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 인도
인도 여행을 시작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단연 사막에서 별과 은하수를 보는 일이었다.
'쏟아진다'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곳이 사막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는 않았다.
간혹 친가가 있는 시골을 내려가거나 국내에서 산골로 여행을 갈 때 한 번씩 별이 많은 모습을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쏟아져 내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서울 하고는 확실히 다르구나..' 정도였다.
그런데 사막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풍경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내 눈이 잘못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무수히 많은 별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내리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별이 많은 곳이라고 해도 어두운 밤하늘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사막의 밤하늘은 별이 더 많은 정도였다.
요즘에는 핸드폰 카메라만 이용해도 별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를 여행했던 것도 벌써 꽤 오래전이고 사진에 대해 문외한이라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게 아직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비록 기록으로 남길 수는 없었지만 사막에서의 그 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우주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그 별빛들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인도 여행의 거의 시작점이었던 곳이 사막을 볼 수 있는 자이살메르였는데, 그렇게 빛나던 별빛처럼 반짝 거리는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사막에서의 일정조차 별을 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것 하나 쉽고 편한 게 없었다.
시작부터 그랬던 탓인지 아직도 인도는 가고 싶지만 가고 싶지 않은 애증의 나라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사막에서 별을 보는 것만큼이나 새롭고 기대되는 활동 중의 하나는 단연 낙타를 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동물원에 가도 볼 수 없는 동물이다 보니 그런 동물을 직접 보는 것은 물론 타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면서도 동물을 워낙 무서워하는 나였기에 과연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교차하며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사막 투어를 기다려 왔었다.
처음 마주한 낙타의 첫인상은 다행히도 귀여웠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게도 특이하게 생겼다였었다.
멋있고 잘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말 과는 다르게 작은 얼굴에 큼직한 눈, 코, 입이 다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뭔가 귀여운 듯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꺼려지는 느낌이 드는 외모였다.
사막 한가운데 앉아 의자 모양을 한 몸통을 뒤로 하고는 느릿한 속도로 눈을 깜빡이며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이 어딘가 맹한 느낌이 들면서도 그렇게 친근감 있는 느낌은 아니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낙타를 귀엽게 치부하며 우습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 낙타에 올라 그가 일어서자마자 '흐억..!'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생각보다 너무 높은 높이에 당황했다.
사막의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하는 구루(Guru)들은 하나같이 놀라 소리치는 우리 일행을 보며 안심하라 손짓하면서도 '귀엽네..'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불과 1~2분 전에 앉아있던 낙타를 바라보던 우리의 표정과도 같았다.
속으로 우습게 생각하며 비웃었던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건지, 낙타들은 생각보다 온순하고 편안하게 우리를 이끌어 주지 않았다.
여행 일행 중 한 명의 낙타는 출발 전부터 울면서 말을 안 듣는 듯하더니 결국엔 얼마 못 가 춤을 추듯 비틀 거리는 바람에 타고 있던 친구가 점프하듯이 뛰어내려야만 했다.
결국 다른 사람이 타고 있던 낙타에 같이 탑승을 하고 이동을 하는데, 곧이어 또 다른 낙타 한 마리도 말썽을 부리며 멈춰 서는 바람에 다른 사람과 같이 탈수 밖에 없었다.
중간에 쉬어가는 시간까지 거의 두 시간 거리를 이동하는 코스였기에 걸어갈 수는 없었고, 절대적으로 낙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낙타의 운행 거부는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높은 높이에 무서움을 느끼며 안 그래도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두 마리가 연이어 운행 거부를 하는 모습을 보니 낙타는 더 이상 맹하고 귀여운 동물은 아니었다.
말썽 부리는 두 마리의 낙타님들 덕분에 이동하는 내내 잔뜩 긴장한 체 온몸에 힘을 주고 앉아 있었던 탓 인지, 운행시간 대비 두 배 이상의 근육통이 느껴지는 듯했다.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말 안 듣는 낙타들 덕분에 안 그래도 긴장되고 걱정 많은 사막 투어였는데, 우리를 안내하던 구루(Guru)들 역시 낙타처럼 멋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의 피곤함은 두배로 늘어나고 있었다.
