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배비지와 러브레이스

최초의 프로그래머

by 장준호

제5장: 배비지와 러브레이스 - 최초의 프로그래머


1821년, 런던 케임브리지 천문학회

찰스 배비지는 천문학 계산표를 검토하고 있었다. 서른 살.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 왕립학회 회원이었다. 그의 친구 존 허셜이 옆에 앉아 같은 표를 보고 있었다.


"또 틀렸다."

배비지가 한숨을 쉬었다.


"이 로그표, 17페이지 5번째 줄. 틀렸어."

"확인해 보자"


허셜이 다시 계산했다. 손으로, 천천히.

"맞아. 오류야."


배비지는 표를 내려놓았다.

"이게 몇 번째야? 이번 달만 해도 열다섯 개의 오류를 찾았어."


천문학 계산표는 항해에 필수적이었다. 선장들은 이 표로 자신의 위치를 계산했다.

하지만 표는 손으로 계산되었다. 사람이 계산하고, 사람이 베껴 쓰고, 사람이 출판했다.


사람은 실수한다. 잘못된 표로 배가 길을 잃었고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존, 생각해 봐."

베비지가 말했다.


"만약 기계가 이것을 계산하다면 오류가 없을 거야."

"기계? 계산표를?"

"왜 안 돼? 파스칼의 계산기를 알잖아. 라이프니츠의 계단 형 롤러도. 만약 그것을 확장한다면..."


허셜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 계산이잖아. 덧셈, 뺄셈, 곱셈. 로그표는 훨씬 복잡해."


"차분법(method of differences)을 쓰면 돼."

배비지의 눈이 빛났다.

"모든 다항식은 차분으로 환원돼. 그리고 차분은 반복적인 덧셈이야. 기계가 할 수 있어."


그날 밤, 배비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배비지는 왕립학회에 편지를 썼다.


"On the Theoretical Principles of the Machinery for Calculating and Printing Mathematical Tables"(수학표를 계산하고 인쇄하는 기계의 이론적 원리에 대하여)


차분기관(Difference Engine). 로그표, 삼각함수표, 항해표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인쇄하는 기계. 왕립학회는 흥분했다. 영국 해군은 더욱 흥분했다.


1823년, 영국 정부는 배비지에게 £1,700을 지원했다. 당시로서는 거금.

"2년 안에 완성하십시오."

재무장관이 말했다.

배비지는 자신했다.

"충분합니다."


배비지는 최고의 기계공 조셉 클레멘트(Joseph Clement)를 고용했다. 설계도를 그렸다. 25,000개의 부품. 청동과 강철로 만들어진 정밀한 톱니바퀴들. 하지만 문제가 계속 생겼다.


첫째, 정밀도.

차분기관은 파스칼이나 라이프니츠의 계산기보다 훨씬 정밀해야 했다. 오차가 축적되면 안 되었다. 당시 기계공학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둘째, 비용.

£1,700은 금방 바닥났다. 정부는 추가로 £9,000을 지원했다. 그것도 부족했다. 또 £8,000.

총 £17,000. 두 척의 군함을 살 수 있는 돈.


셋째, 클레멘트와의 갈등.

클레멘트는 자신의 공구를 개발해야 했다. 그만큼 정밀한 공구가 없었으니까.

그는 공구 개발 비용도 청구했다. 배비지는 분노했다. 1833년, 클레멘트는 작업을

중단했다. 임금 분쟁 때문이었다. 차분기관은 1/7만 완성된 채 멈췄다.


배비지는 좌절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는 런던 사교계의 유명인이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 그의 집에서 살롱이 열렸다. 과학자, 예술가, 귀족, 정치인들이 모였다. 그들은 차분기관의 일부 모형을 보고, 와인을 마시고, 시대의 문제들을 논했다.


그날 저녁, 특별한 손님이 있었다.


에이다 바이런(Augusta Ada Byron).


열일곱 살. 시인 바이런 경의 딸.

그녀는 방 한구석에서 차분기관의 모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은 잠깐 보고 감탄한 후 샴페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에이다는 달랐다.


