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비앙카 보스커
한마디로 예술은 더 많은 것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우리의 삶이 각자가 수집한 경험의 총합이라면, 예술은 그 경험을 압축하지 않음으로써 말 그대로 우리가 같은 시간에 더 큰 삶을 살게 한다. 예술은 삶을 음미하는 연습인 동시에 음미할 가치가 있는 삶을 창조하는 연습이다.
-비앙카 보스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책에서 단 하나의 문장을 꼽아보라면, 기억하라면 이 문장이다. '예술은 더 많은 것을 경험하는 방법'이라는 것. 우리는 각기 삶의 경험이 다르다. 수집한 경험의 총합도 다르다. 똑같은 경험을 했을지라도 한 고유한 개인을 통과한 후의 감정과 생각, 느낌은 다 다를 것이다. 지구에는 약 80억 개의 경험의 총합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큰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공통으로 느끼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그 지점을 만났을 때, 보았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예술을 통해서 삶을 음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음미할 가치가 있는 삶을 창조해 나가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 부산시립미술관에 하정웅 컬렉션을 보러 갔을 때가 있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커녕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사회적 마이너리티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는 '기도의 미술' 섹션이었다. 작가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그림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찾아보니 전화황 작가였다).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었다. 그 당시 마음의 먹구름과 미세먼지가 가득한 내게 이 그림은 위안을 주었다. 은은한 미소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둠에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그 모습에서 아마 평온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예술과 연결되었던 생생한 경험이다.
저자의 말처럼 예술이 삶을 음미하는 연습인 동시에 음미할 가치가 있는 삶을 창조하는 연습인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어떤 예술을 만나게 될까. 코로나 이후 전시회와 미술관을 자주 찾지 못했지만, 올해에는 더 자주 만나고 싶다. 그리고 누구에게 음미할 가치가 있는 삶을 창조해 나갈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누군가가 나를 통해 진로 건강과 마음 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