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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나러 나갔던 10월 어느 날의 오후, 동화 속 이야기와 다르게 화창한 햇빛은 차가운 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추위를 피해 잠시 들어온 서점. 조금 늦는다는 친구의 문자에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답장도 않은 채 핸드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둘러보기엔 충분하지만 읽어 보기엔 부족한 시간. 사놓고 흥미가 떨어져 집에 쌓여있기만 한 책들까지 생각나자, 가뜩이나 구매에 소극적이던 마음은 마치 쌓여있는 책들에 짓눌린 듯 움츠려 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분 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서점을 나오는 내 손에는 책이 쥐어져 있었다. 단 한 문장 때문에. 햇빛과 바람은 나그네의 지퍼를 열지 못했지만, “어떤 이십대적인 이유로 인해”라는 간단한 문장은 나그네의 지갑을 열게 했다.
어떤 이십대적인 이유. 생각해보면 여전히 이십 대의 문턱을 넘기 싫어 미적대던 나였다. 작년만 하더라도, 반올림하면 스물넷도 여전히 스물이라고 뻔뻔히 주장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스물이었던 때를 기억해 봤다. 그저 나이의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뀐 건데,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받아들이기 벅찼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변화, 그리고 책임. 가득 차다 못해 모든 것이 넘쳐흘러 문제를 일으켰다. 나만큼이나 혈기왕성했던 문제들. 우리는 서로 격렬히 부딪혀 깨지고, 튕겨져 나갔다.
어떤 이십대적인 이유는 평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남긴다. 어떤 이십대적인 이유는 평생의 후회를 남긴다. 어떤 이십대적인 이유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 나중에 돌아보면 분명 스스로가 어이없고 멍청해 보이겠지만, 나름대로의 최선이었기에 절대 미워할 수 없다. 의미 없는 후회와 아쉬움은 나와 함께 새벽 밤잠을 셜쳐주지만, 이미 부담스러운 그들이기에 탐탁지는 않다. 어쩌면 필연적인 그들이지만, 그럴수록 나는 강력히 몸부림치고 싶다. 더는 얻고 싶지 않아. 더는 잃고 싶지 않아. 더는 어떤 이십대적인 이유를 만들고 싶지 않아.
나에게 아픔을 주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십대여 안녕, 너는 안녕히, 나는 안녕할래. 우리의 안녕을 빌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