"이 톱니바퀴가 여기서 회전하면..."

그녀는 중얼거리며 기계의 메커니즘을 추적했다.


"다음 자리의 숫자로 차분이 전달되는군요."


배비지가 다가갔다.

"정확합니다, 바이런 양."

에이다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빛났다

.

"마치 수학 자체가 기계가 된 것 같습니다."

배비지는 미소 지었다. 드디어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시작이라니요?"

"이것은 단지 차분을 계산합니다. 하지만 저는 더 큰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배비지는 에이다를 서재로 안내했다. 거대한 도면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었다.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


배비지가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계산기가 아닙니다. 범용 기계입니다."

에이다는 숨을 죽이고 도면을 들여다보았다.

"천공카드로 명령을 입력합니다. 천공카드를 사용해서 다양한 패턴을 짜주는 새로운 발명품인 자카드(Jacquard) 직조기처럼. 그리고 기계는 그 명령을 실행합니다. 어떤 수학 연산이든."


"믿을 수가 없어요. 이것이 가능하다면..."

"가능합니다."

배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공학적 도전이긴 하지만, 원리는 확실합니다."


1834-1840년, 새로운 비전


차분기관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중단되었다. 정부는 더 이상 지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비지는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해석기관.


차분기관은 하나의 작업만 했다. 차분 계산. 하지만 해석기관은 프로그램이 가능했다.

명령을 바꾸면, 다른 계산을 했다. 라이프니츠가 꿈꾸던 범용 계산 기계.

배비지는 혼자 설계했다. 정부 지원 없이. 자신의 돈으로.


저장소(Store): 1,000개의 숫자를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

연산장치(Mill): 계산을 수행하는 중앙처리장치

천공카드: 명령과 데이터를 입력

조건 분기: IF-THEN 논리

현대 컴퓨터의 모든 기본 요소가 여기 있었다.


1840년, 에이다와의 재회


에이다는 이제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이 되어 있었다. 결혼하고, 세 아이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여전히 수학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녀는 배비지와 계속 서신을 주고받았다.

1840년, 배비지는 토리노에서 해석기관을 발표했다. 이탈리아 과학자들 앞에서.

젊은 공학자 루이지 메나브레아가 상세한 노트를 작성했다. 프랑스어로.


배비지가 에이다에게 편지를 보냈다.

"메나브레아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에이다는 승낙했다.

에이다는 번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번역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석을 달기 시작했다. 짧은 주석이 점점 길어졌다.

A, B, C... G.


주석 G는 원 논문보다 길었다.

에이다는 배비지에게 편지를 썼다.

"저는 해석기관이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했습니다."


베르누이 수.


복잡한 수학 수열. 손으로 계산하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에이다의 프로그램은 이것을 기계적으로 계산했다.

반복문(loop). 조건 분기. 변수 저장. 역사상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기계를 위한.


하지만 에이다의 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주석에 이렇게 썼다:

"해석기관은 숫자뿐만 아니라 다른 값들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음악의 기초적

관계들이 표현될 수 있다면, 기계는 모든 복잡성과 범위의 정교한 과학적 음악

작품을 작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프니츠의 보편 문자. 기호로 모든 값을 표현하고, 기계로 조작하는 것.

에이다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 최초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한계도 보았다.

"해석기관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썼다.

"그것은 우리가 수행하도록 명령하는 방법을 아는 것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러브레이스의 이의제기(Lovelace's Objection)"가 될 문장이었다.

"기계는 무엇도 창조할 수 없다(The machine cannot originate anything)."


배비지는 이 문장을 보고 미소 지었다."당신은 옳습니다, 러브레이스 부인. 하지만 동시에... 기계가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에이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가 넣은 논리의 결과일 뿐입니다. 진정한 창조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창조는 무엇입니까?"

배비지가 물었다.


"우리의 뇌도 일종의 기계 아닙니까? 뉴런들의 기계적 작동이 아닙니까?"

