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시대' 코치의 페르소나

책 I 아이브매거진 『Vol.01 - 개인의 시대』

by 청귤

코칭은 상담, 컨설팅, 멘토링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성장을 돕는 활동이지만 접근 방식이 서로 다르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상황을 비유하자면, 아빠가 아이에게 노하우를 알려주는 건 멘토링에 가깝고, 상태를 진단하고 사례를 참고해 솔루션을 제시하는 건 컨설턴트의 몫이다. 과거에 자전거를 타는데 쫓아오는 개에게 물린 아픈 기억이 있다면 심리상담가의 도움을 받아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도 있다.


코칭은 '이슈'가 아닌 '사람'에 집중한다.


지금 자전거 안장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을 보라. 그는 다양한 자원과 창의성을 안고 있는 존재다. 그의 내면에 근원적인 욕망과 가치, 그리고 불협화음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걸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비춰줄때 그는 자신에게 몰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짜 자기와 링크되는 순간, 머리가 하는 이야기가 아닌 가슴의 울림을 듣고 페달을 밟는다.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자전거 한 발짝 뒤를 함께 따라가던 코치는 어느 시점이 되었을때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뗀다. 혼자만의 힘으로 균형을 잡고 나아가고 있단 걸 깨닫는 순간, 밀려오는 뿌듯함과 자기 확신을 안고 그는 다른 영역에서도 자기다운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임파워된다.


코치다움이 삶이 되고 나의 품성이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코칭이 스며들었다. 3년 전 아이브매거진에 실린 톱클래스의 김민희 편집장 인터뷰(by 요조) 글을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녀의 경청력과 호기심, 자기 객관화에 매료됐고 인터뷰어가 아닌 코치로서도 대성했을 분이라 직감했다. 평생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정체성의 변화, 밖으로 뻗은 트렌드를 읽는 촉수, 빛나는 숨은 고수들을 세상에 꺼내보이고 싶다는 밀도 있는 고백에서, 존재를 바라보는 그녀의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쉽게 규정할 수 없는 김민희 만의 정체성은 아이브매거진을 관통하는 주제 '개인의 시대'의 목적이자 에너지원이다.


문득 나의 페르소나가 궁금해졌다.




어릴 땐 피아노와 별을 좋아했고 자아가 무척 컸었다. 공대를 다녔고 사회에서 비즈니스를 배웠다. 개인적 자아에서 사회적 자아로 정체성이 바뀌고 뒤섞이는 과정이었다. 감사하게도 귀인들을 만나 롤모델로 삼고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성과를 냈다. 효율성과 성장을 추구한 길 이면에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는 생존과 불안의 마음이 있었고, 해소되지 않은 내면의 꿈틀거리는 욕망이 덮여졌다. 그렇게 십여 년간 쌓아 올린 생각의 틀이 아집과 편협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거라곤 미처 생각 못했다.


2020년 겨울, 이태원 어느 서점의 한산한 매대 선반 사이를 거닐다 무심코 하얀색 바탕의. 검은색 정자체 제목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은유작가의 '출판하는 마음'. 크기도 작고 흑백 내지였던 이 책은 출판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인터뷰 글이었다. 읽기도 전에 이런 내용이겠구나 하고 판단했다. 그 타인의 노동에 대한 무지와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이 머리말을 읽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다. 작가의 적확한 언어와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개개인들의 삶의 무게 앞에서, 나의 무뎌진 감각과 좁은 그릇이 들통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사람들과 연대한다 했지만 나와 비슷한 이들과 제한된 공감을 했고 나도 모르게 그 바깥에 이들은 판단하고 배척하고 있었다. 책이나 타인을 만날 때 올라오는 내 안의 오만과 판단하는 마음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너무 불편했다. 솔직히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땐 왠지 외면할 용기보다 피했을 때의 수치심이 더 컸던 것 같다. 내 안의 편협한 가정과 아집을 바라본다. 올라오는 불편함을 억누르고 일부러 이질적인 것에 나를 노출시키려고, 잘 모르는 주제의 책들과 독서모임을 찾아다녔다. 다름의 씨앗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발걸음은 운동 PT, 명상, 필사로 이어졌고, 은유 작가를 찾아 글을 썼다.


