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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닝 Apr 28. 2024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인도여행

탈출

주변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조용한 건설 현장을 휘감는다.

회색빛의 시멘트 가루가 휘날리며 눈앞이 순간 뿌옇게 흐려진다.     


며칠 전 동틀 무렵, 현장에는 활기가 넘쳐났었다.

망치 두드리는 쿵닥쿵닥 소리

"안전 좋아 좋아 좋아"

팀마다 안전 구호를 외치는 소리

해가 고개를 내밀기 전부터 건설 현장은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현장 사무실 한켠에 나와 텅 비어버린 현장을 바라보며 폐 속 깊은 곳까지 담배를 빨아댔다.     

" 오늘은 뭘 해야 하지?"

회사 동기 녀석은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또 다른 하루를 내뱉었다.

공사 차량도, 인부들도 빠져버린 현장이 마치 남아있는 우리의 미래같이 보였다.          



"대리님, 차 좀 빼주세요. 자정에 주차장 셔터 내려요."

오늘도 어김없이,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던 해외 플랜트 프로젝트의 설계를 하기 위해서, 사무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아파트 건설 현장과 기술센터를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넘겨받을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는 고스란히 내 일을 두 배로 만들었다.

글쎄, 그때는 왜 내가 남들보다 일을 더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 같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라고 여기었다.          


한 달 전, 종합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나의 건강 성적표에는 적색과 주황색으로 경고, 주의가 표시된 항목이 7개였다.

맨 밑에는 위궤양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폐 속 깊은 곳까지 들이마셨던 하얀 담배 연기가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름 잘하지는 못해도 열심히는 했었다.

그러나, 회사의 부도 소식은 나의 그런 몸부림과는 무관했다.

앞으로의 미래가 담배 연기처럼 흩뿌려지며 희미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건설 현장의 공허함은 나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갔다.

텅 비어버린 나의 머릿속이 이전에는 없던 것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미래를 향해 걷고 있던 길을 잃어버린 두려움

그리고 자꾸만 증식해가는 걱정들로 잠식되어 갔다.


종일 지끈 거리는 머리를 억누르며, 하루에 겨우 2시간 남짓 자면서 점점 피폐해져 갔다.     

더이상 버티다가는 내가 소멸할 것만 같았다. 일단 거기를 빠져나와야 했다.               


" 아직 XX 행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으신 분은 신속한 탑승 부탁드립니다."

멍하게 앉아있던 나는 안내방송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서 탑승구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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