에이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녀도 확신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1852년, 에이다의 죽음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자궁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서른여섯 살. 그녀의 아버지 바이런이 죽은 나이와 같았다. 배비지가 그녀를 찾아왔다.


"해석기관은요?"

에이다가 물었다.


배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자금이 없습니다."

"그럼 제 프로그램은..."

"당신의 주석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배비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언젠가 누군가 해석기관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의 프로그램을 실행할 겁입니다."

에이다는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저는 미래에 살게 되는군요."


1852년 11월 27일,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세상을 떠났다.

배비지는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조용히 울었다.


1871년, 배비지의 죽음


배비지는 1871년까지 살았다. 여든 살. 그는 죽을 때까지 해석기관을 설계했다.

개선하고, 수정하고, 완벽하게 만들려고. 그의 서재에는 수천 장의 설계도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톱니바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의 아들 헨리가 물었다.


"아버지, 왜 계속하십니까? 아무도 만들지 않을 텐데." 배비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만들어질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왜요?"

"왜냐하면 이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한 것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1871녂 10월 18일, 찰스 배비지도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작업은 잊혔다.

차분기관의 부품들은 런던 과학 박물관의 창고에 보관되었고, 해석기관의 설계도는

배비지의 서재에 남았다. 에이다의 주석은 몇 부만 출판되었고, 거의 아무도 읽지 않았다.

19세기는 증기와 철도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기계적 힘에 관심이 있었지, 기계적 정신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씨앗은 남아 있었다.


1991년, 런던 과학 박물관


150년 후, 과학 박물관의 큐레이터 도론 스웨이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배비지의 차분기관 2호를 실제로 만드는 것.

원본 설계도대로. 19세기 기술로.

7년의 작업 끝에, 2002년, 기계가 완성되었다.

25,000개의 부품. 5톤의 무게.

그리고... 작동했다.

완벽하게.

배비지는 옳았다.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단지 그의 시대가 준비되지 않았을 뿐.




역사적 주석


찰스 배비지 (1791-1871):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 발명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루카스 석좌교수(뉴턴이 역임했던 자리)를 역임했습니다.

차분기관 (Difference Engine, 1822-1833): 다항식의 차분을 계산하여 수학표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기계. 영국 정부로부터 £17,470의 지원을 받았으나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기계공 조셉 클레멘트(Joseph Clement)와의 분쟁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해석기관 (Analytical Engine, 1834-1871): 배비지가 설계한 범용 계산 기계. 천공카드로 프로그램 가능했으며, 조건 분기와 반복문을 지원했습니다. 현대 컴퓨터의 모든 기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으나, 생전에 제작되지 못했습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1815-1852):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딸. 수학자이자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인정받습니다. 1843년 메나브레아의 논문을 번역하면서 추가한 주석(Notes)이 원문보다 세 배 길었습니다.

주석 G: 러브레이스의 가장 유명한 주석.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포함하고 있으며, 역사상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간주됩니다. 반복문과 조건분기를 사용했습니다.

"기계는 무엇도 창조할 수 없다": 러브레이스의 주석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러브레이스의 이의제기 (Lovelace's Objection)"로 알려져 있으며, AI 철학에서 지금도 논쟁의 대상입니다. 앨런 튜링은 1950년 논문에서 이 주장에 대해 직접 반박했습니다.

루이지 메나브레아 (Luigi Menabrea, 1809-1896):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군인. 정치인. 1842년 토리노에서 배비지의 강연을 듣고 프랑스어로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나중에 이탈리아 총리가 되었습니다.

1991-2002 재현 프로젝트: 런던 과학 박물관의 도론 스웨이드(Doron Swade)가 주도한 프로젝트. 배비지의 원본 설계도를 바탕으로 차분기관 2호를 실제로 제작했습니다. 2002년 완성되어 완벽하게 작동함을 증명했습니다. 배비지의 설계가 기술적으로 타당했음을 150년 만에 입증한 것입니다.

배비지와 러브레이스의 관계: 두 사람의 지적 협력 관계는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서신이 현존하며, 배비지는 러브레이스를 "마법의 여인(Enchantress of Numbers)"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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