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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다

나는 나를 아프게 했다.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전미경

by 범준쌤

나는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척을 했다. 20대 때부터 스스로에게, 타인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호랑이기운'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괜찮지 않을 때에도 괜찮은 척을 했다. 노래방에 가서는 신나는 척을 했다. 아직도 괜찮지 않은 시절에 불렀던 싸이의 '연예인'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싸이의 '연예인'을 불렀다. 그때에는 왜 그렇게 괜찮은 척을 했을까. 취약한 나의 상황을 알리지 못하고,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눈물 쏟지 못했을까. 아마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의 눈치를 많이 봤다.



"반대로 말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지금 여기(here & now)에서 다른 사람들(others)과 ‘오롯하게’ 만나는 경험이 없습니다. 그럼 무엇이 있을까요. 그때 저기(there & then)에서 자신(self)과만 만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아닌 자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러면서 과도하게 상대방의 눈치를 봅니다. 얼핏 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혹은 상대방에 관심이 없습니다. 혹은 상대에 맞추어 거짓된 나를 꾸며냅니다. 자기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일이 타인의 눈치를 보는 일이 된다는 것이 이해가 되시는지요.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으면 대화를 사회적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끌고 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진솔하게 상대방과 친해지지 못합니다."



아마 나의 취약성을 드러냈을 때 타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 했던 것이리라. 상대에 맞추어 거짓된 나를 꾸며내고, 과장된 웃음과 리액션, 박수로 나의 괜찮지 않음을 감추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했기에 나는 더 취약해져버렸고, 한동안 더 힘든 시기를 지냈었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없었던 그때 나는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부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가득찼던 일상은 점점 오염되어 갔다. 그 오염된 환경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취약성에 대한 고백과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 지금 아프다.", "나 괜찮지 않구나." 하는 고백을 누군가에게 눈물을 흘리며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온라인 독서모임을 했었는데, 거기에 글을 쓰면서 조금씩 나의 속살을 드러냈다. 그들은 나를 환대해줬고, 안아주었다. 그리고 세상속으로 나갈 수 있는 틈이 생겼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올 수 있었고, 나의 어둠은 조금씩 빛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자기만의 생각으로는 삶이 바뀌지도 않고 자존감도 올라가지 않습니다. 주변에 자신을 갉아먹는 사람만 있고, 자신을 존중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다른 환자 한 분은 심리 상담센터를 다니다 찾아왔습니다. 그곳에서 “마음을 비워라.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는 말을 듣는데, 그게 잘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 아무리 ‘나는 괜찮다’라고 다독여도 소용없습니다.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 내가 경험한 긍정적 세상이 내 삶의 콘텐츠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콘텐츠를 채울 때 자존감은 높아집니다."



우리는 삶을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 나를 깊이 껴안아줄 수 있는 사람, 환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이 나를 돌아선다고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지더라도, 무너진 폐허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리고 더이상 나를 아프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리고 상처입은 치유자 되어 누군가의 아픔을 진정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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