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총, <읽기의 말들>, 180401)
#문장
책장을 덮고 나면 이야기가 몸과 영혼에 스며드는 시간을 두시라. 침묵이 그래서 중요하다. 책장을 덮자마자 느낀 점을 말해 보라고 다그치는 짓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다니엘 페나크가 독자의 10가지 권리를 선언하면서 맨 마지막을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로 장식한 까닭을 가만히 생각해 보자.
#생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몸과 영혼에 이야기가 스며드는 시간, 마치 밥을 뜸 들이듯.
#생각2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온갖 이야기가 오고 갈 때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없을 때, 오로지 나의 몸과 영혼 속으로 수렴되고 싶을 때, 우리는 침묵하곤 한다. 하지만 침묵을 한다고 해서 모두 다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또한 편안한 침묵도 있고, 불편한 침묵도 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침묵하는지, 어떤 상황에서의 침묵이 편안하고 불편한지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침묵1. 어떤 말이나 대화, 상황으로 인해 스스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때(편안한 침묵).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 대화에 완전히 집중하기보다, BGM처럼 들으며 대화에서 나온 어떤 주제와 키워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침묵하게 된다. 좋은 습관은 아니다. 대화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은 욕심에서 침묵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색다른 시선을 보여주고 싶거나, 이만큼이나 깊은 사고를 했다는 걸 뽐내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발적 침묵이다.
침묵2.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불편한 침묵 or 편안한 침묵).
내가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관심 없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 침묵한다. 이 대화를 통해서 나의 지적 수준과 편협함, 형편없음이 들키지 않을까 하는 자의식이나 불안함이 발동하면 불편한 침묵이 되어버린다. 특히 자존감과 자신감이 결여되어있을 때 그런 침묵이 시작된다. 누군가가 나의 침묵을 지적하거나 왜 이렇게 말이 없냐고, 말 좀 해보라고 어떠한 압박을 주면 매우 베리 엄청난 불편한 침묵이 찾아온다. 이때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자신이 없을 때이며 스스로와 나의 삶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다. 반대로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을 때, 내가 모른다고 해서 나의 존재까지 부정당하는 게 아닌 것을 알 때, 편안한 침묵이 시작된다. 이는 새로운 배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솔직하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며 대화를 나눌 때 침묵은 오히려 평온할 수 있다.
침묵3. 아무 생각 없을 때(?)
내가 침묵하는 것조차 인지를 못할 때가 있다. 침묵1도 아니고, 침묵2도 아닐 때, 즉 아무 생각이 없는 상황 일 때 이런 침묵은 찾아온다. 간혹 누군가의 이야기에 강렬히 몰입하거나 집중할 때 이렇게 된다. 내가 침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침묵이 나를 찾아온 순간이다.
이렇게 나의 침묵은 3가지다. 아직 인지하지 못한 침묵의 순간도 있을 것이다. 편안한 침묵, 불편한 침묵이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쯤 놓여있는, 혹은 혼합되어 있는 침묵도 있다. 자발적인 침묵, 비자발적인 침묵도 있다. 침묵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그 상황에 맞는 자연스러운 침묵은 마땅하고 적절할 뿐이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특히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침묵은 조정될 필요가 있다. 스스로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는 침묵은 말 그대로 침묵되어야 하지 않을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침묵하는 이에게 침묵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압박이나 강요를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스스로를 직면시키는 것이 더 좋은 관계와 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큰 부담일 수 있기에. 오히려 그 침묵을 받아들이고, 침묵과 함께 공존하는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 그는 스스로의 침묵에서 어떤 고백이나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한걸음 다가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