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라이프니츠의 보편 문자

라이프니츠 1부

by 장준호

제3장: 라이프니츠의 보편 문자


1666년 11월, 라이프치히 대학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는 도서관 구석 책상에 앉아 있었다. 스무 살. 방금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학위논문을 준비 중이었다. 그의 앞에는 열두 권의 책이 쌓여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라몬 루루스, 토마스 홉스,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하지만 그의 관심은 법학을 넘어서 있었다. 철학, 수학, 신학, 물리학.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것 사이의 연결에’


"왜 우리는 조각난 지식만 가질 수밖에 없는가?"

그는 혼잣말했다.


"왜 수학자는 철학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학자는 물리학자와 대화하지 못하는가?"


그의 눈앞에 놓인 라몬 루루스의 『Ars Magna』. 회전하는 원반들. 신학적 개념들의 조합.

라이프니츠는 종이를 꺼냈다. 제목을 적었다.


"De Arte Combinatoria - 조합술에 관하여"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모든 복합 개념은 단순 개념의 조합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단순 개념의 목록을 만들고, 각각에 기호를 부여한다면, 모든 가능한 지식은 이 기호들의 조합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날 밤, 라이프니츠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기호들이, 조합들이, 체계들이 소용돌이쳤다.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평생 과업이 될 꿈의 시작이었다.


Characteristica Universalis. 보편 문자.



1672년 3월, 파리로 가는 마차 안

6년이 흘렀다. 라이프니츠는 이제 스물여섯 살. 마인츠 선제후의 사절로 파리를 향하고 있었다. 공식 임무는 야심 찼다.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이집트 원정을 제안하는 것. 독일을 침공하려는 프랑스의 관심을 중동으로 돌리자는 외교적 계략.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파리.

유럽 지성의 중심. 데카르트가 살았던 도시. 파스칼이 죽은 지 10년밖에 안 된 도시. 마차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라이프니츠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세느 강. 노트르담 대성당. 수많은 책방들.


"여기서 나는 배울 것이다."

그는 다짐했다.


1672년 봄, 파리

라이프니츠의 외교 임무는 실패했다. 루이 14세는 젊은 독일 외교관의 이집트 원정 계획에 관심이 없었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의 패권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1673년 1월, 마인츠 선제후가 갑자기 죽었다. 라이프니츠는 외교적 고아가 되었다. 공식적인 직위도, 급료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기 남아야 한다."

그는 결심했다.


"여기서 배워야 한다. 여기 학자들이 있다. 여기 도서관이 있다."

그는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가끔 외교 자문을 하고, 법률 자문을 하고, 귀족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진짜 삶은 밤에 시작되었다. 도서관에서. 살롱에서. 책상 앞에서.


1672년 여름

라이프니츠는 파리 과학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가 있었다. 하위헌스. 당대 최고의 수학자. 진자시계를 발명하고, 토성의 고리를 발견한 사람.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수학 연구를 보여주었다. 자신감 넘치게.


하위헌스는 정중하게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흥미롭습니다, 라이프니츠 씨. 하지만... 당신은 아직 현대 수학을 모르는 것 같군요."

라이프니츠는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신이 보여준 것들은 이미 50년 전에 해결된 문제들입니다. 데카르트, 페르마, 파스칼... 그들의 작업을 읽어보셨습니까?"

라이프니츠는 고개를 숙였다. 읽지 않았다. 그는 독학으로 공부했고, 최신 연구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하위헌스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당신은 재능이 있습니다.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날부터 라이프니츠는 하위헌스의 제자가 되었다.


1672-1673년, 공부의 나날

라이프니츠는 미친 듯이 공부했다. 하위헌스가 준 책 목록: 데카르트의 기하학, 파스칼의 원뿔 곡선, 페르마의 정수론, 갈릴레오의 역학...

낮에는 가끔 외교 업무를 했다. 밤에는 수학을 공부했다.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무한급수. 미적분의 기초. 기하학. 대수학.

하위헌스는 놀랐다.

"당신은 6개월 만에 다른 사람들이 5년 걸릴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여전히 자신의 오래된 꿈을 잊지 않았다. 보편 문자.


어느 날 하위헌스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보편 언어를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개념을 기호로 표현하고, 모든 추론을 계산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하위헌스는 잠시 생각했다.

