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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가림 May 06. 2022

아이는 없고 그냥 일찍 결혼했어요.

그냥 결혼해도 될까요?

나는 지금 28살이지만 많이 늦어진 평균 혼인 연령 때문인지 벌서 결혼하셨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러고는 "신혼이시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부끄럽지만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네. 한 오 년째 신혼이기는 해요." 라며 TMI를 날린다. 

그러면 그들의 커지는 눈동자가 꽤나 재미있다. 

"어머. 일찍 결혼하셨구나. 아이는 있으세요?" 열심히 나이 계산을 마치고 혹시 아이가 생겨서일지도 모른다는 빠른 결론을 내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한번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을 보낸다. 

그러면 나는 "아이는 없고 그냥 일찍 결혼했어요."라며 대답해주고는 한다.




23살, 의욕도 희망도 없는 고졸, 전문대, 그리고 사회 경력 무경험자였던 나는 아르바이트에 목메고 있었다. 제대로 된 대학도 안 가고 그 와중에 몇 번의 서투른 연애와 이별을 반복하고 하루하루 의미 없다며 말만 하는 나를 붙잡고 살고 있었다. 아무리 캐나다라지만 사람들의 삶은 대학의 크기나 돈으로 갈리는 모습이 세상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었고 그 당시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매일 한인 식당 알바를 하며 꽤나 높은 팁으로 매번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하루, 나는 역시나 이별을 겪었고 온갖 우울하고 슬픈 티는 다내며 아르바이트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주방에서 나와 매일 같이 일하던 자칭 주방장님은 아는 남자애 하나를 소개해주고 싶다며 소개팅을 제안하셨다. 순간 나는 당연히 사양하는 척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만나볼 수 있다는 말을 흘리며 그 대화를 마쳤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래. 이별이 뭔 대수라고. 나도 소개팅이나 할 거다.' 라며 약간의 기대를 하고 지냈다.


며칠이 그리고 몇 주가 지나도 소개팅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매일같이 이별의 아픔을 극복한답시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아침이 되면 창백한 얼굴로 가게를 들어서는 나는 무심코 잊고 있던 소개팅 얘기가 계속 거슬리기 시작했다.


'왜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지? 사진 보낸 거 아닌가?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어. 너 아파?"


한참 고민하며 서빙을 간 테이블에는 같이 일하는 오빠 하나가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러 와있었고 아프냐며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놈은 내가 화장을 안 하고 오면 항상 아프냐고 묻던 사람인데 이게 참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놀리는 건지 모르겠더라. 순간 욱했지만 하하 웃으며 아픈 거 맞다 하고 뒤돌아 서며 슬쩍 앞에 앉아있던 사람을 째려보았다. 멍 때리며 우리의 대화에 관심이 전혀 없는 표정을 대놓고 지으며 서빙받은 음식에 감사도 감탄도 없는.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냈다. 몇 개월이 지나도록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매일같이 아르바이트만 하며 놀고먹기에만 바빴다. 


그러던 와중 우리 가게 주방에는 그때 봤던 그 싹수없어 보이던 오빠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자칭 주방장님이 나를 슬쩍 오빠를 슬쩍 번갈아 보며 농담을 던지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역시나 그는 나와의 소개팅을 거절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한 달을 일하며 보았지만 말조차 걸지 않았다. 

그렇게 차갑던 기온이 우리를 감싸던 겨울날, 그와의 첫 대화는

지금 내 남편이 된 그의 첫마디는


"클럽을 안 가봤어요?"


였다.




그리고 일 년 뒤 우리는 다짜고짜 한국에 들어왔고 양가 부모님들께 '결혼할까 봐요'라는 말을 던지며 전국의 가족들에게 인사 여행을 돌기 시작했다. 결혼이 별거인가 싶은 겁 없는 나이여서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들께 말도 안 하고 찍은 셀프 웨딩 사진을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니며 부모님들께도 자랑스럽게 사본을 보내드렸다. 부모님들의 황당한 기색도 잠시 어느새 상견례까지 마쳐버린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고 그렇게 캐나다에 돌아왔다. 


겁 없는 결혼발표는 주위 친구들의 의아함과 축복을 동시에 받았다. 우리는 모아둔 돈도 제대로 된 직업도 하나 없이 결혼 사유로 좋아한다는 감정하나 만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 년이 지난 지금 나의 결혼은 현실이 되었는가?


맞지만 덧붙일 말이 많다.


성장에 한표. 인간을 배운 것에 한표. 가능성에 한표. 꿈을 함께하는 것에 한표.

가난에 한표. 허덕임에 한표. 구질구질함에 한표.


지금 우리 또래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혼인을 했기에 결혼을 옹호하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결혼의 최선이 뭔지 그리고 그 과정이 무엇인지 제안을 해볼까 싶다.


사실 조금만 감성적이면 (들 이성적이면) 가능한게 결혼인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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