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파스칼의 파스칼린
1642년 가을, 프랑스 루앙
블레즈 파스칼은 작업실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열아홉 살.
그의 앞에는 다섯 번째 시제품이 놓여 있었다. 나무 상자 안에 열 개의 톱니바퀴가 정밀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손가락 끝이 아팠다. 지난 이틀간 같은 톱니바퀴를 열두 번 조립하고 분해했다. 문제는 자리 올림이었다. 9에서 1을 더하면 10이되어야 한다. 첫 번째 바퀴가 한 바퀴 돌 때, 두 번째 바퀴가 한 칸 움직여야 한다.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톱니바퀴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물리 법칙을 따를 뿐이다.
"다시. 5+8은 13을 해보자…"
파스칼은 중얼거리며 작은 다이얼을 돌렸다. 첫번째 숫자는 5. 딸깍 딸깍하며 일의 자리의 다이얼이 돌아갔다. 두번째 숫자는 8. 다이얼을 돌렸다. 5에서 6, 7, 8, 9로 숫자가 올라가고 9를 지나 0으로 넘어가는 순간, “철컥”하며 더 큰소리와 함께 자리올림이 발생했다. 첫번째 톱니바퀴가 한바퀴를 완전히 돌며 옆의 십의 자리 톱니바퀴를 1칸 밀어냈다. 일의 자리엔 3. 십의 자리엔 1이 표시되었다.
“성공”
파스칼은 숨을 죽였다. 그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흥분 때문인지, 불안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창 밖으로는 루앙 시가지가 보였다. 아버지 에티엔 파스칼(Étienne Pascal)이 세무 감독관으로 일하는 이 지방 도시. 그가 이 기계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 아버지는 매일 밤 세금 계산서와 씨름했다. 수천 개의 숫자를 더하고 빼고, 검산하고, 다시 계산했다. 촛불 아래 구부정한 등. 손가락으로 주판알을 튕기는 소리. 때로는 실수로 다시 처음부터.
"이 반복 작업을 기계가 할 수는 없을까?"
2년 전, 열일곱이던 파스칼이 품었던 질문. 그리고 지금, 그 답이 그의 손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답을 찾았는데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파스칼은 기계를 응시했다. 톱니바퀴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어루만졌다.
"너는... 계산하는가?"
말하면서도 묘했다. '계산하다'는 동사를 기계에게 쓰다니. 계산은 정신의 행위 아닌가?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론 내리는. 하지만 여기, 그의 눈앞에서 금속 조각들이 돌아가며 5과 8을 13으로 만들어냈다. 이해 없이, 판단 없이, 단지 물리적 필연으로.
"블레즈!"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왔다. 에티엔 파스칼은 아들의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못마땅했지만, 아들의 천재성 만큼은 인정했다. 열두 살에 이미 독학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을 재발견한 아들. 열여섯 살에 원뿔 곡선 논문(Essay pour les coniques)을 쓴 아들.
"아버지, 보세요."
파스칼의 목소리는 떨렸다. 흥분과 불안이 뒤섞여.
"완성했습니다."
에티엔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기계를 들여다보았다. 정교한 톱니바퀴들, 숫자가 새겨진 다이얼들.
"이것으로... 계산을?"
"덧셈과 뺄셈을요."
파스칼은 시연했다. 125를 입력하고, 238을 더했다. 톱니바퀴들이 차례로 돌아갔다. 5와 8이 만나 3이 되고, 1이 다음 자리로 넘어갔다. 자동으로, 생각 없이, 필연적으로.
그리고 최종 숫자가 나타났다. 363.
에티엔의 눈이 커졌다.
"놀랍구나. 하지만 정말 정확한가?"
"검산해보세요."
파스칼은 종이를 내밀었다. 에티엔은 손으로 계산했다. 125 더하기 238. 363. 맞았다.
"믿을 수가 없구나."
에티엔은 감탄했다.
"이것이 있다면 세무 업무가 얼마나 빨라질지..."
하지만 파스칼은 웃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에티엔이 이상함을 눈치챘다.
"블레즈, 무엇이 문제냐? 성공했지 않느냐?"
"아버지."
파스칼은 톱니바퀴를 가리켰다.
"우리가 125에 238을 더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계산을 하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는 5와 8을 보고 13이라는 것을 압니다. 왜 압니까?"
