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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가림 Aug 19. 2022

친구는 매일같이 이혼하고 싶다며 전화가 온다.

난 그녀의 남편을 같이 욕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의 친한 친구는 많으면 일주일에 한 번 평소에는 몇 주에 한 번씩 이혼하고 싶다며 전화가 온다. 엉엉 울면서 혹은 침울한 목소리로 전화 넘어 들리는 이야기들은 우울하기 짝이 없고 화가 난다. 


처음에는 그녀를 위해서 화가 났고 

두 번째는 그녀의 상황이 너무 불쌍했고 

세 번째는 그녀의 전화에 화가 났다. 


몇 주의 우울한 전화와 카톡이 끝이 나면 또 아무렇지 않은 듯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녀의 SNS와 일상들은 나와 친구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예쁜 아기 사진과 기분 좋아 보이는 그녀의 연락은 굉장히 안심이 되기도 하고 그래 결혼이 다 그렇지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또 그녀의 평범한 몇 주가 끝나고 나면 다시 침울한 시간이 반복되었고 그녀를 위해 화를 같이 내주던 나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녀의 배우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 전부터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고 우리는 단톡방을 개설하고 눈물까지 흘리며 그녀의 결혼을 막기 위해 애썼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의 결혼은 진행이 되었고 우리로써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선을 넘는 건가 싶어 조금씩 우리의 열정을 죽여갔다. 그들의 결혼 이후 별다른 얘기를 더 이상 듣지 못한 우리는 잘살고 있구나 싶었고 그녀의 결혼 생활을 응원해주기 시작했다. 가끔은 그녀의 배우자와 함께 식사를 하고 밤새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해하려 해도 찝찝하고 이상한 일도 많았지만 오로지 '친한 친구의 남편'이기에 다들 조용히 넘어가 주었다.


그러다 가끔 이혼하겠다며 울며 전화 오는 그녀를 보며 심정도 고충도 이해한다며 같이 화를 내주었지만 차마 남편 욕하는 것까지 같이는 못해주겠다 싶더라. 분명히 몇 주가 혹은 며칠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은 듯 얼굴 보며 지낼 둘일걸 알기에 여기서 같이 욕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친구들은 전부 쉬쉬하며 넘겼고 결혼 이후 그녀의 배우자가 된 사람에 대한 얘기는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그녀의 남편은 점점 도가 지나치는 언행과 행동을 그녀의 친구들 앞에서 보이기 시작했고 끝내 웃어주며 들어주던 나도 더 이상 받아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유독 도가 지나친 날, 화 한번 내지 않고 자리를 떠나는 나에게 친구는 미안하다며 울며 붙잡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나와의 카톡에 '나 반드시 이혼할 거야.'라는 다짐을 남기고 또 남겼다. 


이제는 믿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다시 그녀의 남편과 마주 보고 하루하루를 지낼 것이고 자신의 어린 아기를 탓하며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그녀의 하루는 반복되었다.




Photo by: https://unsplash.com/@josuemichelphotography


친구와의 깊은 인연과 소중한 추억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우울한 연락만큼 보다 기분 좋은 연락과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연락이 더 많았으며 어린 시절부터 같이 성장해왔고 함께 시간을 쌓아왔다. 해외생활을 하던 나에게 항상 끊김 없이 연락이 오고 걱정해주며 밤새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였다. 페이스북에는 서로를 자매라고 소개할 만큼 가족처럼 아끼고 지내왔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화에 항상 동의해주었지만 그녀의 남편에 대한 평가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수 없는 방황은 나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와리가리가 지친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를 가장 아껴온 친구다. 

우리의 관계에도 우역곡절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을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그녀의 남편이 싫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에 나는 받았다. 똑같이 이혼하고 싶다며 우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답했다.


"나는 네가 너무 좋고 소중해. 네가 상처받는 게 참 마음이 아파. 그렇지만 앞으로 나는 니 남편을 살면서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 진짜 너무 싫어. 혐오스러워. 이혼할 거면 하고 말면 말고. 네 편은 들어줄게. 친구로서 응원은 해줄게. 근데 나라면 이혼하고도 남았어. 아이가 없어서 쉽게 하는 말이 아니야.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확실한건 니 남편 미친놈 맞아."


그날 친구는 엉엉 울면서 맞다며 자기가 이상한 줄 알았다며 미안하다고만 했다. 진작 남편 욕을 같이 해줄걸 싶다가도 이제는 욕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더 이상 그녀의 남편을 보지 않는다는 말에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는 듯했다. 이 사람도 원치 않는 사람을 마주 보고 있는 시간들이 썩 내키지 않았겠지. 그리고 나의 남편은 친구와의 연을 끊어버리라는 극단적인 말 또한 하지 않았다. 내가 한 결정에 수고했다고만 말하였다. 이야기를 한참 들어준 후 배고프지 않냐며 밥을 뭘 먹을지 묻는 그를 보며 나는 나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 새삼 느끼고 있었다. 


결혼하면 친구 연도 자연스럽게 끊어진다는 엄마 말씀이 싫었다. 다 소용없다는 듯이 말씀하시면서도 엄마의 외로운 모습은 아이러니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썰 캡처'만 봐도 그렇다. 극단적인 사건들에 놀라며 대중은 이런 친구는 연을 끊어야 해. 결혼하면 이래야 해. 라며 토론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왜 결혼을 하면 고립을 선택할까. 왜 얼마 남지 않은 인연마저 끊어내야 할까. 그게 왜 자연스러운 걸까. 


우리 세상의 결혼은 마치 이 세상 누구보다 이기적인 집단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결혼으로 팀원이 된 순간 소중했던 각자의 친구들도 하나의 경쟁자가 되어 경기를 시작한다. 전에 부부동반 모임에 관해 쓴 글 처럼 말이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것 같으면 '쳐내야 해. 버려야 해. 끊어야 해."라고 외친다. 물론 나는 여기에 '윤리적인 문제'와 '막대한 금전적인 손해' 혹은 '이성친구'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내가 집중한 것은 '본질적인 관계는 변하지 않았으나 결혼이라는 제도 하에 우리의 시선이 달라지는 점'을 말하고 싶다. 


본질에만 집중하고 싶다. 친구 부부를 비교하며 내가 행복하다는 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처럼 결혼 후에는 친구도 경쟁상대가 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연락이 귀찮으면 연을 끊어버리라는 다른 친구의 말도 존중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러고 싶지 않다. 그냥 친구의 얘기를 들어주며 공감해주는 건 결혼 전에는 귀찮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그대로 하고 싶다. 그리고 친구라서 더 큰 행복을 바라 주고 싶다. 


대신 그녀의 남편을 끊어내기로 결정했으니 결혼 이후로 의미 없이 다 같이 시간을 보낼 필요도 더 이상 없다. 


그렇다면 나 또한 친구를 끊어내고 있는 것일까? 




메인 사진 제공: https://unsplash.com/@anthonyt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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