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억을 더듬어 볼 것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어렸을 때 살았던 곳도 텅 빈 곳이 되어 버렸고 예전에 다녔던 학교도 자리는 그 자리인데 모습이 바뀌어 과거를 더듬어 보기가 쉽지 않다. 사진이라도 많이 간직했으면 모르겠으나 그것조차 전무할 때에는 기억 말고는 다시 불러올 것이 아무것도 없고 세월이 흐르니 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문학동네 장편소설인 어른을 위한 동화 『모랫말 아이들』과 같은 책은 참 소중한 책 중에 하나다. 한국 전쟁 이후 사람들의 생활상을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누더기 옷이라도 입으면 다행인 때에 많은 이들이 살기 위해 움막을 짓고 살았으며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온갖 일들을 했던 그 시절 살기가 빠듯했지만 사람 사는 정만큼은 가득했던 터라 오히려 그때가 그립고 부럽기까지 하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어 남부럽지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 지수가 극히 낮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모랫말 아이들이 살던 때와 지금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한 마음의 태도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부모 형제와 함께 찬 밥 한 공기라도 나누어 먹으면서 가족애를 누리던 모랫말 아이들의 마음가짐과 오늘날처럼 모두가 바쁘게 자기 일들을 하며 한 가정 안에 살면서도 서로 대화를 통하지 않는 가족과 비교할 때 행복이라는 감정을 누리는 만족감은 결코 문명의 높고 낮음으로 평가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부자병이 있다고 한다.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은 병들이 있고 그 병 때문에 약을 먹고 병원을 다니며 평생 고생을 하는 질병이다. 먹지 못해서 생기는 질병이 아니라 너무 한쪽으로 치우진 식생활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라고 한다. 걷지 않아서 생기는 몸의 이상 징후는 편리함이라는 문명이 가져다준 후천적 질병이다. 모랫말 아이들이 들으면 놀라 기겁할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없어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가지지 못해서 불쾌해한다. 불편하다고 하는데 사실 엄격히 말하면 배가 부른 소리다. 불편한 것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불편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불편하더라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다. 서로가 불편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들 그 불편함이 과연 사라질까? 불편할 것 같은 모랫말 아이들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부자병을 치유할 방법은 없다. 힘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참고 인내하라고 한 들 과연 들을 귀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