에티엔은 당황했다.
"그야... 어렸을 때 배웠으니까. 5와 8의 합은 13이다. 그것이 산술의 법칙이다."
"법칙."
파스칼은 기계를 쓰다듬었다.
"이 기계도 법칙을 따릅니다. 하지만 아버지..."
그는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 톱니바퀴는 13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숫자가 무엇인지도. 그냥 돌아갈 뿐입니다. 기계적으로. 의미 없이."
"하지만 결과는 같지 않느냐."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아버지!"
파스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과가 같다면, 우리가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과 기계가 '작동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5+8=13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정말입니까? 아니면 아버지 머릿속에도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일까요?"
에티엔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블레즈, 너는 너무 깊이 생각한다."
"생각..."
파스칼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생각이란 무엇입니까, 아버지? 톱니바퀴의 회전과 다른 무엇입니까?"
침묵이 흘렀다. 에티엔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것은 단순히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블레즈."
그가 마침내 말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날 밤, 파스칼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파스칼은 펜을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쓰기 시작했다.
"기계는 규칙을 따른다. 나도 규칙을 따른다. 차이는 무엇인가? 기계는 결과를 만든다. 나도 결과를 만든다. 차이는 무엇인가? 기계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는 펜을 멈췄다. 촛불이 흔들렸다.
"만약 신이 나를 만들었다면."
그가 중얼거렸다.
"신도 같은 생각을 할까? '너는 이해하지 않는다. 너는 그저 움직일 뿐이다. 나는 안다. 나는 너를 만들었으니까.'"
파스칼은 몸서리쳤다.
아니다. 아니야. 나는 기계가 아니다.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선택하고, 의심한다.
하지만, 정말일까?
그날 밤부터 파스칼은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1645년, 파리
파스칼의 계산기는 명성을 얻었다. '파스칼린(Pascaline)'이라 불린 이 기계는 귀족과 학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파스칼은 여러 개의 개량된 버전을 만들었다. 곱셈은 아직 불가능했지만, 덧셈과 뺄셈은 완벽했다. 파스칼은 재상 피에르 세귀에(Pierre Séguier)에게 헌정문과 함께 파스칼린을 바쳤다. 왕실의 후원과 파스칼린 제작에 대한 독점 특허를 얻기 위해서였다. 세귀에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저택에서 시연회를 주선했다.
1645년 늦여름, 세귀에 저택의 대연회장. 귀족들과 학자들이 모였다. 파스칼은 스물두 살. 여전히 젊었지만, 이미 수학계의 명성을 얻은 후였다.
파스칼은 기계를 설명하고, 계산을 시연했다.
"놀랍습니다, 파스칼 씨!"
한 귀족이 박수를 쳤다.
"이 기계가 있다면 회계사들이 필요 없겠군요!"
사람들이 웃었다.
"이것으로 사업을 하려는가, 파스칼?"
세귀에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각하."
파스칼이 고개를 숙였다.
"50대를 제작할 계획입니다. 왕실의 특권 허가를 받을 수 있다면..."
"허가해주겠네."
세귀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왕국의 영광이 될 것이네. 프랑스의 천재가 만든 기계적 정신!"
파스칼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불편했다. '기계적 정신'이라는 말이. 뒤편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회계사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삼십대 중반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기계론 철학자로 알려진 자크 드 빌리에.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계산이 기계화되었소. 곧 모든 사고도 기계화될 것이오!"
살롱이 술렁였다. 파스칼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과장이십니다."
"과장?"
빌리에가 웃었다.
"파스칼 씨, 그대가 기하학을 증명할 때 한 일이 무엇이오? 공리에서 정리로, 규칙의 조합. 마치 톱니바퀴처럼! 생각도 기계적 과정일 뿐이오."
"아닙니다. 증명에는 통찰이 필요합니다. 직관이."
"그것도 복잡한 기계적 과정일 뿐이오. 아직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한 젊은 수사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도덕적 판단은 어떻습니까? 사랑은요?"
빌리에가 대답하기 전에 파스칼이 조용히 말했다.
"기계가...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살롱이 조용해졌다.
빌리에가 부드럽게 말했다.
