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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Oct 08. 2021

길 위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 유럽

프랑스와 스페인, 그 경계 어딘가에서 만난 도둑님.

니스에서 정신없는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목적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야간열차를 타야 했기에 낮 시간 동안에는 근교 칸느에 잠시 다녀왔다가 짐을 챙겨 다시 니스의 기차역으로 향했다.

니스는 위치상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로 뻗어 나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거점이 되는 곳이었고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야간열차의 출발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늦은 시간이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탑승구를 확인하고 서둘러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했다. 캐리어 가방을 손에 끌고 등에는 배낭 하나를 멘 채로 열심히 걸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캐리어 끄는 것을 도와준다며 다가왔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 때문에 '뭐지..?' 하는 생각을 하며 멍해져 있는데, 열차 계단에서도 캐리어를 번쩍 들어 위로 올려주고는 내가 머무는 쿠셋 룸 앞까지 짐을 옮겨 주었다. 괜찮다는 말과 제스처를 취하며 내가 이동을 하려고 했지만 본인은 원래 이런 거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며 내 가방을 끌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복장을 보면 역무원도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무슨 말인가 싶은 생각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혹시나 내 가방을 그대로 가지고 가버릴까 봐 그 사람이 끌고 가는 가방 한쪽을 같이 붙잡은 채로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열차에 올라서도 이제는 내가 옮길 수 있다고 말했지만 괜찮다면서 룸으로 앞장서라고만 했다.

쿠셋 룸이 있는 복도에 들어서서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거의 빼앗듯이 캐리어를 끌어 오니까 그제야 'Okay, Okay~'를 외치며 즐겁게 여행하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열차 복도를 걸어가며 뒤돌아 보니 그 남자는 열차에서 내려 다시 역사 쪽으로 걸어갔다. 열차에 같이 탑승하는 사람이라서 도움을 준 게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정말 짐을 옮겨 주기만 하는 사람이었던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움을 주고 팁을 받아 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말 그대로 도움만 주는 사람인데 내가 의심을 한 건지 의문스러웠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아무래도 필요 이상의 친절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편이었는데, 좋은 마음으로 도움을 준 것에 너무 경계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한 건가 싶은 마음이 들어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뭔가 목적이 있었다면 대놓고 돈을 요구했을 텐데 그런 게 없어서 뒤늦게 뭔가 찝집하면서도 불편하고 미안 하기도 한 마음이 뒤엉켜 버렸다.

주변에 사람들도 많은 상태라서 쉽게 나에게 위협을 가할 수도 없었을 텐데 내가 너무 과하게 반응을 한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냥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해 버렸다.

그렇게 기차에 올라 서둘러 침실을 확인하고 짐을 풀었다.

나는 여성전용 6인실 쿠셋을 예약했고, 한쪽에 3층씩 마주 보고 있는 구조의 룸에서 제일 윗 칸에 자리를 잡았다. 양쪽 침대의 가운데에는 선반이 설치되어 있어 캐리어를 보관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내가 룸에 들어갔을 때는 한국인 여자 두 명이 이미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하고 있는데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여자 두 명이 더 들어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다가 잠자리를 위해 준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먼저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무래도 베드 버그와 싸운 전날의 여파가 남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고 싶었다.

 1, 2층에 머무는 사람들이 모두 들어오면 같이 문단속을 하고 소지품도 잘 정리해 두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들 옷을 갈아 입고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하면서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혼자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다 보니 그만 이동하라고 말 하수도 없고 해서 그냥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엎드려 여행책을 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던 건지 새벽녘에 부스럭 거리며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뭐 없어진 거 없는지 확인해봐!"

1층 여자의 한마디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고 어둠 속에서 내 가방부터 확인을 했다.

열린 채 침대 한편에 놓여 있던 가방에 손을 넣었는데 카메라와 지갑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할 틈도 없이 쿠셋 룸 불을 켜고 찾아봤지만 없었다.

1층에 있던 한국인 여자분들도 짐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우리의 소란스러운 움직임에 2층에 머물던 외국인도 일어났다. 1층에 있던 여자분이 상황 설명을 하며 소지품을 확인하라고 했고, 2층에 있던 두 명 중에 한 명의 지갑도 없어진 상태였다.

다행히도 그 방에 머물던 다섯 명 중 두 명의 소지품만 도난당한 상태였다.