"야심찬 계획입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 조언하자면 먼저 구체적인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예를 들면?"

"파스칼의 계산기를 아십니까? 덧셈과 뺄셈만 합니다. 만약 당신이 곱셈과 나눗셈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든다면, 그것이 좋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라이프니츠의 눈이 빛났다.


1673년 봄, 계산기 설계

라이프니츠는 파스칼린을 연구했다. 파리에는 몇 대가 남아 있었다. 톱니바퀴들. 정교하지만, 덧셈과 뺄셈만 가능했다.


"곱셈은 덧셈의 반복이다."

라이프니츠는 생각했다.

"만약 반복을 자동화할 수 있다면..."


그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고안했다. 계단형 롤러. 길이가 다른 이빨들이 원통에 나선형으로 배열되어 있다. 몇 달간의 작업 끝에,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5 곱하기 7. 톱니바퀴들이 돌아가고, 계단 형 롤러가 회전했다. 35. 작동했다!


1673년 초봄, 런던

라이프니츠는 또다시 외교 임무를 띠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마인츠 선제후를 대신하여 영국 정부와 협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마음은 정치보다 학문에 쏠려 있었다.


런던.


왕립학회가 있는 도시. 뉴턴이 있는 도시. 라이프니츠는 이미 왕립학회 서기 헨리 올든버그와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올든버그는 라이프니츠를 왕립학회로 초청했다.

"당신의 계산기에 대해 들었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보고 싶어 합니다."


라이프니츠는 기뻤다. 그는 파리에서 만든 계산기 시제품을 가지고 왕립학회를 방문했다. 회의실에 학자들이 모였다. 라이프니츠는 계산기를 설명했다. 계단 형 롤러, 자동 곱셈. 기계는 불완전하게 작동했다. 때로는 정확한 결과를 냈고, 때로는 오류가 났다. 파리에서 런던까지의 여행과 습한 영국 날씨가 정밀한 부품들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학자들은 정중하게 지켜보았다.


한 노신사가 다가왔다. 로버트 훅. 왕립학회의 실험 큐레이터.

"흥미로운 시도입니다, 젊은이.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군요."

라이프니츠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맞습니다. 기술적으로 여전히 개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원리는 확실합니다."

"원리는 인정합니다."

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개선하십시오."


몇 주 후, 라이프니츠는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673년 4월 19일. 스물일곱 살의 독일 청년이 유럽 과학계의 명예로운 일원이 된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파리로 돌아왔다. 계산기를 계속 개선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문제에도 몰두하기 시작했다. 무한급수. 면적 계산. 접선 문제.

하위헌스가 준 문제들이었다.


"이 곡선 아래의 면적을 구하시오."

처음에는 막막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패턴을 보기 시작했다.

작은 직사각형들로 나누면... 그 직사각형들을 무한히 많이, 무한히 작게 만들면...

합. 무한한 합. 그리고 그 반대. 미분. 순간 변화율. 라이프니츠는 밤낮으로 계산했다.


어느 날 밤, 라이프니츠는 갑자기 깨달았다.

"적분과 미분은 역과정이다!"

면적을 구하는 것(적분)과 접선을 구하는 것(미분)은 서로 반대 연산이다. 그는 흥분하여 기호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미분: d (differentia)


적분: ∫ (summa의 긴 s)


이 기호들로 모든 계산을 표현할 수 있었다.

∫ f(x) dx

dx는 무한히 작은 변화량. ∫는 그것들의 합.


아름다웠다. 단순했다. 강력했다.


라이프니츠는 하위헌스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발견했습니다!"

하위헌스는 라이프니츠의 노트를 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라이프니츠. 당신은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이제 파리 학계의 일원이었다. 4년간의 공부가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다른 학자들과도 교류했다. 앙투안 아르노. 얀센주의 신학자이자 논리학자. 『포르-루아얄 논리학』의 저자.


어느 날 살롱에서 아르노가 물었다.

"라이프니츠 씨, 당신은 보편 언어를 만들고 싶다고 했죠. 하지만 언어는 단순히 기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미의 문제입니다."

"맞습니다."

라이프니츠가 대답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모든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그리고 각 의미에 고유한 기호를 부여한다면?"

"그럼 당신은 신의 언어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르노가 웃었다.

"인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니콜라 말브랑슈. 데카르트 철학자. 그와는 신체와 정신의 관계에 대해 논쟁했다.

