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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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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Mar 15. 2024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다가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책과 기억은 오해하며 맞닿아있다. 책은 분명 그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내 경험이 떠오른다. 그건 마치 서랍 끝에 낀 소맷자락을 밖으로 잡아당기는 것과 비슷하다. 기억을 밖으로 잡아당긴다. 책 속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때로는 그로 인해 독서를 중단하기까지 한다. 독서는 독서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을 소생시키기 위해 필요해지기도 한다. 본래 없었다고 여겨질 만큼 사소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 나는 모든 기억이 유의미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무의미했던 기억을 유의미하게 받아 적는다. 아무리 끄집어 내려해도 좁은 틈 사이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적이라 이야기는 현재와 맞닿아 보태어지고 다듬어진다.  


1.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던 젊었을 적 아빠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지금과는 달리 아빠는 무척이나 건강해 보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항상 늙어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빠는 목소리가 크고, 몸이 단단해 보이고, 술도 잘 마시고, 그 누가 와서 시비를 걸어도 쫄지 않을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빠는 항상 젊어 보이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던 아빠는 평소와 좀 달랐다. 젊고 활기차 보였다. 아빠는 바다를 좋아했다. 봄바람처럼 살랑이는 바다가 아닌 웅장하게 철썩이는 파도를 가진 바다, 퍼렇다 못해 새까맣게 느껴지는 그런 바다를, 아빠는 좋아했다. 아빠는 아주 오래 서서 바다를 바라보곤 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별생각 없이 좇곤 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아빠의 눈동자는 바다로 가득 차 올랐을 것이다. 눈동자에 가득 찬 바다, 그 무엇도 담지 않아도 되는 바다의 독주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걸까. 아빠는 담배를 한 대 꺼내 피우며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애써 옮겼다. 눈동자에 가득 찼던 바다는 그렇게 사라졌다.   


2.

외갓집인 울진의 바다. 외갓집은 멀어서 자주 가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인천에서 울진은 자동차로 8시간 이상 걸렸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한번 정도 여름방학에 갔었는데 그때 기억이 이따금 선명하게 떠오른다. 외갓집은 바다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외갓집에서 직선으로 조금만 뛰어가면 바로 바다였다. 아주 좁은 골목을 지나기만 하면 바다가 펼쳐져 보였다. 그 바다는 바라보기만 해야 되는 바다 같았다. 아빠가 좋아하는 바다처럼 그 바다는 웅장했고 터프했다. 나와 동생은 그 바다의 입술쯤에서 열심히 놀았다. 그 이상은 갈 수 없었다. 외갓집 거실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사촌오빠가 대문 앞에 서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사촌오빠는 한 손에 문어를 잡고 있었다. 자신이 문어를 잡았다며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밤이었다면 그 밤은 잠시 어둠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문어를 어떻게 잡을 수 있는 거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 시퍼런 바다의 안쪽을 인간이 들여다볼 수 있는 건가. 무슨 수로 문어를 잡아올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촌 오빠는 기껏 해 봐야 그 당시 중학생이었을 것이다. 사촌오빠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내게 그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렬하게 남아 있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순수한 소년의 미소, 단순한 기쁨과 환희가 몸 전체에 퍼지는 순간에만 볼 수 있는 그런 얼굴,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비정상적인 기억. 내가 외갓집에서 본 바다는 그 순간이었다.


3.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간 제주도의 초여름 바다는 유난히 반짝거렸다. 숙소 근처에 있는 곽지해수욕장은 초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 있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는 바다에 몸을 담갔다. 남편은 깊지 않은 곳에서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고 나는 모래사장에 타월을 깔고 앉아 챙겨 온 책을 잠깐 들춰 보았다. 이미 다 읽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책을 가방에 넣어 왔다. 여행에 어울리는 책은 새로운 책이 아니라 이미 읽었지만 또 읽고 싶은 책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책은 무엇을 시작하기에 좋은 싱그러운 초여름과 잘 어울렸다. 아이와 남편은 즐거워 보였다. 바다가 일렁일 때마다 아이는 간지러움을 타는 것처럼 광대가 도드라지게 웃는 것 같았다. 아이가 웃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었다.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나는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보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이가 경험한 제주도 바다는 어땠을까. 간지러웠을까. 즐거웠을까. 나는 책을 앞뒤로 넘겨보다 아이와 남편을 살피다 바다를 바라보다 잠시 그 자리에 누웠다. 따사로운 태양이 얼굴에 내리쬐었다.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그 정도로 해결될 볕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나는 잠시 그렇게 누워 있고 싶었다. 초여름의 바다,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사장에 누워 다가오는 여름을 누구보다도 먼저 만끽하고 싶었다. 여행에 온 기분에 취하고 싶었고,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도 바다를 느끼고 싶었다. 바다는 눈앞에 있었고, 나는 그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바다에 흠뻑 빠져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은 지친 기색으로 바다에서 나왔고 아이는 아쉬운지 계속해서 아빠의 손목을 붙잡고 바다를 향해 몸을 비틀었다. 모래놀이를 하자는 말에 잠시 아이는 관심을 돌렸다. 우리는 모래성을 쌓았다. 성이라기보다는 그냥 모래더미에 가까워 보이는 그런 형태였다. 언젠가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순간에 항상 최선을 다한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모래성이 무너져 사라졌음에도 언제나 거기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래성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그 모래성은 거기 없지만 여기에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순간은 언제나 의미가 있다.  


4.

나는 바다에 들어가는 것보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물이 무서웠다. 아빠가 송도해수욕장에서 나를 안아 물속에 장난스럽게 던졌을 때, 뿌연 세상을 잠시 경험했다. 금방 나는 세상 밖으로 나와 정신을 차렸지만 그 느낌이 싫었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느낌,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느낌, 언제 내가 떠오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느낌, 거기서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짧은 순간 몰려오는 그런 느낌은 공포라는 단어로 모아졌다. 어떤 이는 그런 공포나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 애쓰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발이 닿는 곳에서의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 내게는 더 필요했다.  


바다에서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다에 있었던 게 아니라 그들에게 있었다. 바다에 가면 더욱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한 아빠의 뒷모습, 문어를 들고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순수한 얼굴을 하고 있던 사촌오빠의 환한 미소, 초여름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해가 저물 때까지 떠나려 하지 않았던 지금보다 작았던 아이의 모습, 그것을 그들이 존재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책을 읽다가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 시절 초능력을 가진 듯한 사촌오빠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이제 사촌오빠를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 그저 책을 읽다가 바다가 나오면 이렇게 기억을 끄집어 내 인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지나간 순간은 다 그럴지도 모른다. 지나가버리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아예 만날 수 없어 슬픈 게 아닐까 싶다가도 지나간 순간 전부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과 계속해서 작별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반대로 살아있는 한 기억할 수 있다면 언제고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작별은 아니다. 발이 닿는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책을 읽으며 마주하는 어떤 시절의 나와 그들은 묘하게 닮아 있다. 바다는 언제나 거기 있다. 그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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