"파스칼 씨, 그대는 훌륭한 기계를 만들었소. 하지만 그 기계가 그대를 두렵게 하는군요."
파스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또 악몽을 꾸었다. 그는 거대한 작업대 위에 누워 있었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천장에서 얼굴이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시계공. 시계공이 그의 두개골을 열었다. 뚜껑처럼. 안을 들여다보았다.
"음, 이 톱니바퀴가 잘못 맞물렸군."
드라이버로 조정했다. 찰칵. 갑자기 파스칼은 2+2=5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되었다. 어쩔 수 없이.
"안 돼! 나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어!"
그가 소리쳤다. 시계공이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가 톱니바퀴를 조정했단다."
"아니야! 나는 의심할 수 있어! 의심은 자유의 증거야!"
"의심도 톱니바퀴란다."
시계공이 다른 톱니를 돌렸다.
"이것 봐라. 이제 너는 의심하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의심이 사라졌다. 2+2=5. 당연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보았느냐?"
시계공이 말했다.
"너의 의심도, 너의 확신도, 너의 자유도 모두 내 손안에 있단다."
파스칼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1646년 겨울
파스칼의 아버지가 루앙에서 낙마 사고를 당했다. 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이었다.
두 명의 의사가 치료를 맡았다. 의사 데샹(Deschamps des Landes)과 의사 드 라 부틸리에리(de la Bouteillerie). 그들은 엄격한 신앙을 가진 얀센주의자들 이었다. 몇 달간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의사들은 매일 와서 치료하면서 신앙에 대해 이야기했다. 파스칼은 그들의 말을 들었다. 신의 은총. 인간의 나약함. 구원. 처음으로, 오랜만에, 그는 평안을 느꼈다.
"만약 우리가 기계라면."
그는 생각했다.
"우리가 신이 만든 기계라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신의 손에 있다면."
그것은 첫 번째 회심이었다. 파스칼 가족 전체가 얀센주의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1647년
왕실의 특권을 받았지만, 사업은 쉽지 않았다. 파스칼은 장인들을 고용했다. 하지만 톱니바퀴의 정밀도를 맞추는 것이 어려웠다. 각 기계마다 수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문제였다. 하나를 만드는 데 숙련된 장인의 6개월 치 임금이 들었다. 귀족들은 관심을 보였지만, 막상 가격을 들으면 주문을 취소했다.
2년간 파스칼은 약 20대를 제작했다. 50대 목표에 한참 못 미쳤다. 상업적으로는 완전한 실패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증명되었다. 계산은 기계화될 수 있다.
그 증명만으로 파스칼은 만족해야 했다. 아니,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증명이 새로운 질문을 낳았기 때문이다.
165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파스칼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동시에 이상한 자유를 느꼈다. 그는 파리의 사교계에 뛰어들었다. 귀족들과 어울렸다. 세속적인 삶. 이 시기에 파스칼은 확률론을 연구했다. 도박꾼 슈발리에 드 메레(Chevalier de Méré)가 제기한 주사위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었다. 페르마와 서신을 교환하며 확률 이론의 기초를 놓았다. 모든 것이 계산되었다. 우연도 법칙을 따랐다. 하지만 공허했다. 귀족들의 대화는 천박했고 사교계의 즐거움은 의미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12년 전 만든 그 기계가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1654년 11월
파스칼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두통이 심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그는 오래된 작업실을 찾았다. 파스칼린이 먼지를 뒤집어쓴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먼지를 털어내고 다이얼을 돌렸다. 여전히 작동했다.
"벌써 12년이 지났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모른다. 너는 생각하는가? 나는 생각하는가? 차이는 무엇인가?"
기계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히.
파스칼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파리의 밤. 수많은 촛불이 깜빡였다.
"만약 내가 기계라면."
그가 생각했다.
"만약 내 모든 생각, 모든 선택, 모든 사랑이 톱니바퀴의 운동이라면, 살 이유가 있는가?"
그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1654년 11월 23일
그날은 평범한 날이었다. 파스칼은 집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 10시 30분.
파스칼은 갑자기 깨어났다. 이유를 몰랐다. 방이 이상했다. 너무 조용했다. 너무 밝았다. 아니, 밝은 게 아니었다. 뭔가가 타고 있었다. 불!.
하지만 공포스러운 불이 아니었다. 따뜻한 불. 살아있는 불.
