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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준쌤 Mar 30. 2024

젊음은 미리 늙지 않는 것이니

구본형 칼럼440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마지막 열차에서 내리니 눈보라가 사방에서 밀려들었다네. 어찌나 춥게 밀려드는지, 미리 봄 옷차림으로 남쪽 부산을 다녀온 나는 목도리 하나라도 하고 올 것을 후회 막급하였다네. 이미 서울역사 안의 편의점은 문을 닫아 우산도 구할 수 없고, 노숙자들만 겨울 보다 더 추운 봄날에 잘 곳을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네. 눈을 맞으며 역사를 나오니 택시는 거의 끊기고, 막 기차에서 내린 손님들만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네. 순간 서울에 도착했건만 집에 갈 방법이 막막하여 당황스러웠다네. 잠시 자네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네. 하필이면 이런 날 나를 불러 골탕을 먹이는구나 하고 말일세. 달랑 기차표 두 장으로 부산으로 나를 불러 강연을 하고 돌아오는 날, 봄 눈은 그렇게 춥고 황당하게 내렸지.


  서부역으로 나온 나는 거의 대각선상에 있는 불가마 찜질방에서 잠을 잘까 생각했네. 조금 걸어 나와 편의점에서 우산을 하나 사 눈보라를 가리고 그곳까지 걸어갔다네. 막상 건물하나가 통째로 찜질방인 그곳 입구에 이르니 들어가기가 싫었네. 길가는 택시를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지. 헛된 기다림이었다네. 나는 실망했고 점점 추워져 할 수 없이 찜질방으로 들어갈까 생각했지. 그때 문득 이 밤이 나쁘지 않다는 느닷없는 생각이 들었다네. 봄눈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이 밤, 눈길을 걸어 집에 가도 나쁘지 않으리. 옷깃을 세우고 잠시 망설이는 나를 몰아 눈길을 걸어 보기로 했네. 마음을 먹자 그 길은 즐겁고 특별한 작은 모험처럼 여겨졌다네. 밤 영업을 끝내고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주점과 식당 주인들은 가게 앞 눈을 쓸고 있었지. 내일을 위한 비질이었다네. 가게 불빛이 내리는 눈발들을 환하게 비치고 있었네. 한참을 걸었다네. 마치 시베리아를 걷는 젊은이인양 스스로 즐겁게 과장하면서 말일세. 내가 그런 우스운 시도를 하게 된 것은 아마 그대들 젊은이들을 수 백 명 모아 놓고, 불과 몇 시간 전에 대학의 캠퍼스 안에서 '젊음은 젊음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수 백명의 젊은이들이 모인 넓은 강당에서 자네는 강사인 나를 소개하면서 그 강연회를 개최하게 된 숨은 사연과 과정을 참석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더군. 그 자리에 앉아 나도 흥미롭게 자네의 말을 들었다네. 그래, 자네는 내게 한 달 전쯤 메일을 보냈지. 부산에 와서 대학생들에게 강연을 해 줄 수 없느냐고. 강연료를 줄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나눠달라고 말이야. 자네는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유명 인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했네. 백 사람에게 보냈는데, 아흔여섯 명에게서는 아무 회신이 없었다고 했지. 세 명은 정중히 거절했다고 했지. 그리고 내가 보낸 하나의 답장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지. 그 편지에 나는 이렇게 썼지. "나는 이 강연회에 가지 않겠습니다. 매력적이지 않아요.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드세요." 내가 보낸 짧은 메일 속의 이 메시지를 그대는 옳게 해석했더군. 그대는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과 이 강연회를 아이티 재건을 돕는 모금운동과 연계시키고, 뜻이 있는 NGO를 초청하고, 대학교 앞 상가를 돌아다니며 모금 운동을 했지. 자네의 이런 노력들은 결국 내가 그곳에 가서 젊은이들을 위한 무료 강연회를 흔쾌히 승낙하도록 만들었네. 그리하여 작은 인연이 맺어지게 되었고, 우리는 멋진 만남을 하게 되었지. 나는 자네가 애써 배우려는 사람이고, 온전하게 자신을 바쳐 열심히 현재의 삶에 참여하려는 멋진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네. 눈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자네 같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 가지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네. 그리고 이 이야기에 '젊음은 결코 미리 늙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제목을 붙여 두었네. 강연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연결된 것들이니 마음에 담아두고 잊지 않기 바라네.


  나는 종종 젊은이들이 너무도 빨리 밥벌이와 친해지는 현상을 보곤 한다네. 너무도 빨리 '경제적 필요'에 무릎을 꿇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네. 아이를 가르치는 데는 전혀 흥미가 없지만 오랫동안 교사 일을 할 수 있다는 안정성 때문에 교직에 목을 매는 젊은이를 보았다네. 국민에게 봉사하는 즐거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사기업 보다 10년은 더 다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젊은이들을 보았다네.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대학에서는 취업을 위해서 스펙에 매이는 젊은이들을 수없이 본다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지 말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네. 나는 멀쩡히 다니던 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 강변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네. 오히려 너무도 많은 젊은이들이 달려가는 그 큰길이 바로 엄청난 레드 오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뿐이라네.


  생각해 보게. 지금은 지식사회이고, 창의성이 최고의 미덕인 시대라네. 기업은 창의성에 목을 매고 있네. 그런데 열 명의 대학생 중에서 아홉 명은 비슷한 인생을 가지고 있다네. 비슷한 생각, 비슷한 경로, 비슷한 스펙에 꽁꽁 묶여 있다네. 우습지 않은가? 자신만의 차별적인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창조성이 생명인 사회를 맞이한다 말이야.