우리 팀을 인솔하는 한국인 팀 리더가 있었지만, 사막 투어는 현지 가이드가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지역 특성상 길을 안내하는 것도 그렇고 하룻밤 머물기에 마땅한 장소를 찾는 것,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낙타를 케어하는 것 등 모든 것이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거의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현지 가이드와 함께 동행하는 투어를 신청해서 같이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사막에서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구루(Guru)'라고 하는데, 사실 이 단어는 '영적 지도자'라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 깊은 뜻이 무색하게도 우리 팀의 구루들은 '영적 지도'가 아닌 '물질적 지도'를 목적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우리 팀 리더와 사전에 일정 조율을 마친 내용으로는 사막에서 마을은 들리지 않고 바로 이동하는 것으로 했다는데,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본인들이 사는 마을로 우리를 유인했다.
아마도 마을 상점에서 뭐 하나라도 사게 하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았다.
영문을 모르고 그들이 이끌던 대로 따라가던 팀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팀 리더가 강하게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팀원들도 뒤늦게 상황 파악을 했지만 팀 리더가 나서서 항의를 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실랑이가 길어진 덕분에 약 20여분 정도 일정이 지체되긴 했지만, 강력한 항의에 한걸음 물러난 구루들이 결국 미안하다며 상황이 정리 됐고 곧바로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마을을 돌아 나오는데 길가에 어린아이 두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서는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수줍어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쨌든 약속을 어긴 행동이었고 팀 전체를 이끄는 인솔자가 항의하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도 그저 그 뜻을 따르고 기다리기만 했는데, 처음 보는 우리에게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며 돌아서자니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어쩌면 척박하고 메마른 이 땅에서 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기에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인도였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해맑음을 보며 감상에 젖은 것도 잠시, 낙타가 몸을 담그고 물을 마시던 웅덩이에서 퍼온 물로 만들어 주는 짜파티와 야채수프로 점심을 해결하며 우리들의 마음은 다시금 사막처럼 메말라 가고 있었다.
근력운동 같은 낙타 타기에 지친 일행들이 사막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쉬는 동안 구루들이 점심을 만들어 준다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 중 한 명이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루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니 구루 한 명이 사막 한가운데 있는 웅덩이에서 물을 가져다가 반죽을 만들고 수프를 끓이는 냄비에 부었다는 것이었다.
그 웅덩이의 물은 사막의 모래 보다도 더 진한 색으로, 모래 때문에 색이 진한 것인지 다른 동물의 배설물이 섞인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탁한 빛을 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낙타가 물을 먹고 있었다.
누워 있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일어나며 '진짜? 진짜?'를 외치는 사이 인솔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던졌다.
"이런 것도 못 참을 거면 인도여행 뭐 하러 와."
순간 그런 모습에 놀라워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 싶을 만큼 태연하고 잘못됨을 타박하는 소리였다.
'아.. 인도란 이런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스치다가도 이내 '인도는 꼭 이래야 하는 거야? 이게 맞아?'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둘러보니 다른 몇몇 팀원들의 생각도 비슷한 눈치였지만 그 누구 하나 입 밖으로 자신의 생각을 내뱉지는 않았다.
팀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이 그랬다.
좋은 점은 좋은 것 대로 같이 즐길 수가 있지만, 안 좋은 점은 누군가 큰소리로 불만을 표시하는 순간 전체의 분위기가 흐려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여행의 시작점과 같았던 시기였기에 굳이 그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기에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선택한 여행이었고 내가 선택 한 곳이었으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해 보자는 생각을 하며 가방에서 간식으로 준비해 간 초코바를 조심히 꺼내 물었다.
안 본 음식이 가장 깨끗하다고 했던가.
조금 전 들은 건 못 들은 거고,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다만, 마냥 기다리기에는 배가 많이 고팠기에 미리 간식을 먹는 것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해가 저물기 직전, 최종 목적지였던 사막의 한가운데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짧고도 길었던 하루를 뒤로하고 점점 어둠이 내려앉는 사막을 보며 얼마나 많은 별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해가 저물어 가며 급격하게 시원해지는 사막의 날씨에 하루 종일 더위와 여러 가지 일들에 지쳤던 일행 모두 다시 생기가 돌고 있었다.
