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과 보통의 음악
※ 장면 하나
반려견 누리가 늘어지게 누워있는 소파 앞 의자에 이제 막 60대가 된 남성이 앉아있다. 그는 나와 혈연관계,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부친 되는 사람이다. 새벽부터 일을 나가 늦은 저녁이 다 되어 귀가 한 그는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배우자, 그러니까 다시 한번 정확히 하면 나의 모친에게 다가간다. 그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염색을 좀 하는 게 나으려나?”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50대 중반의 여성이 그의 말에 부스스 잠에서 깬다. 화장실에서 염색약과 염색 전용 빗을 챙겨 나오는 그녀의 손에 보자기 하나가 쥐어져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슈퍼맨이나 로보트 놀이를 할 때 사용하던 보자기. 반가운 마음도 잠시 웃통을 벗고 트렁크 팬티 차림으로 의자에 앉은 부친이 보자기를 목에 동여맨다. 순식간에 슈퍼맨이 된 그가 날 보며 빙긋 웃는다. '보자기를 좀 더 꽉 매었어야지, 이번에는 색을 좀 더 검정으로 하는 게 어때?' 따위의 말들이 의자 주변에 내려앉는다. 달랑 팬티 하나만 걸친 슈퍼맨의 숱 없는 머리 위로 염색약이 천천히 덮인다. 조금만 방심하면 희끗한 회색 머리칼이 금방 자라나는 그 머리 위로.
코로나 19 사태가 다시금 심각해지기 얼마 전 몇 달 동안 가지 못했던 본가에 다녀왔다. 기차로도 몇 시간이 걸리는 곳에 위치한 데다, 얼마 벌지 못하지만 아르바이트도 매일 하고 있는 탓에 꽤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올해 막내가 성인이 되어 상경을 하면서 삼 형제가 모두 떠나 버린 집은 생각보다 많이 달라지지 않은 채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사람을 반기는 두 살 먹은 강아지가 뛰어다녔고, 일을 그만두지도 생활에 큰 변화를 주지도 않은 내 양친은 여느 때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한 생활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날 반겨주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내게 애정을 쏟았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도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지 못한 날 향한 그들의 걱정과 근심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날 대하는 그들의 변하지 않는 태도에 다행스러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나의 부모였던 시간이 꽤 오래 지났다고. 앞서 소개한 장면처럼 그들의 머리는 자꾸만 더 희끗해져 갔고, 매일 먹는 약이 늘어났고, 조금씩 일이 버거워지고 있다고. 그들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날 키웠고 살아왔을까. 세대차이, 그런 쉬운 단어로 쉽게 눙쳐지곤 하는 그들과 나 사이의 꽤 깊고 먼 간극이 불현듯 생경해졌다. 그들은 어쩌면 내 예상보다 조금 더 힘들지 않았을까. 내가 모르는, 모를 수밖에 없는 순간이 그들을 많이 괴롭게 하지 않았을까. 물론 혈연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날 옭아매고 괴롭게 만든 적도 많았지만 난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렇게 묻다 문득 노래 하나를 떠올렸다.
우리 젊은 날엔 삶을 경주로 여겼지요
한 걸음이라도 뒤쳐질 새라 놓칠 수가 없던 고삐
한 부대 세월을 엎질러버린 뒤에서야
아차 싶네요 결승점은 어딘지 우린 뭘 위해 달렸는지
9와 숫자들 – <Silver horse>
예전부터 즐겨 듣던 9와 숫자들의 <Silver horse>라는 곡. 직역하자면 '은빛 말'이라는 제목의 노래. 9와 숫자들은 특유의 담담하고 무던한 목소리로 세월을 지나온 이들에 대해 노래한다. 누군가는 호황이나 호시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 시간을 보내온 그들은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다. 그 시절의 그들과 지금의 젊은이들 중 누가 더 힘드냐는 질문을 접한 적도 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과는 상관없이 그 시절의 그들이 마냥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무게와 짐을 진 채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눈을 떠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확인한 이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아차 싶다고, 이제껏 우리가 뭘 위해 달렸는지’ 모르겠다고.
이 글로 대개 부모라는 이름표를 붙인 채 살아가는 이들, 젊은이라는 딱지를 오래전에 떼어버린 이들을 옹호하거나 정당화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부모 또는 혈연, 가족과 같은 단어로 수많은 폭력과 억압, 차별이 자행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늙는다는 말이 피할 수 없는 진리라면 9와 숫자들이 은유적인 가사로 노래한 ‘은빛 말’들에 대한 이야기는 노래를 듣는 이들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 이 노래를 그들로 하여금 ‘자식농사’에만 몰두하게 만든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든,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힘든 시절을 건너온 부모에 대한 피 끓는 사랑으로 해석하든, 언젠가 자신이 늙었을 때 맞닥뜨리게 될 어떤 순간에 대한 참고서로 삼든 그건 듣는 이의 자유다. 하지만 어떻게 듣든 이 노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길,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차가운 아름다움을 천천히 곱씹어볼 수 있길 바란다.
내려놓기엔,
아직 어린 내 새끼들 걱정이 되고
붙들고 있기엔,
구만리 길 아득히도 먼 우리의 남은 날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새로 태어날 그 날이 올 때까지
버텨라 버텨라 버텨라 버텨라
손을 뻗을수록 멀어지는 희망
9와 숫자들 – <Silver horse>
‘내려놓기도, 붙들고 있기도’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어떤 이들을 생각하게 하는 노래. 그들이 그럼에도 계속해서 ‘달리고 버틸’ 수밖에 없음을 투명하고 담백하게 전달하는 노래. 우연하게 마주친 팬티 바람의 슈퍼맨이 ‘은빛’ 머리를 물들이는 장면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노래. 보자기를 동여맨 이의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는 또 다른 슈퍼맨의 작기만 한 몸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9와 숫자들의 <Silver horse>다.
= 장보음은 ‘장면과 보통의 음악’의 줄임말로 필자가 일상에서 마주한 장면과 음악을 연결시켜 무언가에 도착하려 아등바등 대는 글을 한 편씩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물론 저는 음악을 전공하지도, 공부하지도, 깊게 좋아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하고 보통의 취향(혹은 식견)을 가진 무지렁이 글쟁이입니다.
아래 문장을 클릭하면 글에서 소개된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