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 인도
나름 여러 나라와 지역을 여행하며 예상치 못한 변수들과, 흔히 겪기 어려운 경험들을 몇 차례 마주한 덕분에 스스로 마음이 꽤 단단해졌다고 생각했었다.
앞으로는 여행을 하면서 마주하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다짐과 자신만만함을 한 번에 무너뜨린 곳이 바로 인도였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청결함과 위험 요소에 대한 조건에 민감해하면서도 인도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사실 지금 생각해도 뭐 때문이다 하고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두려움과 걱정이라는 마음을 기본으로 깔아 두면서도, 인도는 막연하게 가보고 싶은 여행지였다.
정확하게는 '꼭 한번 가보고 싶지만, 가기 싫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결국엔 내면에 자리한 호기심이 더 큰 힘을 발휘하며 '인도 여행'이라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인도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내 머릿속을 가장 많이 뒤흔들며 혼란을 주었던 곳은 단연 '갠지스 강'이었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갠지스 강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왔고, 그곳의 풍경을 수도 없이 봐왔었다.
종교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곳으로 기억하며 여행지를 소개하는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봤었던 걸로 기억한다.
힌두교 신자들이 신성시 여기는 곳이며 매일같이 종교의식이 치러지고, 죽은 자를 화장하는 화장터가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죄를 씻어낸다.
수질 오염도가 높아 인도 정부에서는 강가 화장을 금지하고 강에서 씻거나 빨래를 하는 등의 행위를 제한하려고 했으나,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종교인으로의 삶을 당연한 의무라 여기고 본인들이 믿는 신과 그 뜻이 살아가는 길이라 믿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저 숫자 몇 자리로 표기되는 오염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신으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 신에게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믿을 뿐이다.
갠지스강이 신성시 여겨지는 이유는, 천상계의 신성한 강이었던 강가(Ganga) 여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 힌두교에서 가장 대표적인 신으로 여겨지는 시바(Shiva) 신의 머릿결을 따라 흘러내려왔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인도 전역의 힌두교인들은 인생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갠지스강에서 화장되고 수장되는 것이 신에게 돌아가는 길이라 믿으며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희망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죽음의 순간에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갠지스 강이 위치한 바라나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신성한 강물에 몸을 담그고 신을 만나는 것이 큰 축복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인도에 도착해서도 여행팀 리더를 통해 갠지스 강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바라나시에 도착한 첫날부터 골목길에서 마주한 시신 운구 행렬은 그 앞에서 쉽게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어려울 만큼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어릴 적 시골 친가에 방문했다가 상여 행렬을 보고는 순간 온몸이 굳어졌던 기억이 떠오를 정도였다.
시골에서 6살까지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시골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지만, 드문드문 시골에서의 삶이 기억나기는 한다.
이사한 뒤에도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자주 오갔었기 때문에 잠시 들리러 시골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인지 그곳에서 살았을 때의 기억인지 헷갈리는 것도 있지만, 여러 기억 중에 가장 강렬한 기억 하나가 바로 상여 행렬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아마 내 또래들조차도 '상여(喪輿)'라는 것이 뭔지도 모를뿐더러 직접 눈으로 본적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내가 살았던 시골은 면(面) 보다도 더 작은 단위인 리(里)로 구분되는 곳이다.
그래도 내가 이사를 나올 때인 수십 년 전부터 읍내에 있는 장례식장을 이용해 현대적인 장례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집안에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 계신 몇몇 집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장례를 치르는 곳이 있었고, 내가 성인이 돼서도 가끔 시골에 내려가면 얼마 전 누구네가 상여를 이용해 장례를 치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는 했었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에는 시골에 내려가면 상여 행렬을 마주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부모님이나 친척들과 함께 지나다 마주치면 그래도 괜찮지만, 언젠가 한 번은 혼자서 큰아버지댁을 나오다가 상여 행렬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망자를 애도하기 위해 소리꾼이 곡소리를 내며 화려하게 장식된 관을 여러 사람이 들고 지나가는 모습은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마치 나를 잡아갈 것만 같은 무서운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너무 가파르게 느껴져 천천히 걸어 내려오던 언덕길을 한달음에 내달려 큰아버지댁으로 숨어 들어갔던 그날의 기억이 인도에서 다시 살아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라씨를 손에 든 채로 멍하니 굳어져 버렸다.
