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하루를 좋아해

02

by 느lim보

오랜만에 일정 없는 날이었다. 바깥은 이미 화창하지만 커튼을 뒤집어쓴 실내는 여전히 아늑한 어둠뿐이다. 움직여볼까? 침대에서 뒹굴. 덮어둔 책을 마저 읽으려 책상 위로 손을 뻗어 보지만 닿지 않는다. 그저 포기. 다시 한번 뒹굴. 잠시 떠났던 베개에 머리를 안착했다. 아늑함을 좋아하는 나는 이불을 목까지 가득 끌어 덮고, 다시 눈을 감는다. 햇빛이 더욱 강해져 커튼을 뚫고 들어오려 하더라도, 우리는 그저 이불 속에 더 깊이 파묻힐 뿐이다.


그렇게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하며 눈으로 쳐다봐도 아프지 않은 시간대였다. 방 한 칸이 전부인 조그마한 자취방이었기에 침대를 벗어나지 않고도 모든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날의 우리에겐 침대가 세상의 전부였다. 지구는 둥글지 몰라도 오늘의 세상은 직육면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은 거고 많은 일을 했다 하면 많은 일이 있었던, 그런 지극히 평온한 하루였다. 침대에서 내려왔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던 우리는 그저 말없이 침대에 허리를 기댄 채로 앉아있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핸드폰 화면을 보며 물었다.
“뭐, 똑같았지. 근데 행복했어.”
똑같이 핸드폰 화면을 보며 대답했다.
“왜?”
예상치 못한 답변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고개를 들었고, 동시에 고개를 든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오늘은 그런 하루였어. 해내야 하는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지. 그렇지만 난 이렇게 시간을 보낸 걸 후회하지 않아. 반대로 말하면 오늘의 난 어떤 책임도, 의무도 없이 온전하게 휴식했거든. 이불 속에 파묻혀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가 지나갔지만, 난 마치 이불이 아니라 오늘 그 자체에 안겨 파묻힌 느낌이었어.”
“아무 특별할 것 없었지만 어떤 시간도 함부로 버려지지 않은 온전한 하루”
“그거 좋은 말이네”
“그냥 너의 그런 하루를 나도 좋아해. 우리의 그런 하루를 좋아해”
우리는 다시 핸드폰 화면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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