내 감각과 인식의 얕음을 처절하게 고백을 하기까지 시간은 걸렸다. 고통스러웠다. 평생의 업이라 여겼지만, 초라한 맨얼굴가 익숙해지면서 자기 객관화의 쾌감이 올라왔다. 어깨에 불필요한 힘이 빠지면서 비로소 눈과 귀가 열리고 바깥의 것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게 느껴졌다. 세상의 이치가 이해될수록, 감성적 직관과 논리가 한데 버무려지면서 내가 지향하는 통찰에 가까워지는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상처와 두려움이 녹아든 자리에 호기심과 포용이 들어섰고, 관념을 덜어내고 감각이 올라올수록 가벼워지는걸 느꼈다.


삶의 변혁 와중에 코칭을 만났고, 덕분에 이 일련의 변화가 납득이 됐다.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과 결합되면서 변화는 깊어졌다. 그때 만난 내 안의 이미지가 바로 '풍등'이었다. 자유롭고 주도적으로 세상을 탐험하면서 느슨한 관계를 통해 다른 각양각색의 풍등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영향력이 생기면서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 낮과 밤하늘의 에너지, 시원한 공기와 구름의 잔잔함, 그리고 멀리 보이는 새로운 마을 풍경이 만들어내는 다양성이 가진 역동성을 느끼면서, 안으로 굽어있던 나의 촉수가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늘 나를 바깥과 연결시켜 준 건 문화에 대한 관심이었다. 2010년대 모바일 혁명이 SNS 연결시대와 라이프스타일 시대로 이어지는 걸 보면서, 기술의 진보와 복잡성의 시대, 네트워크 사회 속에서 '개인의 시대'가 도래하겠다 내심 기대했는데 변화의 속도는 생각보다 더뎠다. 그러다 팬더믹을 지나오면서, 자칫 마케팅 문구로 전락할 뻔 한 자기다움과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장이 확대되고 있는 걸 느꼈다. 늘 건재할 거라 믿었던 집단은 흔들렸고, 기성세대의 정량화와 최적화의 올가미를 거부한 체 자기 이름을 내걸기 시작한 이들이 늘어났으며, 수평적 협력과 관계 문화가 점차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


우린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의지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잘 알기 쉽지 않다. 남들에 의해, 또는 그들을 의식해 내 것인 듯 착각하며 만들어진 가치관이나 신념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품는걸 우리 뇌가 무척이나 방해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간지럽히기가 힘든 것처럼, 우리 안에 어설픈 가정과 뿌리 박힌 편견 같은 것들이 올라와 새로운 자극에 저항한다. 게다가 진실은 우릴 자유롭게 하기 전에 종종 아프게 한다. 마스터코치 마샤 레이놀즈가 그랬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복잡한 진실과 간단한 거짓말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거짓말을 선택하고 그 속의 안온함 속에 숨는다고.


그렇게 집단주의와 관계주의 문화 속에서 자란 나를 포함한 많은 개인들이 저마다의 가면을 벗기 위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번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고객들을 코칭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드라마가 있고 빛날만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에겐 자기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경청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어떤 이에겐 자기를 표현하는 창구가 되어주면서 나아지고 싶은 마음과 자기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끔 돕고, 누구에겐 자기 안에 꿈틀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욕구를 끌어내는 안전한 실험실 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 개인의 자립을 지지하며 동시에 그들 중 하나로 진화해 나가고 다 같이 떠오르는 하늘의 풍등을 상상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코칭을 만나 삶의 변화가 깊어지고, 예술-공대-비즈니스에 이어 에너지가 인문과 사람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같은 기간에, '개인의 시대'에 대한 회의가 가능성과 기대로 바뀌었다. 특히 18년간 다국적 기업에서 활동해 오면서 느꼈던,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아시아 리더들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돕고, 집단의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개별적 개인들이 자신의 취향과 역량을 맘껏 드러내며 성장하는 문화를 만드는데 생각파트너로서 '코칭'이 기여할 수 있겠단 기대가 생겼다.


끝없는 망망대해에서 자신만의 나침반을 들고 출항을 준비하는 나를 포함한 개인들을 응원하며. 각자의 빛을 머금은 풍등들이 수놓은 다채로운 하늘 풍경처럼, 건강한 개인들이 어우러지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 - 이것이 개인의 시대 코치로서 전달하고 싶은 핵심 가치이다.


p.s 며칠전 신촌으로 옮긴 '책방무사'를 들렀다. 요조와 송주환 편집장이 처음 세상에 화두를 던진 뒤 4년이 흘렀다. 아이브매거진은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4년뒤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물음을 필요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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