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길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내 친구 M은 나에게 브런치를 써보라고 했다. 친구는 내가 3년 전에 브런치 계정을 개설해 두고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정확히 따지면 만으로 3년 2개월 전의 일이었다. 한창 취업의 고배를 마시며 우울감을 달래기 위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었다. 운이 좋아 한 번에 선정되었으나 공개적인 플랫폼에 내 이야기를 쓴다는 일이 부담스러워서 한 개의 글만 올리고 그대로 미뤄두게 되었다.
그리고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 회사에 입사해 브랜드의 마케터로 근무했고, 항상 실패했던 다이어트도 12kg 감량하는 쾌거를 거뒀다. 3번의 수술을 했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취미가 생겼고, 돈 주고도 얻지 못할 귀한 인연들도 많이 만났다.
그리고 나는 자진해서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자발적 백수가 된 지도 어느덧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 나보다도 주변에서 취업을 걱정해 주는 시기이다. 나도 잘 안다. 공백기가 길어서 좋을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을.
현실을 잘 아는 나 역시 이번 달에는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지만, 작년 말부터 계속 건강이 말썽이라 오히려 지금이 회복할 기회라고 생각하며 취업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조바심 낸다고 달라질 거 하나 없다. 여러 회사들의 문을 두드리다 보면 언젠간 내 자리 하나쯤은 생길 것이고, 그러면 자유로웠던 이 순간을 금세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에 굳이 지난번처럼 백수탈출기에 대한 이야기는 담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글을 쓰다 보면 부수적으로 등장할 수는 있겠다. 다만 글의 주제는 되지 않을 거라는 말!) 대신 주변에서 혀를 내두를 만큼 사랑에 빠진 피아노와 클래식 이야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그동안 생전 관심 없던 클래식 음악에 빠졌다. 평소 뉴에이지나 연주곡은 좋아했어도 클래식 음악 쪽은 문외한이었으므로,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클래식에 빠져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좋아하는 뉴에이지와 영화 OST를 배우고 싶어 다시 시작한 피아노는 이제 클래식 곡만 배우고 있고, 피아노 협주곡 영상을 띄어놓고 러닝머신 위에서 1시간을 열심히 걷다 뛰기를 반복하고, 음악 어플에서 선호 장르는 클래식이 100%를 차지한다. 그 끝판왕은 본고장에서 공연을 즐겨보고 싶다고 오스트리아로 떠났던 일이었다.
그러나 어디 가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아직 부담스럽다. '클래식 음악'의 인식이 워낙 교양과 연결돼 보여서일까. 클래식 음악은 유난히 소위 말하는 '있어 보이는 취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예전엔 클래식 음악은 전공자들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고, 적어도 음악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즐긴다는 편견이 있었다. (처음 접하면 곡명부터 참 어렵긴 하다.)
한 번은 친척들 모임에서 클래식 음악 얘기가 나왔을 때 '네가 무슨 클래식을' 같은 뉘앙스의 핀잔을 들어본 적도 있다. 예상 못 했던 반응은 아니다. 그러나 클래식도 어디까지나 음악의 한 장르일 뿐이다. 발라드 좋아하고, 락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네가 무슨 발라드', '네가 무슨 락'이라며 눈치 주는 일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클래식도 어려울 이유가 없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대단한 지식을 겸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좋아하는 마음과 잘 아는 정도가 비례하냐 묻는다면 내 답은 '아니요'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동시에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온전히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즐길 수 있는 취미 하나는 남겨두자는 생각으로 애써서 이론까진 공부하지 않고 있다. 각별히 마음이 가는 곡이 있으면 그때 가서 작곡 배경을 찾아본다든지, 악보를 보며 곡을 감상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공부의 압박을 느끼는 순간 즐기기 위해 시작한 취미의 본질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그렇다. 딱히 학구열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현재는 말러 심포니 전악장 듣기 프로젝트 중이다. 1~4번은 꽤 많이 들었는데 시간관계상 그 뒤는 자꾸 멈추게 되는 경향이 있어 오늘은 일부러 5번부터 듣고 있다. 어느새 7번 5악장이 피날레를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