이미,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기 전에 노을빛으로 물드는 사막의 풍경은 수많은 별만큼이나 멋있고 기대 이상의 모습이었다.
그 풍경을 배경 삼아 모두들 실루엣 사진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어느새 사막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그 사이로 하나둘 별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할 때만 해도 듬성듬성 보이는 듯하더니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다들 하나씩 자리를 잡고 사막 모래를 침대 삼아 자리에 눕자, 말 그대로 쏟아지는 별빛과 은하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한참을 누워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내가 보고 있는 게.. 이게 맞아? 이게 현실이야?'라는 말에 모두 웃음이 터져 버렸다.
별빛을 감상하며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각자 조용히 속으로 감탄만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사뭇 진지한 말투가 튀어나오자 웃음이 나긴 했지만,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눈앞의 풍경이 진짜 인가, 누군가 내 눈에 필터를 씌워두고 간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풍경이었다.
감동과 감탄을 넘어 현실을 부정하듯이 따지는 말투에 다들 웃음이 터지면서도 '맞아, 맞아. 그러게..' 하는 말들이 들리는 것을 보아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언제 또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추위도 잊은 채로 한참을 자리에 누워 별빛을 바라보다가 추운 날씨를 핑계 삼아 작게 캠프파이어를 했다.
비록 낮에는 잠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었지만 불빛에 둘러앉아 편하게 서로를 마주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는 구루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낮에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던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던 것처럼 '그래..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 돈이 문제지..'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금 감상에 젖어들었다.
주변에 불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빛이 반짝이고 어둠 속에 오로지 장작을 태우는 불빛에 의존해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마주 앉아 있자니 낮동안 벌어졌던 실랑이와 날카롭게 오갔던 말들은 어느새 장작과 함께 타들어 가고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게 아주 잠시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때부터였을까.
인도에서는 감성과 감상 따위의 감정은 저 멀리 던져두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늘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
우리 팀은 총 11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인원 중에서 내 동생만 유일한 남자였고, 나머지는 모두 여자인 여행팀이었다.
그리고 6명의 구루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를 지켜 주겠다는 명목하에 우리가 침낭을 깔고 누운 자리 바로 옆에서 자겠다고 나섰다.
인원수로 보면 절대적으로 우리가 많은 상황이었지만, 이곳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소위 말하는 그들의 구역이었다.
낮에 들렀던 본인들의 마을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중간중간 만났던 몇몇의 사람들도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스쳐 지나갔다. 개중에 몇몇은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우리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보냈던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건물도 없고 공간의 구분도 필요 없는 사막이라지만, 굳이 우리들이 누운 자리 바로 옆에서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낮에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까지 떠오르며 불안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피곤했던 하루를 별빛을 보며 기분 좋게 마무리하려는데 그들은 그 마저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낮에 있었던 일처럼 길고 긴 실랑이가 벌어진 끝에 결국엔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우리 시야에서 벗어났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시간마다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누군가는 어디에서 찾아온 건지 알 수 없는 막대기 몇 개를 한 사람 건너 하나씩 쥐어주며 들고 있으라고 했다.
잠을 자도 되는 게 맞는지 진짜 돌아가며 보초를 서야 하는 건지 의견이 분분 했으나, 온몸에 근육통을 만들어준 낙타님 덕분에 어느새 모두 잠이 들어 버렸다.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없이 사막에서의 아침을 맞이했다.
분명 잠을 잤는데도 밤새 모래바람을 맞은 탓인지, 긴장하며 선잠을 잔 탓인지 다들 심할 정도로 꼬질꼬질한 모습에 서로 웃음밖에는 안 나왔다.
거기다 막대기를 부여받은 몇몇이 너무나 충실하게 막대기를 쥐고 있다가 일어나는 모습에 어이없는 웃음도 흘러나와 버렸다.
그러는 사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얼굴로 해맑게 나타난 구루들이 굿모닝을 외치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그들을 향해 우리도 애써 미소를 보였다.
아직은 사막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그렇게 웃어 보이며 그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전날 밤하늘에 수놓아져 있었던 수많은 별빛과 은하수가 아니었다면 그 어느 것 하나 좋은 기억은 없었을, 힘겹고도 피곤한 사막 투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