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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다

언컨택트시대, 나만의 성소를 찾아서

<언컨택트>를 읽고 나서

by 범준쌤
나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사람들도 늘었다. 요즘 동네 책방이나 카페, 북카페 등을 아지트를 만드는 차원에서 시작한 이들이 꽤 있다. 취향도 과시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기 위해서다. 물론 본업은 따로 있다. 이건 일종의 '도심 월든'이다. 고립된 산속이 아니라 도시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언컨택트 시대라고는 하나,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를 끼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난다. 대신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되는 곳을 가기보다는 사람들이 적절히 있고, 나만의 취향에 딱 맞는 장소를 찾아간다. 저자가 말한 '도심 속 월든'처럼 사람들과 함께하면서도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향한다. 혹은 그 공간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홈캉스'가 생긴 이유는 돈 없고 갈 데가 없어서 안 간다기보다는 집을 자신에게 가장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올해 3월 이사를 했다. 원룸에서 투룸으로, 원래 살던 곳보다 약 2.5배 넓이의 공간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전공도 디자인이고 꾸미는 걸 좋아해서 갈 때마다 더 아늑해지고 편안해지는 공간으로 바뀌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때까지의 연애에서는 집 데이트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좋은 공간 덕분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2월부터 집 데이트를 많이 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노래를 선곡하고,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려와 거실의 하얗고 널찍한 테이블에 편안한 목제 라탄 의자에 앉아 서재에서 고른 책을 읽는다. 이야기도 나누고, 글도 쓰고 때론 너른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카페를 갈 필요가 없어졌다. 카페보다도 내게 커스터마이징 된 이 편안하고 고요한 공간을 남겨두고 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대중화된 곳을 갈 것인가. 도심 속 월든이자, 성소는 지금 나에게 여자친구 집이다.


이 곳에 단순히 쉬는 공간만 있는 건 아니다. 언컨택트 시대로 인해 줌을 활용한 온라인 강의 촬영과 온라인 독서모임을 진행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여자친구가 허락을 해줘서 진행할 수 있었다. 성소가 쉼과 휴식, 놀이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일과 작업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에너지를 채우기도 하고, 에너지를 쓰기도 하는 곳이다. 앞으로 우리의 '도심 속 월든'에서 많은 기억과 추억이 쌓일 것 같다. 함께 책을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에. 그리고 이 공간이 주는 에너지와 편안함이 있기에.


어찌 보면 언컨택트 시대는 공간과 사람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더욱더 확실히 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굳이 만나도 되지 않을 사람들, 만나고 싶지 않을 사람들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만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기에. "언컨택트 사회는 모든 타인과의 연결이 아니라, 연결될 타인을 좀 더 세심하게 가리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좀 더 세심하게, 좀 더 명확하게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고 자신을 알게 되는 시간은 코로나가 우리에게 안겨준 선물이자 과제이다.



*함께 하고 싶은 질문

- 코로나로 인해, 나에게 생긴 도심 속 월든, 성소는 어디인가요?

- 쉼과 휴식, 놀이의 공간과 업무의 공간이 함께 공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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