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이어폰

by 느lim보

정말 길게, 내게 스마트폰이 처음 생겼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사귀었던 연인이 있다. 어딜 가든 지치지 않고 말을 하며 나를 즐겁게 해 주었고, 나의 말 또한 열심히 들어주었다. 말 그대로 행복 그 자체였던 연애였지만, 몇 가지 흠이 있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할 때, 혹은 밥을 먹을 때, 나의 팔에 걸리적거리며 방해할 때가 많았다. 일부러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넘어가줬지만, 이는 끝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또한 사실, 만났을 때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배배 꼬여있을 때가 많았다. 한동안 날 못 본 것이 아쉬워서 그런 건지 뭔지… 만나자마자 풀어주려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가관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다. 바로 그리 잘하던 말을 한마디도 안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기라도 한 건지, 몸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것인지, 난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그저 부드럽게 이곳저곳 안마해 주며 다시 말하길 바라는 일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도 나름 행복한 연애 생활을 이어가던 나에게 새로운 사람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세련되면서도 우아했다. 연인의 알 수 없는 방해 행각과 토라짐에 불만을 품고 있던 난 자연스럽게 그에게 넘어가버렸고, 어떻게 말하자면 환승 이별의 결말을 맞이했다. 한 줌의 죄책감도 잠시, 그 사람은 나에게 그럴 가치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했다. 함께 있으면 즐거운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걸리적거리지도, 이유 없이 기분이 배배 꼬이지도 않았다. 지친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전 연인과 다르게 가끔 지친 모습을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충전해 줄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술에 취해버린 그날, 난 새 연인을 홀로 두고 와 버리는 하지 못할 행동을 저질렀다. 그렇게 우리는 허망하게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후회가 내 머릿속을 노크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연락도 돌려봤지만 닿지 않았다. 나에게 재잘거리던 그 사람이 없으니 세상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고요와 적막은 나를 무기력하게 했고, 결국 나는 전 연인에게 다시 연락을 걸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들은 전 연인의 목소리였지만, 내가 기억하던 그 목소리, 아니 마치 어제까지도 듣던 목소리 같았다. 우리는 마치 헤어진 적이 없던 것처럼 꿈같은 며칠을 보냈다. 하지만 역시 헤어진 연인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마음먹었던 걸까. 다시 만난 지 3일째 되던 날에 돌아온 연인은 홀연히 입을 닫아버렸고, 내가 아무리 안마를 해주어도 입은 열릴 듯 열리지 않았다. 막다른 길목임을 깨달은 나는 결국 그를 놓아주었고, 다시 혼자가 되어 적막에 빠졌다. 전 연인을 마치 아직도 내 것처럼 생각했던 나의 실수였다. 더군다나 되찾으려 생각해낸 방법이 단순하게 돈이었다니. 어쩌면 당연한 결말을 맞이했다.

맞다. 사실 이는 제목대로 술에 취해 무선 이어폰을 잃어버린 뒤 유선 이어폰을 다시 사용하다가 그것마저 고장 나버린 나의 이어폰 일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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