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왜 좋아하게 됐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알려준 클래식의 매력

by 조은

클래식을 좋아하고 나서 많이 듣는 질문이 하나 있다.


"클래식을 왜 좋아하게 된 거야?"

"어쩌다 클래식에 빠지게 됐어?"


와 같은 물음들이다.


그 질문의 의도는 나도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나 역시 클래식을 좋아하기 전까진 클래식에 대한 편견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서일까. 몇몇 사람들은 내가 클래식 음악에 빠지게 된 이후로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반대이다. 굳이 선후관계를 따질 이유도 없는 논제지만 괜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 나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를 배웠었다. 그렇게 한 4년쯤 배우고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었다. 이후 중학생 때도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어 했지만 학교와 학원 시간으로 인해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꾸준히 피아노를 갈망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잘 치지도 못하면서.)


대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처음 내 손으로 꾸준히 돈을 벌게 됐을 때, 나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성인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했었다. 그러나 당시 내가 하고 있던 일 특성상, 점심쯤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일정이었으므로 학원을 다니기에 상황이 여의치 못 했다. 결국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첫 직장을 퇴사한 직후에야 다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3개월은 짧지만 굵었던 직장생활로 인해 상처받았던 마음들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없는 돈을 끌어 모아 예산보다 비싼 피아노 학원을 선뜻 등록했던 그 순수한 마음이 퇴색되지 않을 만큼 소중했다. 하지만 오래도록 병행할 순 없었다.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취준생의 신분이었으므로 매달 20만 원에 가까운 학원비를 충당하기엔 버거웠다. 결국 취업 후 다시 돌아올 것을 나 자신과 약속하며 다시 피아노와 이별을 했었다.










그 후 취업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여기선 중요한 얘기는 아니므로 과감히 생략한다. 오랜 방황 끝에 한 회사에 입사했고, 그곳에서 첫 월급을 받자마자 나는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갔다. 학원 선생님은 전혀 모르시겠지만 얼마나 갈망했던 순간인지 모른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 곡들로 기초를 다져갔다. (물론 원곡은 아니다. 쉽게 편곡된 버전들을 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클래식을 좋아서 배운다기보단, 피아노를 배우니까 그래도 클래식 곡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피아노를 그렇게 배우고 싶어 했던 이유에 '클래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도 되지 않았다. 단지 평소 좋아하던 영화 OST나 뉴에이지 곡들을 직접 연주하고 싶단 마음뿐이었다.


당연히도 클래식 곡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다.(오죽하면 내가 피아노를 배운다고 했을 당시, 친구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달빛 얘기를 꺼냈는데 나는 조성진이 누군지 알지도 못했었다.) 기초 클래식 책 한 권을 진도가 다 나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앞으로의 수업 방향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곡과 클래식 곡을 병행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아는 곡은 전혀 없는 관계로 레슨곡의 선택은 온전히 선생님의 몫이었다.


그때부터 클래식 곡들을 원곡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 1번을 배우면서 조금씩 클래식 곡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빠지게 된 건 그다음의 이야기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취미 생활을 병행하기란 참 어렵다. 당시 내가 다녔던 회사는 집에서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그 해 여름 취미로 혼자 공부하고 한자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공부의 성과를 남겨보고자 자격증 시험을 신청했었다. 아직 취득하지 못한 운전면허에도 도전해 보고자 했다. 그것들을 병행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엔 한계가 있어 여름동안 잠시 쉬기로 했다. 신기한 게, 몇 달 동안 피아노를 쉬면서 오히려 피아노에 대한 갈망만 커져갔다.


그때 유튜브에서 피아노 연주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친구가 얘기해 줬던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영상을 제대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음원 스트리밍 어플에서도 내가 몇 개의 클래식 곡을 듣기 시작하니, 알고리즘에 맞춰 내가 좋아할 만한 곡을 추천해 줬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곡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당시 얼마나 생각 없이 감상했었냐면, 해당 곡을 다른 연주자 버전으로 두 개를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한참 뒤에 같은 곡이란 사실을 인지했다. 그만큼 피아니스트와 지휘자에 따라 곡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걸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하 '라피협 2번')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설명이 붙을 만큼 굉장히 대중적인 곡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조성진도 알지 못했던 내가 라흐마니노프나 피아노 협주곡에 대해 알리가 없었다. 게다가 처음엔 악장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서, 알고리즘이 추천해 줬던 1악장만 주야장천 들었었다. 나중에야 2,3악장의 존재에 대해 알고 전체 악장을 한 곡처럼 듣기 시작했다.


장엄하면서도 엄숙하고, 구슬프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라피협 2번을 듣고 있다 보면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이 떠오르기도 했다가 끝에는 환희에 사로잡혀 절로 벅차오른다. 감정이 요동치는 그 이유는 작곡 배경이 주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라흐마니노프는 10대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많은 훌륭한 곡을 쓴다. 피아니스트로의 기량도 뛰어나서 연주자로도 인정받고, 지휘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가 24세 되던 해부터 약 3~4년간 작곡가로 큰 슬럼프를 겪게 된다. 사실상 그 기간 동안 아무 곡도 쓰지 못했다. 그 이유는 1897년에 초연한 교향곡 1번이 무지막지한 악평을 들어 작곡에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불행도 겹쳐서 그는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이때의 우울증을 극복하면서 작곡한 것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이며,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을 고친 방법은 치료 담당의 니콜라이 달이 제시했던 '자기 암시 기법'이었고 결과는 매우 좋았다. 그래서 이 곡은 당시 라흐마니노프의 치료를 담당하였던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에게 헌정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Sergei Vasilyevich Rachmaninov, Piano Concertos No. 2 C minor] (클래식 명곡 명연주, 네이버)



이 해석을 읽고 다시 라피협 2번을 듣게 되면 각 악장에 걸쳐 마치 작곡가의 감정선이 전달되는 것만 같다. 그 매력에 빠져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고, 출퇴근길에 한 장 한 장 악보를 들여다보며 감상도 했다. 열심히 들은 덕택에 음원 스트리밍 어플에서 2021년과 2022년에 가장 많이 들은 곡이 '라피협 2번'으로 집계될 정도였다. 그만큼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음이 연주되는 순간 여전히 마음을 크게 울리는 힘이 있는 곡이다.


바로 여기서 클래식 곡의 매력이 더해진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 안 들리던 음들이 잘 들리고, 지휘자와 피아니스트에 따라 곡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걸 내 귀로 직접 느끼게 된다. 라피협 2번은 처음으로 그 매력을 일깨워준 소중한 곡이었다.



이게 바로 마음을 울리는 클래식 곡들을 여럿 만난 지금까지도,


누군가가


"클래식을 왜 좋아하게 된 거야?"

"어쩌다 클래식에 빠지게 됐어?"


질문을 던질 때면, 변함없이 라흐마니노프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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