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반, 미처 헹구지 못한 입속의 치약 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과제들로 어지럽혀진 책상 위. 치워야 한다는 생각은 지하철처럼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정차했다가 손님 하나 태우지 못한 채 그대로 역을 떠난다. 머릿속 손님들은 어차피 나중에 다시 올 지하철이라며 별로 탈 의욕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렇게 무기력해서 탈 수 있는 열차는 없다. 미처 다 먹지 못한 과자는 대충 비닐봉지에 넣어 묶어두고 발을 질질 끌며 이동하는 새벽 3시 반. 지금의 나는 너무나 무기력하다. 제각각 돌고 도는 시계는 그 한 몸 다할 때까지 불평 하나 없이 멈추질 않건만, 매 순간이 새로운 나는 왜 이리도 무기력한 것일까.
생각이 많다. 하지 않아도 될 생각을 하고, 멈춰도 될 생각을 이어 나간다. 인간관계, 진로, 과제.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빙빙 돌지만 무엇 하나 확실히 끝낸 것이 없다. 잡다만 생각이 많다.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면서 점점 덩치를 키우고, 산들바람이었던 생각들은 어느새 태풍이 되어 머리를 휘젓는다. 태풍을 막을 힘도, 피할 의지도 없는 나는 겉으로는 무기력한 침묵을 지키지만, 속에서는 시끄러운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제각각 흘러가는 생각들을 잡으려 움직이지 않으면 끝낼 수 있는 것이 없건만, 매 순간 이를 상기하는 나는 왜 아직도 무기력한 것일까.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이미 오늘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은 다 봐버렸고, 연락할 내 친구들도 모두 잠에 들었다. 이제 오늘은 정말 나 혼자. 알 수 없는 적막감에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가 들어간 영화 플랫폼 왓챠. 왓챠의 ‘보고싶어요’ 칸에는 수많은 영화들이 들어와 있지만, 정작 보기를 미룬 영화들만 수두룩하다. 여기서 잠시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들은 많지만 미룬 일들만 수두룩, 보고 싶은 영화들도 많지만 안 본 영화가 수두룩. 그렇다고 하루를 생산적으로 알차게 보내지도 않는 나는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 걸까? 애초에 쓰는 건 맞을까? 그저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분명 정신없이 바쁜데 왜 인생 자체를 겉도는 느낌이지? 며칠 전 치과를 갔다 온 뒤 죽을 먹으며 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내 인생은 흐물흐물. 알갱이가 없다. 죽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나서, 무언가에 이끌리듯 영화 ‘데몰리션’을 눌렀다. 데몰리션은 내가 중학생일 때 나온 청불 영화이다. 무슨 상실을 겪은 남자가 자기 물건들을 때려 부순다는 사실만 알았고, 남자 주인공 말고는 딱히 좋아하는 배우도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항상 그 영화가 보고 싶었다. 영화가 나온 뒤 매년, 문득문득 잊지 않고 어른이 되면 저 영화를 봐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자, 볼 기회와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보고싶어요’ 만 눌러두고 나는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용기가 나지 않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데몰리션은 오랫동안 나에게 로망이었고, 목표였기 때문이다. 아무 정보 없이도 끌리던 영화였고, 수년간 기대를 하던 영화였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만약 보고 나서 정말 별거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혹시 내가 기다렸던 몇 년은 다 부질없던 몇 년으로 바뀌는 건 아닐까? 어쩌면 로망은 로망으로 남겨야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로망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할 수 있을까? 했더니 별것 아니면 어떡하지? 해낸 그 이후에는 어떡하지? 누구나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지만, 막상 현실로 마주하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또한 일을 달성한 뒤, 이제는 뭘 해야 할까에 대한 물음에 말문이 막힐 수도 있다. 로망이란 그런 것이다. 무언가를 열고 마주한다는 것은 때론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다. 나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냥 막연히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이 아니라 내가 학창 시절 가장 원하던 ‘그 학교’에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기만, 혹은 오만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사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고 오히려 마음 한편에는 걱정이 자리 잡았다. 내가 가장 가고 싶던 곳이었는데, 혹시 그냥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고 원할 때가 좋은 것은 아닐까? 막상 직접 가봤더니 별로면 어떡하지? 이제 내가 대학 생활이라는 늪에 빠졌을 때 줄을 감아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나무 기둥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들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그 선뜻 열기 어려운 로망 중의 하나를, 나는 오늘 열기로 한 것이었다.
