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조지 불 - 사고의 법칙

논리가 수학이 되다. Boolean Algebra의 탄생

by 장준호

1830년, 영국 링컨

조지 불(George Boole)은 열다섯 살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구두 가게 뒤편 작은 방에서 라틴어 문법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링컨의 거리가 보였다. 영국 중부의 작은 도시. 가난한 도시. 불의 아버지 존 불은 구두수선공이었다. 돈이 없었다. 조지를 문법학교에 보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존은 아들이 교육받기를 원했다. 그는 아들을 위해 책을 빌려왔다. 수학책, 과학책, 고전.

조지는 독학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독일어. 수학. 유클리드 기하학. 뉴턴의 『프린키피아』.

열네 살에 그는 그리스 시를 영어로 번역했다. 지역 신문에 실렸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구두수선공의 아들이 그리스어를?


하지만 사실이었다.


"조지."

아버지가 작은 방에 들어왔다.

"학교에 가야 하지 않겠니? 돈을 모아보마."


조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제가 돈을 벌겠습니다. 제가 가르치겠습니다."

"가르친다고?"

"네. 저는 충분히 배웠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열여섯 살에 조지 불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불은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공부했다. 그는 수학에 매료되었다. 특히 대수학.

방정식. 기호로 표현된 관계들. x, y, z. 아름다웠다. 명확했다. 애매함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케임브리지 수학 저널을 읽고 있었다. 누군가 제기한 문제. 미분방정식.

불은 밤새 그것을 풀었다. 그리고 자신의 해법을 저널에 보냈다.


몇 달 후, 그의 해법이 출판되었다.

이름: George Boole. 소속: 없음.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교수가 아니었다. 링컨의 학교 교사. 하지만 수학자들은 주목했다. 이 무명의 청년은 누구인가?


1847년, 첫 번째 돌파구

불은 이제 서른두 살이었다. 여전히 링컨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높아지고 있었다. 케임브리지 수학자들과 서신을 주고받았고 논문도 발표했다.

1847년, 그는 작은 책자를 출판했다.

『논리의 수학적 분석(The Mathematical Analysis of Logic)』

겨우 80페이지. 하지만 혁명적이었다.

불은 대담한 제안을 했다:


"논리를 대수학으로 다룰 수 있다."


전통적으로 논리학은 철학의 일부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000년간. 삼단논법:

모든 인간은 죽는다 (대전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소전제)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결론)


이것을 어떻게 수학으로? 불은 기호를 도입했다:

명제를 변수로:

x = "인간이다"

y = "죽는다"


논리 연산을 대수 연산으로:

AND: xy (곱셈)

OR: x + y - xy (합에서 교집합 제거)

NOT: 1 - x (전체에서 제외)


참과 거짓을 숫자로:

1 = 참

0 = 거짓


갑자기 논리가 계산 가능해졌다.


불의 책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아일랜드의 퀸스 칼리지 코크에서.

1849년, 코크 대학은 불을 수학 교수로 초청했다. 불은 흥분했다. 드디어 진짜 학자가 될 수 있었다. 더 이상 학교 교사가 아니라.


그는 링컨을 떠나 아일랜드로 갔다. 코크. 아일랜드 남부의 항구 도시. 비가 많이 오는 도시. 하지만 불에게는 천국이었다. 드디어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도서관에 들어박혔다. 논리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논리학자들.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

불은 전율했다.

라이프니츠는 이미 200년 전에 같은 꿈을 꾸었다. 논리를 계산으로. Calculus Ratiocinator.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완성하지 못했다. 불은 완성할 것이다.


1854년, 『사고의 법칙』

5년간의 작업 끝에, 불은 그의 대작을 출판했다.


『사고의 법칙에 대한 연구(An Investigation of the Laws of Thought)』


이것은 단순한 논리학 책이 아니었다. 철학이자, 심리학이자 수학이었다.

책의 첫 장에서 불은 대담한 주장을 했다:

"인간 정신의 법칙은 수학의 법칙과 같다."

그는 사고의 근본 법칙들을 공리로 제시했다:


법칙 1: 동일률 x = x


법칙 2: 멱등성(Idempotence) x² = x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반 대수에서는 x² = x라면 x = 0 또는 x = 1이다.