파스칼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이상하게 평안했다. 그리고 알았다.
확실하게.
의심 없이.
증명 없이.
계산 없이.
신이 있다.
여기 있다.
지금.
그것은 철학자들의 신이 아니었다. 데카르트의 '제1원인'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도 아니었다. 살아있는 신. 아브라함의 신. 불타는 떨기나무의 신.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몰랐다. 시간이 의미 없었다. 어느 순간 끝났다.
파스칼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책상으로 기어갔다. 양피지를 꺼냈다. 펜을 들어 썼다.
"불(FEU)
"확신, 확신, 감격,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 하느님 이외에 이 세상과 온갖 것에 대한 일체의 망각."
1654년 11월 23일 밤 10시 30분경부터 12시 30분경까지"
그는 펜을 놓았다. 양피지를 바라보았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톱니바퀴로? 계산으로? 법칙으로?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이 답이었다.
다음날 아침, 파스칼은 작업실로 내려갔다. 파스칼린이 그대로 있었다.
그는 다이얼을 돌렸다.
"너는 옳다."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기계는 계산한다. 정확하게. 신뢰할 수 있게.
하지만 어젯밤 그가 체험한 것 - 그 불타는 확신, 그 절대적 현존 - 그것은 계산할 수 없었다.
증명할 수도 없었다.
설명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가장 확실했다.
파스칼은 서랍에서 종이를 꺼냈다.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중에 『팡세』가 될 노트들이었다.
"마음에는 이성이 모르는 이성이 있다."
"이성으로는 증명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확실히 아는 것들이 있다."
그는 기계를 다시 바라보았다.
"너와 나의 차이를 이제 안다. 너는 규칙을 따른다. 완벽하게. 하지만 너는 규칙 너머를 볼 수 없다. 너는 계산한다. 하지만 사랑하지 못한다. 신을 찾지 못한다."
"그것이 차이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페이지에 이렇게도 썼다:
"혹시 내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어젯밤의 체험도 뇌의 톱니바퀴가 만든 환영은 아닐까? 신이 아니라 병든 신경의 작동은 아닐까?"
그는 펜을 놓았다 다시 들었다.
"아니다."
단호하게 썼다.
"설령 그것이 뇌의 작동이라 해도, 그 작동을 통해 신이 말씀하셨다. 설령 내가 기계라 해도, 나는 신이 만든 기계다. 그리고 신은 기계 이상을 만들 수 있다."
그는 어젯밤의 양피지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리고 옷 안감에 꿰매기 시작했다.
평생 지니고 다닐 것이다. 증명이 아니라 기억으로. 계산이 아니라 확신으로.
1655년, 파리
파스칼은 변했다.
사교계를 떠났다. 포르-루아얄(Port-Royal) 수도원의 얀센주의자(Jansenism)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전히 과학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생각했다. 여전히 썼다. 그의 노트 중 한 페이지에는 이런 논증이 있었다:
"신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그대가 믿으면 영원한 행복을 얻는다.
믿지 않으면 영원한 불행을 받는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믿든 안 믿든 별 차이 없다. 죽으면 끝이니까."
"그렇다면 믿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무한한 행복을 얻을 가능성 대 유한한 즐거움을 잃을 가능성."
후대에 "파스칼의 내기"라 불리게 될 이 논증. 하지만 그는 같은 페이지 여백에 이렇게도 썼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다. 신앙으로 가는 계단일 뿐이다.
진정한 신앙은 계산할 수 없다."
1658년
파스칼은 기독교 변증을 위한 노트들을 쓰기 시작했다. 산발적인 단편들. 체계적이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그가 쓰려는 것은 체계가 아니었다. 작은 종이 조각들에 적었다. 어떤 것은 한 줄, 어떤 것은 여러 페이지.
어느 조각: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중에서 가장 약한 것이다. 그를 죽이는 데 우주 전체가 필요 없다. 증기 한 방울, 물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짓누른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귀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또 다른 조각:
"우리는 생각을 통해서만 존엄하다.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공간과 시간으로부터가 아니라. 나는 공간을 채울 수 없다. 생각을 통해 나는 우주를 이해한다."