영화의 시작부터 주인공은 차 사고로 아내를 잃는다. 모두가 그의 상심을 걱정하지만 생각보다 주인공은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평소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중 물이 새는 냉장고에서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라는 아내의 메모를 발견하는 주인공. 장인어른으로부터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자넬 강하게 할 그것“이라는 말을 들은 후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모든 것들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냉장고, 그다음엔 회사 화장실과 컴퓨터, 나중에는 결국 집 자체를 다 부시기에 이른다. 지금까지 아내와 이뤄왔던 모든 것, 일상 자체를 허문 뒤, 그제야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을 진실로 느끼고 오열한다. 그 후, 주인공은 완전한 정신으로 다시 일상에 복귀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해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주인공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가 죽은 뒤에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지낼 때, 사람들은 주인공을 이상하게 봤지만, 나는 그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내 침묵 속에서도 비명이 들려오듯 말이다. 내가 들었던 주인공의 비명소리를 반증하듯, 주인공은 점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주인공은 해체를 시작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일상을 쉽사리 놓지 못한다. 놓아서 완전히 멈추었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으로 위태로워진 일상을 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곪던 일상을 다 부순 후에, 주인공 내면에서 들려오던 비명은 멈췄다. 그렇게 주인공은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됐던 것이다.
인생은 쭉 뻗은 아스팔트 고속도로가 아니다. 오히려 어디로 가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깊은 산 오솔길에 가깝다. 누구나 인생에는 굴곡이 있다. 우리는 그 어려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한다. 특히 안 좋은 방향으로는 더욱 말이다.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도 망설이는데 오죽하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맞이했을 때,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 억지로 직진을 한다. 마치 여전히 쭉 뻗은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내가 참고 견디면 곧 다시 쭉 뻗은 길이 나올 것처럼. 하지만 영화를 보고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즐거워하듯, 나쁜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로, 억지로 그 일을 버텨낼 것이 아니라 휩쓸릴 줄도 알아야 된다고 말이다.
솔직히 힘들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평소처럼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평소처럼 나갔다 오고. 반복되는 의미 없는 하루의 끝은 언제나 집에 와 혼자 있을 때 밀려오는 허무함이었다. 요즘 바쁘게 살아간다 생각하는데, 정작 그 바쁨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가. 내 인생이 죽 같았던 이유는 ‘나 자신’이라는 알갱이가 빠져서였던 것은 아닐까. 수많은 일들을 신경 쓰느라 정작 수많은 일들을 하는 ’나’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기계적으로 과제를 하고 기계적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힘들어도 하루 마음 놓고 쉴 수 없고, 놀고 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밀린 과제가 나를 기다렸다. 요즘 나는 잠을 일찍 못 잔다. 새벽 3시는 기본, 4시, 5시가 되어도 잠에 들기 쉽지 않다. 결코 잠이 안 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눕지 않는다. 결코 일을 하느라 바쁜 것도 아니다. 내가 하는 것은 의미 없는 과제 휘적거림과 멍 때리기의 반복이다.
요즘 나는 깨어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하루 동안 조금이라도 오래 깨어있어야 그만큼 더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만 축내도 상관없다. 언젠간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가진다. 결국 중요한 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나를 우선순위에 두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고, 그래서 더욱더 아무렇지 않은 척 바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놓아주는 방법을 배울 때가 된 것 같다.
아침 6시, 지나간 밤. 수많은 생각들이 지난 간밤에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내 머릿속을 수놓았다. 아니, 사실은 하늘을 수놓는 척 들판을 강타한 운석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한바탕 운석이 휩쓸고 지나간 공간. 그럼에도 지평선 끝에서 아침 해는 떠올랐다. 강하진 않아도 은은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오늘의 나도 이제는 미약하지만 행동할 수 있을까. 무기력함 사이 한줄기 빛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