  나는 가장 중요한 젊음의 특성은 바로 '아주 많은 우연한 사건들' 속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용기라고 생각하네. 지나고 보니 인생은 결국 아주 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로 짜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계획대로 되어 기쁜 일도 있고, 오래 준비하고 바라던 일이 무산되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삶에 당황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세월이 지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사건들이 곧 인생의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네. 누군가의 삶이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되려면 그 사건들이 흥미진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커다란 사건만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든 그것을 훌륭하게 재해석해 낼 수 있는 힘에 달려있네.


  20세기 가장 위대한 혁명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체 게라바는 원래 의사였다네. 하지만 20대 초반 의학도 신분으로 떠난 7개월간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지. 체 게바라가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네. 그는 고국인 아르헨티나 너머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의 열정에 이끌려 친구인 알베르토 그라나도(Alberto Granado)와 함께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지. 하지만 여행을 하고 난 후에는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었어. 그는 이 여행에 대해 기록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네.

“(여행에서 돌아와) 아르헨티나 땅에 다시 발을 딛는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글을 다시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 이상의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많이 변했다. 그 깊이는 내가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체 게바라가 여행을 통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과거의 그를 사라지게 했을까? 체 게바라는 우연히 칠레의 한 노동자 부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면서 이곳 사람들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었다네. 그는 추운 밤 담요 한 장 없이 부둥켜안고 자는 노동자 부부에게 하나뿐인 이불을 건네주었지. 그는 당시 경험에 대해 “그것은 내가 겪은 가장 추웠던 경험 가운데 하나였지만 내게는 낯선 이 인류에게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을 갖게 해 준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네. 그는 그 여행에서 이런 장면들과 무수히 마주치면서 의사도 성직자도 아닌 혁명가로서 자신의 길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네. 잘 생각해 보게.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전해지는 깨달음의 크기가 인생을 바꾸는 것이라네. 사건을 해석하는 힘을 키우고, 그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우주가 천둥처럼 전하는 그 목소리를 놓치지 말게.


  자네라면 내 이야기가 현실성이 결여된 이상주의자의 근거 없는 믿음이라고 여기지 않으리라 믿네. 1986년 옥스퍼드 대학의 우주학자인 존 배로우와 프랭크 티플러는 '인류학적 우주론 원리' Anthropic Cosmological Principle라는 멋진 책을 쓰게 되었다네. 그 책 속에는 지구상의 생명체의 운명은 우주의 생명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네. 우리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말은 전혀 우스운 말이 아니라네.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말을 기억하게.

"꽃봉오리가 열리고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위대한 것이 태어나는 인생의 정점에서, 하나는 둘이 된다. 늘 우리의 내부에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았던 이 위대한 모습은 대 각성을 촉구하며 지금까지의 나에게 정면으로 맞서 떨쳐 일어난다."


  젊음은 젊음으로 인생에 기여한다네. 너무도 쉽게 늙지 말게. 위대한 것이 그대의 가슴속에서 자라나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주와 공명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그 일'을 반드시 해내게.

추신 : 참, 그대가 새벽에 서울에 도착할 나를 위해 봉투에 넣어 둔 삼만 원에 대하여 잠시 말해 두어야겠네. 팔천 오백 원으로 우산을 샀네. 그리고 한참 걷고 있는 내 앞에 택시가 한 대 섰다네. 나는 택시 기사분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만 원을 드렸네. 그래서 만 천 오백 원이 남았네. 부산 강연은 경제적으로도 좀 남은 비즈니스였다네. 고맙네.

출처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이 칼럼은 구본형 선생님의 책 <마지막 편지>에도 들어가 있는 글이다. 그리고 이 글에 나오는 부산의 청년은 내가 아는 형이다. 2010년부터 알고 지내고 있는 형은 현재 부산에서 '크레타'라는 책방을 하고 있다. 책을 사려는 사람보다 쓰려는 사람이 많아진 이 시대에 책방을 차린다니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형답게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과 욕망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내면의 북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혼자도 아니고 결혼을 한 사람이, 그리고 두 사람이 아닌 아이도 2명이나 있었기에 더욱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큰 결정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형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형수님의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좋아하는 형의 이야기가 나오니 이 글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약 10년 전에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도 좋았지만, 10년이 지나고 난 지금 읽으니 더욱더 감명 깊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젊음의 특성은 바로 '아주 많은 우연한 사건들' 속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용기라고 생각하네'라는 문장은 읽고 또 읽게 된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자신이 떠나고 싶은 모험을 떠나는 것은 진로를 찾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태도라고 오랫동안 생각한 나로서 두근거리는 문장이다. 


 구본형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 부산의 그 형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말한 대로, 쓴 대로 삶을 살기 때문이다. 말과 글, 삶이 일치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그걸 해내는 분들이기에 존경스럽기도 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말한 대로, 쓴 대로 일상과 삶을 살 수 있는 교육자이자, 강사이자, 코치, 진행자가 되고 싶다. 


 훗날 내가 구본형선생님처럼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많은 기업과 조직에서 찾는 사람이 되었을 때 부산까지 무료 강연회를 나라면 갈 수 있을까? 온전히 하루를 빼어 청년들, 청소년들에게 재능 기부를 할 수 있을까? 쉽게 '그렇다'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생계가 더 이상 걱정이 되지 않을 때 한 달에 한두 번은 영리적인 목적이 아니라 정말 나의 이야기가 필요한 곳에 가서 사람들에게 무료 강연을 할 것이다. 그들의 빛나는 눈을 마주치고, 오롯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힘껏 응원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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