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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책방 Jan 29. 2023

놀라워하며 존경하기

요조, <가끔은 영원을 묻고>


<가끔은 영원을 묻고>는 영월군에서 만든 프로젝트 책이다. 요조 작가가 영월에 머물며 만난 사람들, 동물과 식물들, 음식들, 자연과 언어들이 담겨있다. 


영월에 큼직한 관광명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책에 담은 영월 여행은 굉장히 소소해서 만약 누가 이 여행을 따라한다면 혼자서는 영 심심할지도 모르겠다.

영월로 놀러온 친구들과 고른 등산지는 '잣봉'이라는 애매한 산이고, 최고로 꼽는 맛집은 '불너쏘'라는 동네 호프집이다. 요조가 잣봉과 불너쏘애서 만족을 느낀 것은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헤매지 않으려면 나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널널한 여행이 그것을 돕는다. 한달살기처럼 긴 시간 타지에 이방인으로 머무르는 것이 인기가 높아지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평소에 어지럽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말과 시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정말 내가 원하는 곳으로 발길을 향할 수 있게 돕는 것은 한적한 여행이다.



요조의 산문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모두가 매력적이다. 요조의 다른 에세이에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닮기 위해 그들을 열심히 흉내낸다고 말했다. 그는 세심하고 다정한 눈으로 사람을 본다. 그리고  그사람을 잘 표현해주는 이름을 붙인다.

영월에서 지내는 동안 머무는 곳은 '내 마음의 외갓집'이다. 만화 피너츠의 캐릭터인 '패티'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와 불어로 행복을 의미하는 'bonheur'가 쓰인 티셔츠를 번갈아입는 영미님과 그의 남편이 운영한다. 요조는 그를 '패티영미', '행복영미'로 번갈아 부른다. 


영월을 떠나는 날, 영미님에게 쓴 편지에는 이렇게 적는다.


영미님, 저 역시 영미님을 만난 것이 운명이라고 믿어요. 왜냐하면 이곳에서 지내며 제법 묵직한 결심을 하게 되었거든요. 내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든 '김영미적'이어야 한다는 결심을요. 
<가끔은 영원을 묻고> 153쪽


이 여행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영미님이다. 영미님과 나누는 대화 속에는 그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가 배어나온다. 시든 꽃도 예쁘게 보려 노력한다. 어떤 사람의 곁에 있으면 그 사람의 가치가 나에게도 배어든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그사람과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나를 조금 묻히고, 나에게 그를 조금 묻힌다. 그러면 나는 이전과 다른 내가 된다.



영미님과 남편은 직접 집을 짓고 필요한 것들을 심어 키우고 돌본다. 자유로운 강아지 구월이와 배추도 있다. 자신이 만든 음식 또는 이웃에게 받은 음식으로 상을 차린다. 자연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느라 음악도 켜지 않는다.

온몸으로 살아내는 삶은 활기있다. 한군데에 가만히 앉아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는 삶이 가질 수 없는 진짜 세계가 있다. 그런 진짜 세계를 살아가려면 몸을 자주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들을 신경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소박한 생활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김영미적' 삶은 이런 게 아닐까. 내가 해야할 일을 알고 그것을 온몸으로 얻으며 사는 삶. 



다른 것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얻고 나누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단정하고 차분해짐과 동시에, 속에서는 심지가 더욱 단단하게 자란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지라, 햇빛을 받고 흙을 만지고 움직이고 바람을 쐬며 자란다. 아줌마도, 할머니도 자란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들으면서 내 인생도 조금씩 바뀐다.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듣는 이야기를 돌아보자. 그것들이 조금조금씩 나에게 묻어있을 것이다. 나는 요조의 에세이 읽기를 좋아한다. 그가 발견하는 놀라움과 존경을 따라 읽는다. 나도 어떤 사람의 말과 태도에 놀라움을 발견하는 눈을 뜨게 될 것이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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