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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이사의 하루공부 Sep 21. 2019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결정적 차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을
일종의 경계선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진짜로 알기 전과 후로 인생이 갈린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p.27


불치병은 고치지 못하는 병이다. 고치지 못하기에 더 고통스럽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죽음이라는 불치병을 안고 태어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는데, 바로 이 '죽음이라는 불치병'이 인생을 판이하게 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수 년간 호스피스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목격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저자 샐리 티스데일은 말한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진짜로 아느냐에 따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자기 스스로가 죽음 또는 죽어감을 '진짜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변화에 속한 사람인가? 변화하지 않음에 속한 사람인가?


나는 스스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진짜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죽어간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바쁘고 죽음에 대해 무지한 채로 있는가?


인생을 가를 정도의 놀라운 지식과 지혜를 경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가 죽어간다는 것'을 진짜로 알아야 할 것이다.




죽음을 아는 사람들, 곧 변화에 속한 사람들


불교의 싯다르타


불교의 창시자 싯다르타는 '변화하는 사람'에 속한다.


그는 애지중지 자란 왕자였다. 어느 날 소수의 신하만 대동한 채 몰래 성 밖으로 나왔는데, 그곳에서 난생처음 병자와 노인 그리고 죽은 사람을 목격하게 된다.


신하는 '생로병사'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속삭였다. 젊은 왕자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고?’


‘그럼 나에게도?’


번민에 빠진 왕자의 눈에 때마침 고행을 실천하는 한 수행자가 들어왔다. 그 순간 왕자는 자신의 남아 있는 삶에 대해, 곧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29세에 가정과 왕궁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고행의 길에 들어섰다. 결국 보리수 밑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가 되었다. 완전히 변화한 것이다.



기독교의 '지혜로운 자'


죽음이 가르치는 변화의 지혜는 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성경에도 잘 나와 있다. 성경은 이를 '지혜로운 자'로 표현한다. (전도서 7:4)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을 가까이 한다. 죽음의 근처에 머물며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에 집중한다.


이에 반해 어리석은 사람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진리를 외면하기 바쁘다.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을 좇기 바쁘다.


이런 구절도 있다. (전도서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모두 죽을 수밖에 없으니
살아있을 때
이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지혜로운 자는 초상집을 잔치집보다 사랑한다. 삶의 유한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나치게 낙관하고 과신하지 않기 위해서, 삶의 불예측성을 수용하고 통제감의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에 반해 어리석은 사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시간이 흐르면 체력이 약해지고 기력이 쇠해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눈 앞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타인보다 나만의 유익을 이기적으로 좇는다. 나 중심적 사고에 갇혀 결국 변화하지 못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샐리 티스데일은 말한다.


"우리 삶의 중심엔 늘 내일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내일은 없다. 내년도 없다."



우리는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가? 죽음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두렵고 또는 재수없게 느껴져 서로의 입을 막고 있지는 않는가?


싯다르타와 '지혜로운 자' 만큼은 아니다 할지라도, 죽음에 대해 조금은 알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 주는 지혜'를 맛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리석은 사람'에 머물고만 말 것인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 톨스토이


죽음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대충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야 한다. 제대로된 책과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에 큰 도움이 된다.


놀라운 사실은 최고의 문호이자 사상가로 불리는 톨스토이조차 죽음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삶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고 여겼다. 고통의 끝판왕은 죽음이라고 여겼다.


어느 날 문득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가 마음깊이 각인되면서 깊은 번뇌에 빠지게 되었다. 온 몸에 전율이 흐르며 충격에서 쉬이 헤어나오지 못헀다.



그가 가진 고민의 핵심은 이러하다.


‘어차피 죽을 인생이다.
살아생전 뭐 그리
열심히 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없어질 존재인데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게
최고의 미덕 아닌가?


톨스토이는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다 크게 4가지로 정리했다.


1. 죽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어린 시절의 무지함으로 회귀하는 것

2. 무의미한 삶 자체를 그냥 인정하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

3. 삶은 고통이고
결국 죽는 무의미한 것이기에
지금 즉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 (예: 자살)

4.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 없이
지금 당장의 무작정 쾌락을 추구하는 것




첫 번째, 죽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어린 시절의 무지함으로 회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인간은 시간을 결코 되돌릴 수 없다. 따라서 솔루션에서 삭제.


두 번째, 무의미한 삶 자체를 받아들이고 계속 유지하는 것. 이것은 고통과 무의미로 가득찬 인생이 연장만 될 뿐이다.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따라서 삭제.


세 번째,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것 (대표적인 예: 자살). 삶이 무의미하다면 이 방법은 위의 두 가지 것보다 유력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자살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한동안 갑자기 자살 충동이 들까 봐 총과 밧줄을 멀리 두고 지냈다. 실천할 수 없는 해결책. 따라서 삭제.


네 번째,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 없이 무작정 쾌락을 추구하는 것. 말초적 즐거움을 연일 좇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실제로 그런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의 정신의 갈급함은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앞서 살펴 본 전도서 7장의 구절이 떠오른다.


 "어리석은 사람은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게 불완전한 4가지 방법으로 밖에 죽음에 관한 고민의 마침표를 찍을 수 밖에 없었던 톨스토이에 대해,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저자 조던 피터슨은 말한다.


"톨스토이와 같은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죽음과 고통의 탈출구를
제대로 찾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된 '죽음 고민' - 작게 시작하자


부처가 되기 위해,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 톨스토이처럼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톨스토이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죽음 공부'를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쫄필요는 없다. 샐리 티스데일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아주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법이다.


"일본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새해 전날 자신의 장례식에 읽을
추도문을 쓰는 것입니다.

요즘엔 장례식에 쓸 영정 사진을 찍고
시신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옷도
골라둔다고 합니다."


작게 시작해 보는 것이다. 1년 365일 중 딱 하루만. 새해 전날!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는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맨날 죽음만 생각할 순 없으니 1년에 딱 한 번만은 제대로 해 보는 건 어떨까?


365일 중 대부분 우리 인간은 눈앞의 즐거움에 많이 흔들리고 유혹되고 그렇게 또 후회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즉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단 하루만, 딱 하루 동안은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는 단 하루만이라도 경험하는 온전한 죽음을 '스쿠버다이빙'에 인상 깊게 비유한다.


스쿠버다이빙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물속에 완전히 잠기기 전까지는 젖었다는 느낌과 물과 공기의 차이를 의식할 수 있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



딱 하루, 딱 한 번만이라도 스쿠버다이빙처럼 죽음의 물속에 한 번은 꼭 잠겨보자. 그런 작은 경험이 쌓이는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이 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한 번 더 상기해 보자.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생각을 넘어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꼭 한 번은 죽음 근처에서 알찬 시간을 보내라!



셀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완전한 잠김을 선사하는데 좋은 가이드로서 강력 추천한다.


PS.

목사인 나의 친구는 대형교회 부목사다.


서초구 잠원동 등지에서 650가구를 케어한다. 650명이 아니라 650가구다.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아직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이지만 이미 장례식장의 집례를 수 번 맡았다.


목사 친구에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선물했다. 다 읽은 목사 친구가 말했다.


"요즘은 누워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분들이 너무 많아.. 이 책을 선물해야 할 성도님들이 많이 떠오르네."


"지난 해 아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 이 책이 있었더라면 더 평안히 보내드릴 수 있었을 것 같아."


"심오한 부분도 있지만 굉장히 유용하고 실용적인 내용도 담고 있네. 호스피스 교과서로 써도 손색이 없겠다."


"현재 연로한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를 돌보고 있거나 요양원, 실버타운에 계시다, 하는 분들은 이 책을 필수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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