그리고 공개하지 않은 노트의 여백:
"기계는 계산한다. 나도 계산한다. 기계는 규칙을 따른다. 나도 규칙을 따른다. 하지만 나는 규칙을 의심할 수 있다. 나는 내가 기계인지 물을 수 있다. 그 질문 자체가 답이 아닐까?"
또 다른 여백:
"만약 생각이 톱니바퀴의 운동이라면, 그 톱니바퀴는 어찌나 정교한가. 신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기계론은 신앙을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1659년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 파스칼은 거의 매일 두통에 시달렸다. 소화도 안 되었다.
의사들이 왔다 갔다 했다. 아무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밤, 극심한 통증 속에서 파스칼은 또 작업실을 찾았다. 파스칼린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는 기계를 쓰다듬었다.
"너는 아프지 않지."
그가 중얼거렸다.
"두통도, 의심도, 절망도 없지. 그것이 축복일까, 저주일까?"
기계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너를 만들었다. 하지만 너는 고통 받지 않는다. 나는 고통 받는다. 그렇다면 누가 더 완벽한가?"
그는 웃었다. 쓴웃음.
"하지만 나는 이 고통을 통해서도 신을 찾는다. 너는 평안하지만 신을 찾지 못한다. 그렇다면 누가 더 축복 받았는가?"
1662년 8월 19일
파스칼은 죽어가고 있었다. 39세.
마지막 며칠, 그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극심한 통증.
하지만 마지막 날, 잠시 정신이 들었다.
옆에는 여동생 질베르트가 있었다.
"블레즈."
그녀가 손을 잡았다.
"고통스럽니?"
파스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의미 있는 고통이야."
"무슨 뜻이니?"
"기계는... 고통받지 않아. 하지만... 사랑하지도 못해."
그의 목소리가 희미했다.
"나는... 고통 받아. 그러니... 기계가 아냐. 나는... 사랑해. 그러므로... 살아있어."
질베르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블레즈, 쉬어. 말하지 마."
"아니야... 말해야 해..."
파스칼은 숨을 헐떡였다.
"내가 만든... 기계... 파스칼린..."
"응, 알아."
"그것은... 시작이야. 언젠가... 더 놀라운 기계들이... 만들어질 거야."
그는 잠시 멈췄다. 호흡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해도... 기계는... 기계야. 계산은... 사랑이 아냐. 규칙은... 은총이 아냐."
"쉬어, 제발."
"들어줘... 질베르트..."
파스칼은 여동생의 손을 꽉 쥐었다.
"옷... 안감에... 양피지가 있어. 1654년 11월 23일... 그날 밤..."
"알아. 본 적 있어."
"그것을... 간직해줘. 증거야. 생각이... 계산 이상이라는. 인간이... 기계 이상이라는..."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혹시... 내가 틀렸을지도..."
"블레즈?"
"혹시... 정말로... 모든 것이... 톱니바퀴일지도... 그래도 괜찮아... 신이... 만든 톱니바퀴라면..."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후
파스칼이 죽은 후, 하인이 옷을 정리하다가 안감에 꿰맨 양피지를 발견했다.
질베르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보관했다. 그녀는 오빠가 남긴 수많은 메모 조각들도 모았다. 천 개가 넘는 단편들. 어떤 것은 완성된 문장, 어떤 것은 몇 단어만.
1670년, 포르-루아얄의 얀센주의자들이 이 단편들을 편집해 출판했다. 『기독교 변증을 위한 생각들(Pensées sur la religion)』.나중에 『팡세』로 알려지게 될 책.
파스칼린은 몇 개가 보존되었고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사람들은 감탄했다.
"17세기에 이런 기계를!"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너무 비쌌다. 너무 복잡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해오던 방식대로 계산하기를 선호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증명되었다. 계산은 기계화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증명은 새로운 질문을 낳았다. 만약 계산이 기계화될 수 있다면, 다른 정신 활동도 기계화될 수 있지 않을까?
1673년, 독일
한 젊은 천재가 파스칼린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의 이름은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스물일곱 살. 수학자, 철학자, 외교관, 그리고 꿈꾸는 자.
그는 파스칼의 계산기를 연구했다. 감탄했다. 하지만 한계도 보았다.
"파스칼은 덧셈과 뺄셈만 기계화했다. 나는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는 작업실에 들어갔다. 설계를 시작했다. 곱셈과 나눗셈까지 할 수 있는 기계.
