 만들려고 했었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이들 앞에서의 내 모습과 진짜 내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아이들을 거짓으로 대한다는 생각에 그만두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냥 좋은 사람이 되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나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며 노력했다.


교사를 하고 나서 반년정도 지나 아이들의 총책임자가 되었고 적지 않은 수의 아이들을 보살펴가며

평일에도 저녁에 성당에 나와 아이들을 위해 준비하는 게 힘들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끝은 언제나 조용히 우리 곁에 스며든다고 교사를 하던 중, 어떠한 일이 생겼었고 나는 그 일들을 해결하려 했고 막아보려 했지만

나에게 협조하는 사람은 우리 교사들 외에 없었고, 다들 무엇이 두려운지 모른척하고 그것을 숨기기 바빴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은 무서우니 나보고 이야기해달라며 내 뒤에 숨기 바빴다.


그러던 중 더 이상 못하겠다고 그만두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다 책임을 질 테니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하였고 그렇게 아이들을 남기고 그만두기로 하였다.


한 달 동안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었다. 마음을 정리해야 했고 아이들을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나에게 그만두는 일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아직 어린아이들을 두고 그만두려니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매주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은 교사들끼리 성당 근처 치킨집에 가 술을 마셨었다.

술을 다 마신 후 나 혼자 집 방향이 달라 헤어진 뒤 혼자 집에 걸어가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은 채 길에서 펑펑 울며 집에 걸어가곤 했었다.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고, 그 무엇을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아이들을 두고 그만두려니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렇게 그만두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예전에 고등학교 은사님과 나눴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22살 때, 나는 고2 때 담임선생님을 뵈러 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항상 나를 많이 챙겨주고 배려해 주셨고

한 번은 내가 사고를 크게 쳐서 선생님이 교장실에 불려 간 적도 있었지만, 나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상황을 확인한 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주시면서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었다.


잘 지내시나 궁금하기도 했고, 예전처럼 그런 시간들을 가지고 싶어서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러던 중 선생님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하셨다.


"너는 너무 착해서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거야. 고등학교 때처럼 또 그러고 지내는 거 아니지? 옛날부터 걱정이었어"

처음에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그럴 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말을 이해하는 데까지는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관계가 끝날 때마다 그리고 헤어짐이 있을 때마다 힘든 경우가 참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시절에 마음을 주었기에, 그리고 마음을 다 주었던 적도 있었기에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2년 만에 또다시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성격이 점점 변해 어디 가서 말을 잘하지 않게 되었고 표현도 하지 않게 되었고

누군가와 관계가 무서워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요즘은 더욱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에 쏟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남과 함께 지내고 남이 잘 지낼 수 있는 게 내 삶의 행복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나는 그럼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가끔씩 나와 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데, 그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런 시간도 하나의 과정이에요. 언젠가는 그것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말을 듣다가 내가 예전에 쓴 글이 떠올랐다. 그 글에 적은 말은 이렇다.


'나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해서 슬퍼하기보다는 그걸 통해서 내가 무언가를 더 얻는 게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 하곤 해요.'


'어떻게 됐든 간에, 여러분들의 삶에는 또 하나의 글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쓰일 글들이 어떤 글일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 또한 이것도 한 부분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 깊은 고민의 해답은 나 스스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좀 가벼워졌고, 이것도 삶의 경험이고 성장이라고 여기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다시 마음을 열 자신은 없다. 하지만


마음을 간직한다는 것, 그리고 마음을 준다는 것

나는 내가 소중하다. 그렇지만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당신들이 나에게는 나보다 더 소중하다.


언젠가 마음을 주는 법을 다시 알게 될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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