더구나 바로 옆으로 지날 때 보니 관에 시신을 넣어 겉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한국의 상여와는 다르게 수의 같은 옷만 입힌 시신을 들 것 같은 곳에 덩그러니 올린 채 사람이 많은 골목을 유유히 지나쳐 가는 모습이 조금 더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화장터에 나가 보기로 했는데 과연 괜찮은 선택일까 싶은 고민을 하며 갠지스 강을 바라볼 수 있는 가트로 나갔다.
'신이 흘려보낸 물, 그것도 인간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 흘려보낸 물'
그것이 갠지스 강의 전설이다.
인도인이자 힌두교인들에게는 전설이 아닌 현실이다.
그렇기에 죽어서 신에게 돌아간다는 이들은 물론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조차도 신성의 강물에 한 번이라도 더 닿기를 원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신의 기운을 받기 위해, 하루가 마무리되는 저녁 시간에는 오늘 하루 나에게 들러붙은 세상의 때와 나의 허물을 씻어내기 위해 강물에 몸을 담근다.
그 옆에서는 내 몸을 덮는 옷가지를 신성한 물로 씻어내기 위해 빨래를 한다.
강의 최상류와 하류에는 각각 화장터가 자리하고 있고, 시신을 강물에 담갔다가 화장을 하고 화장이 다된 시신은 수장시킨다.
바라나시 시내에서 이어지는 강가는 가트가 조성되어 있지만, 반대편은 바닷가처럼 모래 둔턱으로 되어 있어 동물들이 지나다 강물에 몸을 담그고 용변을 보기도 한다. 특히, 힌두교에서 신성시되는 동물인 소가 강물에 드나들거나 용변을 보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이다.
강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시신의 잔해가 가라앉아 있는지 알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동물이 그 물에 용변을 보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물은 신이 흘려보내준 물이기에 그곳에 몸을 담그며 신을 만나고, 그곳에서 내 몸에 걸칠 옷을 빨아 입으며 신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고 믿는다.
현대적 장비를 이용해 수질오염 검사를 하고 그 수치를 들이밀며 이 물은 깨끗하지 않으니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신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 신께서 지상으로 직접 내려와 물을 흘려주었고 아직 까지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감히 오염이라는 표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성 모독이며 죄악이다.
내 몸에 붙어있는 부정과 더러움도 신께서 깨끗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동물과 사람의 용변조차 신의 물에 닿으면 깨끗해진다.
죽은 자의 잔해가 신께 안기어 잠든다면 그 역시 깨끗하고 신성한 행위일 뿐이다.
신께서 흘려보내고 있는 이 물은 무엇이든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가트에 서서 갠지스 강을 가만히 바라보며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나는 누 군인가, 여긴 어디인가.'
'사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의 존재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믿고 따르는 신이 없는 나는 부정한 인간인 걸까.'
나는 그저 현대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내 눈앞에 보여 확인할 수 있는 것 들과 내가 아는 것 들을 사실로 믿고 따라간다.
눈앞에 보이는 물은 더럽고 오염된 물일 뿐이다.
물속 깊은 곳에는 수많은 시신이 수장되어 있다고 했고, 저 옆에 아주머니는 빨래를 하고 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물은 단순히 물의 색깔을 배재하더라도 당연히 더러운 물이다.
그런데, 내 눈앞에 보이는 또 다른 사람들은 그 물에 몸을 담그고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이 경건한 자세로 자신의 몸을 씻어내고 심지어 물속에서 기도를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저 멍하니 앉아서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머릿속에 대혼란 상태가 찾아왔다.
'저들이 미친 걸까, 내가 미친 걸까.'
'이걸 미쳤다고 표현하는 나는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겠지.'
'이것도 하나의 문화일 뿐이야. 다른 나라의 문화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행위는 욕먹을 짓인데..'
'그들의 신념과 믿음으로 따라가는 행위를 감히 내가 미쳤다고 표현할 자격이 있기나 할까.'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생각의 흐름이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따라 오로지 믿음 하나로 행하는 그들의 모든 행위와 의식이 어느 시점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이고 신이고 어느 하나 확실하게 믿어본 적이 없던 나 보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그 존재에게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절제하며 눈에 보이는 사실보다 마음의 사실을 더 믿고 따르는 저들의 모습이 오히려 나보다 더 정제되고 깨끗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 옆으로 풍덩 소리를 내며 들어간 젊은 남자분이 온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는 것도 모자라 양치까지 하는 걸 보며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제발, 집에 가서 씻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