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가 가득한 칠판에 글씨를 쓴다면, 그 글씨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내 마음도 그와 같을 때가 있다.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가득할 때 할 일은 많은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모닝 페이지를 쓴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에서 소개한 모닝 페이지는 피아노 건반을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렇게나 치듯 글을 쓰는 것이다.
내 생각의 흐름을, 생각나는 대로 빈칸을 써내려 나간다. "오늘은 몸이 찌뿌둥하네. 그런데 무슨 말을 써야 하는 거지? 아, 아침을 먹어야 하나?"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속 낙서들이 조금씩 지워져 나간다. 그러다 보면 내가 쓰는 글씨를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건져낸 단어들을 대표 키워드로 기록해 나간다.
매일매일 쓰지 않아도 좋다. 시간이 되는 아침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 보면 조금은 맑아진 기분이 든다.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무엇일까?"라는 문장을 계속 쓰며 마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도 있다. 주문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때도 있다. 생각과 감정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거나 오히려 더 쪼개는 이 글쓰기는 나를 맑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낙서가 가득한 칠판 같은 마음에 모닝 페이지는 마치 칠판지우개 같다. 내가 지우고 싶은 부분을 지우지는 못할지라도, 숨 쉴 틈과 글씨를 쓸 공간을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모닝 페이지에는 있다. 내 식대로 표현한다면 '위대한 아침 쓰기'이다. 아침마다 위대한 아침 쓰기 노트를 펼쳐서 펜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루틴이 생겼다. 아침 독서처럼 이 루틴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내게 힘을 주기에 당분간은 계속해볼 예정이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글도 아니며, 내가 다시 들여다볼 글도 아니기에 지렁이 글씨로 쓰는 노트이지만, 이 노트를 보면 마음이 좋아진다. 내 이야기를 성심껏 들어주는 친구 같기도 하고, 모든 걸 받아들이는 바다 같은 자연처럼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