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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다

취약해질 용기

<마음가면>을 읽고 나서

by 범준쌤
취약해진다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정과 경험을 털어놓는 것이다. 취약성을 끌어안고 솔직해진다는 것은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으로 대개는 쌍방향으로 이뤄진다.


취약성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힘듬과 어려움, 좌절과 절망을 4년 전 나는 주변 이들에게 고백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룸메로 같이 살고 있는 15년 지기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사랑받지 못할까봐, 인정받지 못할까봐 하는 생각들이 나를 옥죄었기에 나는 그 감정과 느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찌질이처럼 보일까봐 나약해보일까봐 취약성을 드러내지 못했던 나는 더 나약해졌고, 스스로가 만든 마음의 감옥에서 몇 개월을 헤맸다. 그 우울과 방황의 늪에서 나를 건져올린 것은 묘하게도 적당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의 책읽기와 글쓰기 모임이었다. 나의 괜찮지 않음을 글쓰기로 고백하는 행위는 곧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일이었고, 그 자체가 내게 작은 치유를 선물해주었다. 그들이 건네준 따뜻한 위로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덕분에 주변 이들에게 나의 괜찮지 않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와 눈빛, 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당신에게 위안을 주려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하는 말처럼 소박하고 평온하게 산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 역시 어려움과 슬픔 속에서 살고 있으며

당신보다 훨씬 더 뒤쳐져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결코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한다고해서 내가 항상 평온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안할 때도 있고, 취약성을 드러내지 못할 때도 있다. 고민과 걱정에 전전긍긍하며 밤잠을 뒤척일 때도 있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나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소중한 것들이 일상 곳곳에 있다는 것을. 나를 위한 작은 행동들을 하다보면 다시 내가 원하는 흐름과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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