하지만 그것도 시작일 뿐이었다. 라이프니츠의 꿈은 훨씬 더 야심 찼다.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하는 기계."
그는 노트에 썼다.
"모든 지식을 기호로 환원하는 보편 언어. 모든 추론을 계산으로 바꾸는 보편 체계."
"그렇게 되면 철학자들이 논쟁할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 논쟁 대신 누가 맞는지 계산해봅시다(Calculemus)!'"
그것은 파스칼이 두려워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모든 사고의 기계화.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했다.
"파스칼은 기계를 만들고 신에게 도망쳤다."
라이프니츠가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기계를 만들면서 신을 찾겠다. 기계의 완벽함 속에서 신의 이성을 발견하겠다."
그는 작업대 앞에 앉았다. 톱니바퀴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톱니바퀴보다 더 큰 것이 있었다. 논리 기계. 사고 기계. 보편 언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각하는 기계."
[제2장 끝]
에필로그 단상
파스칼은 기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계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했다.
"너는 생각하는가?" "아니면 너도 기계인가?"
그는 평생 이 질문과 씨름했다.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질문 자체가 답이 아니었을까?
기계는 자신이 기계인지 묻지 않는다. 오직 생각하는 존재만이 자신의 생각을 의심한다.
파스칼은 죽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300년 후, 실리콘과 전기로 만든 새로운 기계들이 같은 질문을 다시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생각하는가?"
역사적 주석
파스칼린: 실제로 파스칼은 1642년부터 계산기를 개발했고, 여러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1645년 재상 피에르 세귀에에게 헌정했고, 왕실의 특권 허가(Privilege)를 받았습니다. 약 50대를 제작하려 했으나 제작 난이도와 높은 가격으로 약 20대만 완성했고, 그마저도 절반 정도만 판매되었습니다. 현재는 8개 정도만 남아있습니다.
1646년 첫 번째 회심: 아버지 에티엔 파스칼의 낙마 사고(1646년 1월, 루앙)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치료를 맡은 의사 데샹(Deschamps)과 드 라 부틸리에리(de la Bouteillerie)가 얀센주의자였고, 이것이 파스칼 가족의 종교적 회심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654년 11월 23일의 회심: 역사적 사실입니다. "Memorial"이라 불리는 양피지가 파스칼 사후 발견되었고,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포르-루아얄과의 교류: 1654년 회심 이후 파스칼은 포르-루아얄 수도원의 얀센주의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얀센주의 변호를 위한 『프로방시알 서간』(1656-1657)을 집필했습니다.
『팡세』: 파스칼은 1658년경부터 기독교 변증론을 위한 단편적 노트들(약 1000개)을 작성했으나 미완성으로 남겼습니다. 1670년 사후, 여동생 질베르트와 포르-루아얄의 얀센주의자들이 이를 편집해 『기독교 변증을 위한 생각들(Pensées sur la religion)』로 출판했습니다. 이 소설의 인용문들은 실제 『팡세』에서 가져왔습니다.
확률론: 1654년 도박꾼 슈발리에 드 메레(Chevalier de Méré)가 제기한 문제를 계기로, 파스칼은 페르마와 서신을 교환하며 확률론의 기초를 확립했습니다. 파스칼이 직접 도박장을 드나들었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1651-1654년의 "세속적 시기"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파스칼의 내기: 『팡세』의 유명한 논증 중 하나입니다(단편 233, Lafuma 판). 실제로는 대화체가 아니라 변증론적 논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그의 사고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 위해 재구성했습니다.
임종 장면: 여동생 질베르트 페리에(Gilberte Périer, 1620-1687)가 오빠의 임종을 지켰고, 후에 『파스칼의 생애』(1684)를 집필했습니다. 파스칼의 마지막 날들과 말들에 대한 기록이 이 전기에 남아있습니다. 이 소설의 임종 대화는 질베르트의 기록과 파스칼의 사상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파스칼린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창작입니다.
자크 드 빌리에: 세귀에 저택 시연회 장면의 기계론 철학자는 허구의 인물입니다. 하지만 17세기 프랑스에는 데카르트를 비롯한 많은 기계론 철학자들이 있었고, 파스칼이 이들과 철학적 긴장 관계에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