1층 여자분의 설명에 의하면, 잠결에 발 아래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몸을 일으켜 보니 어두운 곳에서 실루엣 하나가 가방이 있는 선반을 뒤지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 놀라 누구냐고 외쳤는데 정작 그 사람은 놀라지도 않고 태연하게 뒤돌아 잠시 쳐다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방을 나갔다고 했다.

그 여자분은 너무 놀라 그 남자가 나가고 나서도 잠시 동안 얼어 있었고 도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야 옆에 있던 동생을 깨워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소리쳤고 그 소리에 내가 잠을 깬 것이었다.

지갑과 카메라가 없어진 걸 확인한 뒤부터 머릿속이 하얘졌다.

멍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여행은 그냥 이렇게 끝나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1층에 있던 여자분이 여권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지갑에 카드가 있다면 빨리 분실 신고부터 하라고 말해줬다.

다행히 여권은 가방에 그대로 있었다. 여권을 확인하고 나서는 곧바로 카드사에 전화했다.

카드 분실 신고는 시간에 상관없이 가능했기 때문에 곧바로 분실 신고를 하면서 카드 정지를 시켰고, 혹시나 그 사이에 사용한 내역이 있을까 싶어 확인을 했는데 다행히 사용 내역은 없었다.

카드 분실 신고까지 하고는 다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열차에 오를 때 짐을 들어줬던 남자가 생각났다.

곧바로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지갑을 잃어버린 2층 여자에게 그 남자에 대해 얘기를 했고, 인상착의를 기억할 수 있으니 찾아보자고 했다. 그렇게 그 여자와 둘이서 침대칸부터 일반 열차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옆칸으로 넘어갔는데, 새벽시간이라 불이 꺼진 상태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얼핏 체격이 비슷한 사람은 다 똑같이 보이기도 하고 다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 헷갈리기만 했다.

더구나 침대칸은 방문이 안에서 잠겨 있어 아예 확인을 하기 어려운 곳도 있었고, 일반 좌석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왔다 갔다 하니 시끄럽다며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두세 칸 정도만 확인하다가 결국엔 다시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시간도 많이 지났고 더 이상 잠을 잘 수는 없을 것 같아 짐을 정리해두고 복도를 서성이고 있는데, 어느새 밖으로는 해가 조금씩 떠오르며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밝아오는 차창 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여행책에 물품 도난 혹은 분실 시에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해 나와 있던 게 생각이 났다.

대체적으로 유럽여행을 할 때는 여행보험을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난 물품에 대해서는 경찰서에서 도난 신고를 한 후 확인서를 받아야 처리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유럽에서 국경을 넘어가는 열차는 열차 승무원과 경찰이 같이 탑승을 한다. 출발하는 국가의 승무원과 경찰이 탑승했다가 국경 지역에서 다음 국가의 승무원과 경찰이 탑승해 인계한 후 이동하게 되어 있다.

내가 탔던 열차도 경을 넘는 열차다 보니 경찰이 탑승해 있었고, 나는 곧바로 경찰을 찾아가 상황 설명을 하고는 확인서를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경찰의 첫마디는 '어디서'였다.

내가 경찰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스페인에 넘어온 상태라 스페인 경찰이 탑승해 있었는데, 경찰의 말은 국경을 넘는 열차이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도난당한 것인지 스페인에서 도난당한 것인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프랑스 국경을 넘지 않은 상태에서 도난당했다면 자신이 확인서를 써줄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도둑이 방에 들어왔을 때가 어느 국가였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일어나서 짐을 확인하다가 카드사에 전화한 기록이 있어서 대충 몇 시쯤이었다고 설명하니 그 시간쯤이면 프랑스였던 것 같다고 하더니 자신이 써줄 수는 없다며 그냥 돌아가 버렸다.

어차피 나도 그 경찰도 정확한 시간을 알 길이 없는데 도난당했다는 사람한테 굳이 그렇게까지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요구해야 하는 건가 싶어 어이없고 화가 났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그 경찰도 나도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건을 구입한 내역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물건을 도난당한 것에 대한 확인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즉, 물건이 없는 상태에서 내 설명만으로 확인서가 기재되는 것인데 경찰 입장에서는 내가 거짓으로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내용을 확인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정확히 어디였고 몇 시쯤이었냐는 질문에 나는 곧이곧대로 대답을 하고 거기에 그 경찰은 어차피 본인이 확인할 수 없는 내용임에도 안된다고 잘라 말한 것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둘 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 정신이 없었던 나는 돌아서 가버리는 경찰을 보며 허탈해하기만 했었다.

