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 인도
아직은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녘, 갠지스강을 가로지르는 배를 타기 위해 일찍이 숙소를 나섰다.
갠지스강 아래 뭐가 있는지 갠지스강이 어떤 물인지 너무나 많이 들었고 두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기 때문에 보트를 타고 그 위를 떠다니는 것조차 조금은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바라나시에서의 첫날밤 '디아 의식(Diya ceremony)'을 하기 위해 배를 타본 경험이 이미 있기는 했다.
저녁에 어두울 때 정신없이 올랐던 탓인지 그날은 배를 보며 불안하다는 느낌이 많지는 않았는데,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에 배에 오르려고 하니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무로 만들어져 어딘가는 뜯어지고 어딘가는 삐걱 거리는 듯한 배에 올라타면서 다리가 조금은 떨리는 느낌도 있었지만, 오히려 배에 올라앉아 강가로 나가기 시작하니 생각보다는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처음 배를 타고 강가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는 어둠이 내려앉는 중 인지 걷히고 있는 중 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풍경이 이어지는 듯하더니 그것도 잠시,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예상과는 다르게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의 갠지스강 풍경이 펼쳐졌다.
낮에 보고 느꼈던 이미지와는 또 다른 갠지스 강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전날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사실이 잠시 잊히는 듯하면서 인도에서 왜 요가가 유명한지 알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었다.
갠지스강에는 두 개의 화장터가 있다.
강가에서 두 개의 화장터를 둘러보기 위한 배 탑승 체험은 메인가트에서 출발해 강의 상류 쪽에 마련된 화장터를 먼저 둘러보고, 반대편으로 돌아 메인 화장터라 할 수 있는 하부 쪽 화장터까지 본 후에 다시 메인가트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바라나시의 화장터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둘러보는 이른 새벽 시간에도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상류에 위치한 하리쉬찬드라 가트 (Harishchandra Ghat) 화장터는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환경오염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인도 정부에서 전기식 화장터를 만들어 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에 의해 이곳 갠지스강까지 와서 화장을 하는 이들이 그런 전기식 화장터를 이용하는 일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전통적인 장작 화장을 이용하는 경우 유가족이 직접 장작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적인 문제로 여유롭지 못한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전기 화장터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한 생각으로는 전기식 기기를 이용하는 게 훨씬 더 좋고 비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으나 이곳은 '인도'라는 것을 잠시 망각한 멍청한 생각이었다.
죽음조차 신에게 돌아가는 길이라 믿는 이들이 그런 차가운 기기에 들어가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건 그저 경제적인 여유로움이 부족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전기 화장터를 이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가난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크고 그마저도 전기 공급 문제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덩그러니 놓인 전기식 화장터를 뒤로 하고 강가로 이어지는 화장터에서는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뱃머리를 돌려 강의 하류에 위치한 마니카르니카 가트 (Manikarnika Ghat) 화장터로 향했다.
마니카르니카 가트 (Manikarnika Ghat) 화장터는 갠지스강의 메인 화장터라 할 수 있는 곳이다.
힌두교에서는 바라나시라는 도시 자체가 '죽음과 출생'이 만나는 도시로 여겨지며 신성시되는데, 이곳 마니카르니카 가트는 그중에서도 조금 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지역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많게는 200구 가까운 시신이 화장되고 있으며,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화장터 근처에 다다르기도 전에 멀리서부터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고, 상류 쪽에 있던 하리쉬찬드라 가트의 화장터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른 새벽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쉴세 없는 운구 행렬이 이어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절반 이상 타버린 시신, 이제 막 태울 준비를 마치고 장작 위에 올려진 시신, 장작에 올리기 전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고 생전의 죄를 씻어내고 있는 시신과 그 뒤로 이어져 화장터로 들어오고 있는 시신까지.. 많은 사람들이 조용하면서도 분주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낯설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가만히 화장터를 바라보는 동안, 갠지스강에서의 화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힌두교인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화장되고 싶어 한다기에 여건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과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힌두교 수행자.
이미 생전에 영적 화장을 이루어낸 사람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죄를 씻어내는 의식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본다고 한다.
뱀에 물린 사람 또한 이미 죄를 씻어낸 사람이라 보고 화장하지 않는데, 이는 힌두교에서 뱀이 신성시되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10세 미만의 어린아이와 임산부.
어린아이들은 죄를 짓지 않은 순수한 영혼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죄를 씻어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고, 아이를 잉태한 임산부도 같은 이유로 분류하지만 한편으로는 임산부의 경우 두 명의 생명을 상징하므로 화장하는 것이 곧 죄를 짓는 것이 된다 하여 화장터에서 화장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 모두 죄를 씻어내고 속죄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기에 굳이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고 화장을 하며 신에게 돌아가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보아 화장을 시키지 않지만 딱 한 부류, 화장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한센병 환자들이다.
문둥병으로도 불리는 이 사람들은 불결함과 오염을 시키는 존재라 여겨 신성시하는 갠지스강에서의 화장을 금했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들과 지금 저 갠지스강의 물, 둘 중에 뭐가 더 오염도가 심한 걸까 싶은 의문이 들며 굳이 그런 구분을 두는 이들의 마음도 생각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치긴 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싶은 생각에 그저 묵묵히 설명을 듣고 있던 그때, 가이드의 마지막 말에 동공이 열리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람들 모두 여러 가지 이유로 불필요하다 생각해 화장 절차를 거치지는 않지만, 그들 역시 힌두교 신자라면 신에게 돌아가야 하기에 마지막엔 결국 갠지스강에 수장된다는 것이다.