"정신과 물질은 어떻게 상호작용합니까?"

라이프니츠가 물었다.

"상호작용하지 않습니다."

말브랑슈가 대답했다.

"신이 매 순간 조정합니다. 기회 원인론 입니다."

라이프니츠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다른 해답을 찾고 있었다. 예정 조화. 하지만 그것은 나중 이야기다.


1676년 10월, 하노버로

하노버 공작이 라이프니츠를 궁정 고문관 겸 사서로 초빙했다. 파리를 떠나야 했다.

라이프니츠는 하위헌스를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다.

"선생님, 4년간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위헌스는 라이프니츠의 손을 잡았다.

"아닙니다, 라이프니츠. 당신은 이미 뛰어난 학자입니다. 계속 연구하십시오. 당신의 미적분은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보편 문자는요?"

"글쎄요."

하위헌스는 미소 지었다.

"그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도하는 것 자체가 가치 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것입니다."

라이프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10월 말, 그는 파리를 떠났다. 하노버로 가는 길에 네덜란드를 거쳐갔다.

헤이그에서 그는 바뤼흐 스피노자를 만났다. 렌즈 깎는 철학자. 신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범신론자. 며칠간 그들은 형이상학에 대해 논쟁했다.


1679년 봄, 하노버

라이프니츠는 이제 하노버 공작의 궁정 고문관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도서관 사서이자 역사가였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백과사전적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계산과 기호에 매료되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숫자 표기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10진법을 사용한다.


0, 1, 2, 3, 4, 5, 6, 7, 8, 9.


열 개의 기호로 모든 수를 표현한다.

"왜 10인가?"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가락이 10개라서. 우연이다. 필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체계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실험하기 시작했다.

8진법을 시도했다.

0, 1, 2, 3, 4, 5, 6, 7만 사용.

10(10진법) = 12(8진법)

가능했다. 하지만 여전히 복잡했다.


5진법을 시도했다.

0, 1, 2, 3, 4만 사용.

10(10진법) = 20(5진법)

더 단순해졌다.


3진법을 시도했다.

0, 1, 2만 사용.

10(10진법) = 101(3진법)

흥미로웠다. 세 개의 기호만으로도 모든 수를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적게?"


2진법.

오직 0과 1만.

라이프니츠는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0 = 0

1 = 1

2 = 10

3 = 11

4 = 100

5 = 101

6 = 110

7 = 111

8 = 1000

9 = 1001

10 = 1010

작동했다!


오직 두 개의 기호만으로 모든 수를 표현할 수 있었다.

라이프니츠는 전율했다.

"가장 단순한 체계..."

그는 종이를 응시했다.

0과 1. 없음과 있음. 무와 존재.


갑자기 철학적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1은 신이다. 완전한 존재. 0은 무다. 허무.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그는 계속 적었다.

"모든 피조물은 1과 0의 조합이다. 존재와 무의 조합이다!"

그는 더 나아가 생각했다.

"만약 모든 수를 0과 1로 표현할 수 있다면, 모든 개념도 0과 1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과 거짓. 예와 아니오. 모든 논리를 0과 1로."

이것이었다. 보편 문자의 기초. 가장 단순한 체계.


라이프니츠는 몇 달간 이진법을 연구했다. 산술 연산들을 이진법으로 해보았다.

덧셈:

101 (5)

+ 011 (3)

-----

1000 (8)


곱셈:

101 (5)

× 011 (3)

--------

101

101

--------

1111 (15)


모든 것이 작동했다! 그는 노트에 썼다:

"이진 산술은 수학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완벽한 체계다. 단 두 개의 기호로 모든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은 수학적 발견일 뿐 아니라 철학적 발견이다. 복잡성은 단순함에서 나온다. 우주의 모든 다양성은 단 두 가지 원리 - 존재와 무 - 의 조합에서 나온다."


"Omnia ex nihilo ducenda sufficit unum (모든 것을 무에서 이끌어내기에 하나면 충분하다)."


1697년, 베를린으로 가는 마차 안

라이프니츠는 마차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51세였다. 백발이 늘었고, 허리도 아팠다. 그의 가방 안에는 수십 권의 노트가 있었다. 보편 문자에 대한 스케치들. 이진법에 대한 연구들. 미적분 논문들. 계산 기계의 설계도들. 파리에서 배운 것들, 하노버에서 발견한 것들. 하지만 완성된 것은 없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보편 문자. 처음에는 간단해 보였다. 개념들을 찾고, 기호를 부여하고, 조합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어떤 개념이 진정으로 '단순'한가?