불 대수에서 모든 변수는 0 또는 1이다!


법칙 3: 분배 법칙 x(y + z) = xy + xz

일반 대수와 같다.


법칙 4: 교환 법칙 xy = yx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이 간단한 법칙들로부터, 불은 모든 논리적 추론을 유도할 수 있었다.

삼단논법? 방정식을 풀면 된다. 모순 검증? 계산하면 된다. 타당성 검사? 대수로 증명하면 된다.

라이프니츠의 "Calculemus!"가 현실이 되었다.


불은 그의 동료 존 에버레스트의 조카 메리를 만났다. 메리 에버레스트. 스물두 살. 수학을 사랑하는 여성. 불은 서른아홉 살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메리는 달랐다. 그녀는 그의 작업을 이해했다. 논리 대수를. 사고의 법칙을.


그들은 긴 산책을 하며 논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지, 질문이 있어요."

메리가 말했다.

"당신의 대수는 사고의 법칙이라고 하셨죠. 하지만 정말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나요? 0과 1로?"

불은 잠시 침묵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는 인정했다.


"이것은 사고의 형식입니다. 구조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내용은 다른 무언가 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논리는 기계적인가요? 기계가 당신의 법칙을 따를 수 있나요?"

불은 미소 지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0과 1을 조작하는 기계. 논리 연산을 수행하는 기계. 왜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생각'일까요?"

"그것은..."

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제가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1855년, 조지 불과 메리 에버레스트는 결혼했다.


불과 메리는 다섯 딸을 낳았다. 그들은 모두 뛰어난 교육을 받았다.

특히 막내 에델 불(Ethel Boole)은 나중에 수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조지 힌턴과 결혼했다. 그들의 아들 찰스 하워드 힌턴은 4차원 기하학을 연구했다.

불은 여전히 연구했다. 미분방정식, 확률론, 논리학.

하지만 그의 건강은 좋지 않았다. 코크의 습한 날씨가 그를 괴롭혔다.


어느 날 밤, 메리가 물었다.

"당신의 논리 대수가... 실제로 어디에 쓰일까요?"

불은 웃었다.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무 데도 쓰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왜 했어요?"

"왜냐하면..."

불은 창밖의 비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고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은 수학적입니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설령 아무도 사용하지 않더라도?"

"설령 아무도 사용하지 않더라도."


1864년 11월, 마지막 강의

1864년 가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어느 날, 불은 대학까지 걸어가다가 비에 흠뻑 젖었다. 약 3마일.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오한에 떨고 있었다.

메리가 놀랐다.

"조지! 왜 마차를 타지 않았어요?"

"돈을 아끼려고..."


불은 여전히 검소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

며칠 후, 불은 열이 났다. 폐렴.

의사가 왔다. 고개를 저었다.

"심각합니다."

메리는 간호했다. 밤낮으로.

불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메리."

그가 희미하게 말했다.

"내 책들... 논리 대수..."

"쉬세요, 조지."

"아니... 말해야 해..."

그는 숨을 헐떡였다.


"내가 발견한 것은... 완전하지 않아. 더 많은 것이 있을 거야. 논리는... 더 넓어."

"당신은 충분히 했어요."

"아니... 시작일 뿐이야..."

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언젠가... 누군가... 이것을 사용할 거야. 기계가... 논리를..."


1864년 12월 8일, 조지 불은 세상을 떠났다. 마흔아홉 살.

불의 논리 대수는 잊혀졌다. 수학자들은 그것을 기이한 호기심 정도로 여겼다. 철학자들은 관심이 없었다. 메리는 남편의 저작을 보존했다. 하지만 거의 아무도 읽지 않았다. 19세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20세기가 오고 있었다.

전기의 세기.


1938년, 미국 MIT

조지 불이 죽은 지 74년 후. MIT 대학원생 클로드 섀넌은 석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릴레이 및 스위칭 회로의 기호 분석(A Symbolic Analysis of Relay and Switching Circuits)"


섀넌은 전화 교환기를 연구하고 있었다. 복잡한 전기 회로. 릴레이들이 켜지고 꺼지고.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논리 회로다!"