그 말인 즉, 온전한 시신 상태 그대로 저 갠지스강에 가라앉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떠 있는 이 물아래로는 아직 완전히 썩지 않은 누군가의 시신이 물속을 유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바라나시에 머무는 3일간 가장 많이 한 생각과 말은 '대체 왜.., 아니 왜..' 이것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대체 왜..!!
하지만, 그 짧은 탄식과 놀라움으로 벌어졌던 입은 배에서 내려 화장터에 가까이 가서 화장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는 완전히 닫혀 버렸고 이제 이곳에서는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화장터를 구경한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워낙 공개된 장소에 위치한 곳이다 보니 수많은 관광객들이 들려보는 대표적인 장소중 하나로 꼽히고 있었다.
같이 팀을 이루어 갔었던 사람들 중에서는 새벽에 배를 타고 둘러본 것으로 충분하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몇몇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뭔가 겁나고 두렵기는 하면서도 그래도 가까이에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배에서 내려 다시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터에 가까워질수록 배를 타고 멀리서 봤던 것 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직 화장터가 보이기도 전에 매캐한 연기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연기를 따라 간 길의 끝에는 넓은 공터에 수없이 쌓인 장작과 시신이 보였다.
이미 불타고 있는 시신 옆으로도 계속해서 화장될 시신이 들어오고 있었다.
화장터에 도착한 시신은 제일 먼저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는 의식을 진행한다. 이는 생전의 죄를 씻어내는 의미이다.
실제로 생전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죄가 많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30분 이상 몸을 담그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 외에는 보통 5~10분 내외로 시신을 담갔다가 빼낸다.
그 사이에 유가족이 준비한 장작을 쌓아 올려 시신을 태울 준비를 한다.
여기에서 씁쓸한 사실 하나는 장작이 쌓인 모습을 보면 망자와 그 유족들의 경제력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작이 꽤나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건이 좋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적은 양의 장작을 살수 밖에 없어 시신이 놓이는 위치가 상당히 낮다.
반면 경제적 여건이 좋은 집에서는 시신이 충분히 타고도 남을 양의 장작을 준비하기 때문에 한참 높은 곳에 시신을 올리게 된다.
삶의 마지막에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분이 확연한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마지막까지 냉정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멍하니 화장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조금은 낮게 쌓아 올렸던 장작에 있던 시신이 어느새 다 타고 사람들이 유골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골을 수습하던 남자의 손끝에 종아리까지 밖에 타버리지 못한 다리 하나가 들리는 것이 보였다.
분명히 발목부터 발가락 까지는 살점이 그대로 붙어있는 온전한 형태 그대로였다.
유가족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며 시신을 수습하고 뭔가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이더니 그대로 시신이 보자기 같은 천에 쌓였다.
사람들에 가려져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뒤로 시신을 더 태우는 모습은 볼 수 없었으니 아마 내가 봤던 모습 그대로 쌓인 것 같았다.
저렇게 화장된 유골이 어디로 가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또 다른 갠지스강 어딘가에서 유족들만의 의식을 치르며 그 아래로 띄워 보낼 것이다.
새벽녘 배에서 들었던 화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대로 수장된다는 사실에 놀라 벌어졌던 입은, 유골을 들고 화장터를 떠나는 유가족을 보며 굳게 다물어졌다.
매캐한 연기 때문인지,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탓인지 눈도 감겼다.
이런 내용도 화장터에 오기 전에 이미 듣기는 했었다.
장작이 부족해 다 태우지 못하고 수습하는 시신이 있다고.
그 말을 듣고도 그때까지는 온전한 시신의 형태로 수장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 놀라운 마음이었다.
어쨌든 화장을 하면 유골만 있을 텐데, 아무리 다 못 탄다고 해도 사람의 온전한 형태 그대로인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직접 화장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뭐가 더 나은건지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잿더미 사이에서 삐져나온 발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며 혼란 스러 웠지만, 어느 순간엔 이거든 저거든 뭐가 다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살점이 붙어있는 온전한 시신의 모습이든, 타다 만 시신이든 저 물속에 잠기는 순간 똑같을 텐데 뭘 새삼스레 놀라워 충격을 받은 것처럼 새삼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걸까 싶은 자조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고개를 들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눈을 떴다.
그대로 잠시 멍하니 화장터를 더 바라보다가 가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성한 의식과도 같은, 그리고 누군가에겐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안고 그를 떠나보내는 과정을 마냥 구경하기에는 좀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어 적당히 자리하다 돌아 나왔다.
매캐한 연기를 씻어내고 머릿속의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고자 하염없이 가트를 따라 걸었다.
걷는 동안 내 옆으로는 여전히 강가에 몸을 담그고 씻어내는 사람들과, 그 옆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 등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신성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불과 하루이틀 전에는 그저 놀랍기만 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대체 왜 이럴까..' 싶은 생각만 들게 했던 모습들 조차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모습으로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멍하니 걸으며 생각을 비우고 몸에 닿았던 연기도 비워냈다.
사실 비워낸 건지 사고의 흐름이 멈추어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안 하게 된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걸어야 할 것 같았고 그 어딘가에도 가만히 있을 수 없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생각이 안 들기까지 한 시간을 넘게 가트를 따라 걷고 난 뒤에야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갠지스강에서의 경험을 생각하면 놀라움과 충격의 연속이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놀라움', '충격'이라고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단순히 나쁜 의미다, 좋은 의미다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경험이라 더 그런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전에도 그 뒤로도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여러 가지 경험을 비교해 봐도 인도에서의 경험만큼 강력한 기억을 심어준 곳은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삶과 신이 영역이 공존하던 바라나시에서의 경험과 기억은 더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