그리고는 나중에서야 아예 다른 나라인 이탈리아에서 확인서를 받았다. 역시나 이미 분실한 물건에 대한 확인서였기 때문에 간단한 상황 설명과 신분 확인만 하고 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서류 문제와 금액 관련한 문제 때문에 어차피 보험사 보장은 받지 못했고, 제3의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받은 경찰 확인서는 여행의 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바르셀로나] 새로운 카메라로 찍은 첫 번째 사진




허탈한 마음과 절망스러운 감정으로 도착한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날은 정신을 차리는데 써야 했다.

열차에서 도난 사실을 확인하고서 첫 생각은 '한국으로 돌아가야겠구나..'였다.

바르셀로나 역에서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 들어갈 때 까지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돈도 잃어버렸고 카메라를 잃어버렸는데 더 이상 여행은 무리일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려 더 이상의 여행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다음 여행지의 숙소는 물론이고 여행 일정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이미 예약해둔 상태라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려야 할 것 같아 집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통화를 하며 내용을 듣던 언니가 가지고 있던 돈과 카드를 전부 잃어버린 거냐고 물었다.

그건 아니었다.

이동하면서 늘 들고 다니던 가방에 지갑을 넣어 두었고 그걸 잃어버린 건데, 거기에는 항상 하루 일정에 필요한 정도의 현금만 넣어 들고 다녔다.  그 외의 현금은 모두 캐리어 제일 안쪽에 넣어 두었다.

카드 역시 비상시를 위해 신용카드를 지갑에 넣어둔 것이었고, 한국에 있는 돈을 찾아 쓰기 위한 카드는 현금과 함께 캐리어에 보관되어 잃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언니는 지금 힘든 감정 때문에 섣부른 결정 하지 말고 길게 보라는 말을 했다.

두 달의 여행 중 이제 겨우 한 달 정도 지났는데, 그 여행을 위해 준비한 시간이 아깝고 그대로 돌아온다면 다시 또 그렇게 시간을 내서 가기 힘들 텐데 그런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결정을 하라고 했다.

엄마와 언니하고 통화를 하고 나니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언니 말대로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고, 카메라를 잃어버렸지만 아주 운이 좋게도 니스 에서의 이틀간의 여행 사진만 날려 버렸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여행 기간이 길다 보니 여행 중에 한 번은 카메라 사진을 백업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영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순으로 여행을 하는 일정이었고 여행 중반부 정도 되는 이탈리아에서 한 번쯤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밤 내가 머물던 호스텔 같은 방에 한국인 여자분 한 명이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호스텔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을 본 적이 없었는데 마지막 날 밤에 같은 방에 한국인이 들어오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그분 역시 이곳에서 한국인을 만날지 몰랐다며 반가워했다.

나보다 더 길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그 여자분은 사진 백업과 여행 정보를 위해 작은 랩탑을 가지고 다녔다. 나에게 사진은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어보더니 자신이 씻는 동안 랩탑을 이용해서 사진 백업을 하라고 했다.

유럽 여행에서는 카메라를 도둑 맞거나 잃어버리기 쉽고 고장 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자주 해주는 게 좋다면서 선뜻 본인의 랩탑을 건네주고는 씻으러 들어갔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그간의 여행 사진을 백업하고 다음날 니스에 갔다.

니스에서 보낸 이틀 동안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공사하는 곳이 많아 바다 풍경을 찍은 약 20장 정도의 사진만 있었기 때문에 그 사진만 잃어버리게 된 것이었다.

돈도 사진도 모두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정신도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언니 말대로 여기서 포기 하기에는 준비한 시간과 앞으로 남은 시간이 아까웠고, 무엇보다 카메라 값을 지원해 주겠다는 언니의 말에 조금 더 정신이 들었다.

언니는 가능하면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오길 바라고, 여행하면서 사진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니 카메라도 다시 사라고 하면서 경비 일부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언니와의 통화를 끝내고 곧바로 카메라를 사러 갔다. 그리고 캐리어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충전기와 여분의 배터리를 보면 계속 화가 날 것 같아 똑같은 모델로 구입하기로 했다. 왠지 그래야 내가 카메라를 도둑맞았다는 것을 잊고 계속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구입한 내 카메라는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아 가끔씩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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