릴레이가 켜지면 1. 꺼지면 0.


AND 게이트: 두 스위치가 모두 켜져야 전류가 흐른다.

OR 게이트: 하나만 켜져도 전류가 흐른다.

NOT 게이트: 입력을 반전시킨다.

섀넌은 도서관에서 먼지 쌓인 책을 꺼냈다. 조지 불, 『사고의 법칙』, 1854.

그는 밤새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불 대수는 전기 회로를 설계하는 완벽한 도구였다!


x AND y = xy

x OR y = x + y – xy

NOT x = 1 - x


모든 논리 회로를 불 대수로 설계하고, 최적화하고, 분석할 수 있었다. 섀넌의 석사 논문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석사 논문으로 평가 받게 될 것이었다.

불의 논리 대수가 부활했다. 전기 회로 안에서.


1940년대, 최초의 컴퓨터들

ENIAC, EDVAC, 콜로서스.

최초의 전자 컴퓨터들이 만들어졌다. 그 안에는 진공관이 있었다. 수천 개의 진공관.

각 진공관은 켜지거나 꺼졌다. 1이거나 0이거나. 그리고 그 진공관들은 논리 게이트로 연결되었다.


AND, OR, NOT, NAND, NOR, XOR.


모두 불 대수로 설계되었다. 조지 불의 법칙들:

x² = x

x(1-x) = 0

x + (1-x) = 1


이것들이 컴퓨터의 기초가 되었다. 배비지가 꿈꾸었던 범용 계산 기계. 라이프니츠가 꿈꾸었던 논리 계산기. 불 대수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현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논리형 데이터 형식을 Boolean Data Type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역사적 주석


조지 불 (1815-1864):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링컨의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정규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1849년 아일랜드 퀸스 칼리지 코크의 수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논리의 수학적 분석』 (1847): 불의 첫 논리학 저작. 논리를 대수학으로 다룰 수 있다는 혁명적 제안을 했습니다. 80페이지의 소책자였으나 논리학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고의 법칙』 (1854): 불의 대작. "An Investigation of the Laws of Thought on Which are Founded the Mathematical Theories of Logic and Probabilities (논리와 확률의 수학적 이론의 기초가 되는 사고의 법칙에 대한 탐구)". 불 대수의 완성된 형태를 제시했습니다.

불 대수의 핵심:

모든 변수는 0(거짓) 또는 1(참)

멱등성: x² = x

AND 연산: xy

OR 연산: x + y - xy

NOT 연산: 1 - x

메리 에버레스트 불 (1832-1916): 조지 불과 1855년 결혼. 수학자이자 교육자. 남편 사후 그의 저작을 보존하고 홍보했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의 이름이 된 조지 에버레스트의 조카입니다.

불의 다섯 딸: 모두 뛰어난 교육을 받았습니다. 특히 에델 불(Ethel Boole)은 수학자가 되었고, 알리시아 불(Alicia Boole Stott)은 4차원 기하학을 연구했습니다.

불의 죽음 (1864): 대학까지 걷다가 비에 젖어 폐렴에 걸렸습니다. 당시 메리는 젖은 옷이 병을 일으킨다고 믿었고, 조지를 침대에 눕히고 물을 끼얹는 "치료"를 했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클로드 섀넌 (1916-2001): 1937년 MIT 석사 논문 "A Symbolic Analysis of Relay and Switching Circuits (릴레이 및 스위칭 회로의 기호 분석)"에서 불 대수를 전기 회로 설계에 적용했습니다. 이 논문은 디지털 회로 설계의 기초가 되었으며,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석사 논문으로 평가 받습니다.

불 대수의 부활: 불 대수는 그가 죽은 후 약 70년간 거의 잊혀졌습니다. 수학자들은 관심이 없었고,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 전기 공학의 발전과 함께 재발견되었고, 현재 모든 디지털 컴퓨터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불 대수와 컴퓨터: 모든 현대 컴퓨터의 논리 게이트(AND, OR, NOT, NAND, NOR, XOR 등)는 불 대수를 구현한 것입니다. CPU, 메모리, 모든 디지털 회로가 불의 법칙을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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