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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Mar 30. 2024

지명

교감 지명받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묵직한 책임감 때문인지 부담감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마냥 기쁘거나 구름 위에 걷듯이 붕 뜬 느낌은 아니다. 역할이 무거워질수록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교감이 생각하는 범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것이 교장의 범위다. 혹시나 학교 건물에 누전에 대한 화재가 일어나지 않을지, 퇴근 뒤에 교실에 창문이 열려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을지, 비가 오면 학교 구석구석 아이들이 뛰다가 넘어질 곳은 없는지 등 학교 안팎으로 교장이 신경 써야 할 범위는 사실상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에서 교감으로 역할이 바뀔 때도 그랬다. 승진했을 때의 기쁨은 잠깐이다. 지명을 받아 자격연수를 이수한 뒤 교감으로 출근하는 하는 순간부터 이 역할이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님을 바로 느낀다. 교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교장으로 지명을 받는 순간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 교장 자격연수를 받으면서 이것저것 많이 배우는 과정에서도 교장으로 나갈 생각에 약간은 분홍빛 꿈을 꾸지 않을까 싶다. 막상 교장으로 발령받고 나가는 순간부터 생각과 마음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예감이 된다. 


생각이 많아진다. 아직 교장으로 발령받기까지는 2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으면서도 벌써 걱정부터 든다. 잘할 수 있을까. 학교의 책임 맡은 자로써 정확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교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교육자로서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 문화도 바뀌고 있다. 기존의 생각으로 접근하다가는 큰코다친다. 넓은 마음으로 바다처럼 모든 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크기를 갖춰야 하는데 걱정이다. 든든하게 바람막이가 되어 안전한 교육 환경을 만들 자신감이 있을지 모르겠다. 


교감도 고독스러운 자리인데 교장은 더 말할 필요 없다. 혼자 견뎌내야 할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교장의 시간은 고요한 시간이 될 수 있겠지만 고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고독의 시간이면서 고난의 시간이기도 하다. 책임을 지는 시간이지 회피하는 시간이어서는 안 된다. 결정하는 시간이고 침묵의 시간이다. 남은 기간 동안 교장 수업을 잘 받아야겠다. 


교장 지명을 받고 잠시 흥분되었던 마음은 빨리 내려놓고 내 본업에 충실해야겠다. 나는 아직 교감이다. 학교 중간 관리자로써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중재하고 조정하는 사람이어야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평안한 사람이 되어야지 편안한 사람이 되어서는 교장 될 자격이 없다. 다른 사람을 관리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남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보기보다 내 눈 속에 티끌이 있나 먼저 살펴보라고 하지 않았나. 나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나 외에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해야 한다. 역할이 무거워질수록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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