'선함'은 단순한가, 복합인가?


'존재'는?


'의식'은?


그리고 설령 단순 개념을 찾는다 해도, 어떻게 기호를 부여할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조합의 규칙이었다. 수학에서는 명확하다. 2+3=5.


하지만 개념에서는?


'정의+자유=?'

이것이 의미가 있는가?


"어쩌면 나는 너무 앞서갔다."

라이프니츠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노트를 펼쳤다. 새로운 페이지에 적었다.


"Calculemus. 계산해봅시다."


"언젠가, 철학자들이 의견이 다를 때, 칼을 빼는 대신 펜을 들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말씀 말고, 계산해봅시다.' 그리고 앉아서 기계적으로 계산할 것이다. 누가 옳은지." 마차는 계속 달렸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계속 써내려갔다.



역사적 주석

파리 외교 사절 (1672-1676): 라이프니츠는 1672년 3월 마인츠 선제후 요한 필립 폰 쇤본(Johann Philipp vonSchönborn)의 사절로 파리에 파견되었습니다. 공식 임무는 루이 14세에게 이집트 원정을 제안하는 것이었으나 실패했습니다. 1673년 선제후 사망 후에도 라이프니츠는 파리에 남아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1629-1695): 네덜란드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1666년부터 파리 과학 아카데미의 핵심멤버였습니다. 라이프니츠와 하위헌스의 만남과 멘토-제자 관계는 잘 기록되어 있으며, 두 사람의 서신이 현존합니다.

계단형 롤러 계산기 (1673): Stepped Reckoner. 실제로 제작되었고, 1673년 런던 왕립학회에서 시연되었습니다. 완전히 작동하지는 않았지만, 원리는 인정받았습니다. 현재 하노버 라이프니츠 박물관에 복원품이 있습니다.

런던 방문 (1673): 라이프니츠는 1673년 초 런던을 방문하여 왕립학회에 선출되었습니다. 이때 로버트 훅(Robert Hooke), 헨리 올든버그(Henry Oldenburg) 등을 만났습니다.

미적분 발견 (1675-1676): 라이프니츠는 파리에서 미적분학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1675년 10월 29일 노트에 ∫ 기호가 처음 등장합니다. d, dy, dx 등의 표기법도 라이프니츠가 고안했으며, 현재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앙투안 아르노 (1612-1694): 얀센주의 신학자이자 논리학자. 『포르-루아얄 논리학』의 공저자. 라이프니츠와 실제로 교류했으며, 후에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대해 비판적 서신을 주고 받았습니다.

니콜라 말브랑슈 (1638-1715): 프랑스의 데카르트 철학자. 기회 원인론 (occasionalism)을 주장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파리에서 그를 만났고, 나중에 예정 조화론(pre-established harmony)으로 대응했습니다.

스피노자 방문 (1676년 11월): 라이프니츠는 하노버로 가는 길에 헤이그에 들러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를 만났습니다. 며칠간 머물며 형이상학을 논의했습니다. 이는 스피노자가 죽기 몇 달 전이었습니다.

이진법 발견 (1679): 라이프니츠는 1679년경 이진법을 개발했습니다. 그의 노트에는 여러 진법 체계를 실험한 흔적이 있습니다. "De Progressione Dyadica"(이진 진법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1679년에 작성했으나, 1703년에야 파리 과학 아카데미에 발표했습니다.

이진법의 신학적 해석: 라이프니츠는 이진법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1697년 뤼케부르크 공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진법을 창조의 상징으로 설명했습니다: "1은 신(존재), 0은 무(虛無), 모든 수는 이 둘의 조합."

"Calculemus": "계산해봅시다"라는 모토는 여러 편지와 노트에 등장합니다. 특히 1666년경 노트에 "논쟁이 생길 때, 계산하면 된다"는 취지의 글이 있습니다.

파리 시기의 중요성: 역사학자들은 파리 4년(1672-1676)을 라이프니츠의 "기적의 해 (anni mirabiles)"로 평가합니다. 이 시기에 그는 현대 수학자·철학자로 변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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